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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옷차림풍습 > 관복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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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면복(冕服)
면복은 왕의 최고예복이었다. 왕이 조상의 묘를 찾거나 제사를 지낼 때 그리고 국가적인 제일 큰 행사 때에 이 옷을 차려 입었다. 역대 봉건국가들에서는 왕이 조상의 묘를 찾거나 제사지내는 일 그리고 외국사신의 영접 등을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사 때에 왕이 입는 면복을 정복들 가운데서 가장 위엄있게 꾸며 왕의 최고예복으로 하였다. 면복이란 면류관을 쓰는 옷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인데 일반적으로 면류관과 곤복(겉옷) 및 버선, 신발, 치렛거리 등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면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들인 집안 다섯무덤가운데서 제5호무덤의 벽화와 통구 사신무덤 벽화 등에 신선인 듯한 사람이 면류관을 쓴 것이 보이며 또 『삼국유사』에서도 신라의 법흥왕에 대한 기사에 면류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면복차림에서 기본 겉옷인 곤복도 삼국시대에 있었는데 신라에서는 그것을 ‘용의(龍衣)’ 혹은 ‘용곤(龍袞)’이라고 하였다.

면복은 그후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왕의 최고 예복으로 이용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1130년 4월에 나라의 큰 제사 예식 때 왕이 입는 면복을 규정하였다. 이때에 규정된 내용을 보면 왕은 구류면(구슬을 꿴 9개의 줄을 느린 면류관)을 쓰고 칠장복(용, 꿩, 술잔, 마름풀, 쌀, 도끼, ‘亞’형무늬 등을 장식한 옷)을 입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규정은 그후 의종 때(1147~1170년)에 다시 고쳐졌는데 그 내용은 왕이 여러 가지 제사를 지낼 때 붉은색, 흰색, 검푸른색 옥 12개를 서로 엇바꾸어 꿴 구슬느림을 9줄 단 면류관을 쓰고 구장복(칠장복에 산, 불 등의 두 가지 무늬를 더 장식한 옷)을 입으며 붉은 신을 신도록 되어 있었다.

왕의 면복은 그후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었다. 조선시대 면복은 시기적으로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나 『국조오례의 서례』에 의하면 주로 면류관, 곤복, 치마, 중단, 폐슬, 대대(큰 띠), 패옥, 수, 규, 말(버선), 석(신발) 등으로 이루어졌다. 면류관은 고깔모양의 쓰개 위에 평천판(평평한 널. 면판이라고도 한다)이 얹혀 있는 관이었다. 평천판이 앞으로 좀 숙어졌기 때문에 ‘면’이라는 글자가 붙었으며 평천판의 앞뒤에 ‘류’라고 하는 술을 달았기 때문에 면류관이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 평천판의 길이는 1자 6치, 너비는 8치였으며 겉은 암붉은색 비단, 안은 분홍색 비단으로 쌌다. 앞은 둥그스름하고 뒤는 네모졌다. 앞의 높이는 8치 5푼, 뒤의 높이는 9치 5푼으로서 금은으로 장식되었다. 앞뒤에는 각기 9줄의 술이 달렸는데 매개 술에는 붉은색, 흰색, 푸른색, 황색, 검은색 등 다섯 가지 색깔의 순서로 9개의 구슬이 꿰어 있었다. 그러므로 앞뒤에 모두 18줄의 술에 162개의 구슬이 달려 있는 것이 된다. 각 술의 길이는 9치였다. 면류관의 뒷부분에는 금비녀를 꽂고 거기에 옥을 늘어뜨리고 자주색 끈과 붉은색 끈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형식의 면류관은 조선 말기까지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다.

곤복은 겉옷으로서 그 길이는 정강이까지 내려오며 앞이 완전히 터졌다. 깃은 곧고 소매가 넓다. 오른쪽 가슴부위에 고름이 있으며 깃에는 우리 민족옷에 고유한 동정이 달려 있다. 옷의 양어깨에는 용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곤복을 곤룡포, 곤룡의라고도 불렀다. 곤복은 현색(검붉은색)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는 최고통치자인 왕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즉 양어깨에는 용, 등뒤에는 산, 소매 뒤쪽 단에는 불과 화충, 종이 등의 무늬가 있었다. 그리고 치마는 분홍색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앞이 3폭, 뒤가 4폭으로 되었다. 치마에도 역시 왕을 상징하는 네 가지 무늬인 조, 분미, 보, 불 등이 수놓여 있었다. 통치자들은 왕의 곤복과 치마에 이러한 무늬들을 형상함으로써 국왕이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보장하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듯이 보여주려고 하였다.

곤복에는 무늬를 그려 넣고 치마에는 무늬를 수놓았는데 이것은 음양오행설에서 그림은 양이기 때문에 웃옷에 무늬를 그리고 수는 음이기 때문에 아래옷에 무늬를 수놓는다는 설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곤복과 치마에 장식된 9개 종류의 무늬가 있는 면복을 당시 구장복(九章服)이라고 하였으며 이런 무늬가 있는 옷을 장복이라고 하였다.

중단은 곤복 속에 입는 곧은 깃 겉옷으로서 길이는 정강이까지 드리울 정도였으며 앞이 완전히 터져 여며 입게 된 것이었다. 흰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깃만은 푸른색으로 하였다. 이 푸른색 깃의 위에서부터 가슴까지 내려오는 부분에 11개의 불무늬(‘亞’형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폐슬은 앞치마모양으로 생긴 무릎가리개였다. 치마와 같은 색의 비단으로 만들었고 앞면에 조, 분미, 보, 불 등의 무늬를 수놓았다. 너비는 5치였다. 대대(큰 띠)는 붉은색과 흰색의 비단을 합쳐 겹으로 만든 큰 띠였다. 허리에 대는 부분과 아래로 내리드리우는 두 줄의 띠로 이루어졌다. 겉부분이 희고 안쪽이 붉다. 패옥은 높은 기교로 가공된 옥으로서 두 조를 한 쌍으로 하여 면복 좌우에 늘여 차는 치렛거리였다. 패옥을 흔히 패물이라고도 하였다. 수(綬)는 네모난 앞치마 비슷한 것인데 붉은 비단으로 만들었다. 윗부분의 양측면에 금으로 만든 고리가 달렸다. 수는 허리에 달아 뒷면을 장식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후수라고도 했으며 금고리가 달린 것을 금환수라고도 불렀다. 규(圭)는 푸른 옥으로 만든 홀이다. 길이는 9치였다. 버선은 붉은 비단을 겹으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버선목에는 맬끈이 달렸다. 신발은 겉을 붉은 비단으로 하고 안은 흰 비단으로 하였다.

제사 때에만은 면복차림 외에 방심곡령을 더 목에 걸었다. 방심곡령은 둥근 덧깃으로서 흰 비단으로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둥글고 왼쪽에 풀색 끈, 오른쪽에 붉은색 끈, 가운데에 화살모양의 것이 달려 있었다. 조선시대 왕의 면복차림은 시기에 따라 얼마간의 차이가 있었으나 구성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897년에 황제제도가 실시되면서 새로 황제예복과 상복제도가 제정되어 면복제도에서는 일련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황제의 면류관과 곤복 등의 장식들과 그밖의 일부 요소들은 선대 임금의 그것과 다르게 더 요란하고 ‘위엄’있게 고쳐졌다.

황제가 쓰는 면류관은 겉은 검은 비단, 안은 붉은 비단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다는 술은 9줄이 아니라 12줄이었으며 매 술에 꿴 구슬도 5색 주옥 9개가 아니라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흰색, 검은색, 분홍색, 풀색 순서로 된 7색 주옥이 12개나 되었다. 이 색깔들은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황제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한 것이었다. 그리고 곤복과 치마에는 왕의 곤복과 치마에 장식한 무늬 외에 황제를 상징하는 무늬인 해와 달, 별이 더 첨가되어 모두 12개의 무늬가 장식되었다. 이로부터 황제의 면복을 십이장복이라고 하였다. 곤복은 검붉은색이었으며 어깨에는 해와 달, 뒤에는 별과 산, 양소매에는 용과 화충 등 여섯 가지 무늬를 그려 놓았다. 치마의 크기는 왕의 것과 같이 7폭이었으나 4가지가 아니라 6가지 무늬를 수놓았다.

면복을 입는 순서는 먼저 기본옷인 바지, 저고리를 입은 다음 버선을 신고 치마, 중단, 곤복 등의 차례로 입었다. 그리고 폐슬을 앞에, 수를 뒤에 대고 큰 띠를 두른 다음 좌우쪽에 패옥을 늘인 후 면류관을 쓰고 신발을 신었다. 규는 맨나중에 손에 들었다. 면복은 왕이나 황제의 최고예복이었던 만큼 실용적인 측면보다 통치자의 ‘권위’와 ‘위엄’을 최대한으로 돋우는 데 모든 주의가 쏠렸다. 그러므로 면복에는 어느 정복들보다도 고급 재료가 이용되었고 뛰어난 장식기술이 구현되었다. 동시에 허황한 내용과 형식적인 겉치레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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