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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례옷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여 지내는 제사 때에 입는 옷이다. 조선 말기에 제례는 유교적인 격식에 의하여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에 의해 진행되었다. 제사에는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일정한 기간 상복을 입고 있는 동안 지내는 제사인 흉제와 상복을 벗은 후에 지내는 제사인 길제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제례옷은 3년간의 상복기간에 지내는 제사인 흉제 즉 삼우제(三虞祭)와 졸곡(卒哭),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祭) 때에 입는 옷을 의미한다.
남자 제례옷은 관, 최의, 최상, 중의, 행전, 요대, 교대, 지팡이, 신발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은 상복 때의 관과 같은 형태인데 좀 가는 연포(날것을 잿물에 삶아서 누운 베)로 만들었다. 효건과 굴건도 같은 재료로 만들었다. 최의, 최상도 상복과 같은 형태인데 모두 가는 연포로 만들었다. 참최의 경우 옷단을 꿰매지 않았고 눈물받이나 부판 등은 없이 지었다. 중의나 행전은 좀 가는 연포로 만들었으며 요대는 칡껍질을 약간 물에 담그었다가 만들었는데 끈은 베끈으로 하였다. 교대도 좀 가는 연포로 만들었으며 지팡이는 초상 때에 사용하던 것을 썼다. 그리고 신발은 삼노끈으로 만들었다.
여자 제례복은 관(족두리), 최의, 최상, 수질, 교대, 지팡이, 신발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과 지팡이는 초상 때에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최의, 최상, 교대는 남자의 것과 같이 만들었다. 수질은 칡을 물에 약간 담그었다가 만들었으며 신발은 삼노끈으로 삼은 혜를 신었다.
흉제 때에 상제들은 상복기간이라고 하여 제사 때마다 이와 같이 까다롭게 격식화된 옷을 갖추어 입어야 하였다. 그러나 흉제 밖에 조상이나 그밖의 가족이 죽은 날에 지내는 기제 때에는 예복을 입어도 소박하고 깨끗한 일상옷차림에 흰 두루마기와 같은 제복이나 머리쓰개를 썼다. 어떤 가정에서는 두루마기 위에 도포를 입기도 하고 머리에는 갓 또는 유건을 쓰기도 하였다.
여자들은 죽은 후 5년까지는 흰옷 차림인 소복(素服) 단장을 하고 흰 족두리를 썼고 5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옥색 치마, 저고리에 흰 족두리를 썼다. 그리고 퍽 오래 전에 죽은 사람을 제사지낼 때에는 소복 단장을 하거나 깨끗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하였고 머리쓰개는 쓰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무늬있는 치마, 저고리는 입지 않았다. 이것은 옷차림을 깨끗하고 정중히 함으로써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는 우리 민족의 고상한 도적적 미풍의 발현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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