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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 공던지기, 포구, 수구
우리나라에는 위에서 본 격구, 타구, 장치기 밖에 공차기, 공던지기, 포구, 수구 등 다양한 구기놀이가 있었다. 공차기놀이는 공을 차서 연락 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몰고가 공문에 차 넣는 축구와는 달리 공을 높이 차올리는 것을 겨루는 놀이였던 것 같다. 공은 짐승의 오줌통에 바람을 넣은 것이나 새끼를 말아 묶은 것 등을 이용하였다.
공차기에서는 여러 사람이 번갈아 차면서 공 하나를 가지고 높이 차올리기를 하였다. 한사람이 높이 차올리면 다음사람이 그것을 받아 차서 또 높이 띄워 올리었다. 만약 받아 차지 못하면 지는 것으로 된다. 그리하여 공을 땅에 떨구지 않고 계속 받아서 높이 차올리는 사람이 승리자가 되고 공을 잘 차는 사람으로 인정되었다.★
공던지기는 공을 던지고 받으며 노는 놀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기에 공민왕이 뭇아이들의 풀 던지기 놀이(척초희)를 구경하였다고 한다. 척초희는 단순한 풀던지기놀이가 아니라 근래의 새끼뽈모양으로 둥글게 뭉치고 새끼로 엮어만든 공을 던지고 잡으면서 논 송구와 비슷한 놀이로 인정된다. 풀뭉치공은 비록 공기를 넣은 고무공처럼 탄력은 없었으나 던지며 받는 놀이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포구는 일정한 높이에 구멍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공을 던져놓는 것이다. 오늘의 농구와 유사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1037년에 ‘포구악’이라는 가무가 공연되었다. 포구악은 공문을 세워놓고 무용수들이 춤을 추면서 한 사람씩 엇바꾸어 공문에 공을 던져 넣는 가무였다. 공을 공문에 통과시키면 춤추고 노래하며 성과를 축하해 주었다. 만약 공을 공문으로 통과시키지 못하면 이마에 먹점을 찍어주었다. 이런 방법으로 차례차례 공을 던지며 놀았다. 포구악은 당시에 유행되었던 공던져넣기놀이를 예술화한 것으로서 포구가 오늘의 농구와 같이 공을 던져 넣기놀이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구는 여성들의 놀이로서 손으로 공을 치며 노는 것이다. 구체적인 자료로 전하는 것은 없고 근대시기에 여성들 속에서 놀았다는 것만 전해온다. 후에 고무공이 나오면서 여성들은 공을 땅바닥에 던져 튀여 올라오는 것을 손바닥으로 내리쳐서 다시 튀어오르게 하는 놀이를 많이 하였다. 수구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놀이였다고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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