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서비스 사이트맵 열린참여관 북한지역정보넷소개관 조선향토대백과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행정구역정보관 자연지리정보관 인문지리정보관 유물유적관 인물정보관 민속문화관 멀티미디어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인기검색어
내가 찾은 단어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 민속놀이 > 체력단련놀이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UCI :
스크랩주소 :
내부조회수 : / 외부조회수 :
스크랩수 :
씨름
밧줄당기기
짐나르기놀이
농기놀이
달리기
승경도놀이와 투호
널뛰기
그네뛰기
격구와 타구
장치기
그밖의 구기놀이
기교놀이
북한지역정보넷 격구와 타구
격구는 말을 타고 공채로 공을 치며 노는 놀이다. 이 놀이에 대한 기록은 발해시기에 처음 보인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이미 말타기가 성행하였고 말을 타고 하는 여러 가지 놀이들이 있었으므로 격구도 이 시기부터 있었다고 짐작된다. 기록에 발해사신인 왕문구가 일본에 가서 격구를 하여 일본사람들을 경탄시켰다는 내용이 전하여 온다.

조선시대에는 격구와 타구가 엄연히 다른 놀이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발해시기에 대한 기록들에는 같은 놀이를 격구라고 하기도 하고 타구라고도 하였다. 때로는 격구를 ‘구마’라고도 표현하였다. 구마라는 것은 말을 타고 하는 공놀이 즉 격구를 말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격구가 크게 유행하였다. 격구에 대한 자료가 『고려사』에 자주 보이는 사실은 그것을 말하여준다. 『고려사』의 격구에 관한 자료들을 통하여 이 시기 격구장의 설치, 격구를 노는 시기, 계층, 제한조치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고려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좋은 구정(격구장)을 만들어놓고 격구경기를 하였다. 건국 초기 상주의 봉건세력인 아자개가 투항할 의사를 전달하는 사신을 보내여 왔을 때 그를 ‘구정’에서 성대하게 맞았다. 이것은 고려가 건국 초기에 앞선 시기부터 존재하여온 구정을 계속 운영하면서 격구를 진행해 왔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12~13세기 기록에 의하면 당시 고려에서 구정의 크기는 400보가량 되었고 정리되어 있었으므로 평탄하기가 숫돌과 같았으며 울타리는 몇리나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1209년에 격구장을 굉장하게 꾸리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 이웃집 백여채를 허물어 격구장을 만들었는데 동서가 수백보나 되고 평탄하기가 바둑판 같았으며 격구를 할 때마다 반드시 마을사람을 시켜 물을 뿌려 먼지가 나지 않게 하였다. 후에 또 민가를 허물어서 이를 넓혔는데 허물어버린 집이 무려 수백집이나 되었다”고 한다.

고려 초 중기의 기록들에는 격구를 3월, 5월, 9월, 10월 등 계절과 특별한 시기를 가리지 않고 많이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는 5월단오에 격구를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격구놀이방법은 고려 말의 사실을 적은 조선 『태조실록』에 자세히 전한다. 그에 의하면 조선가 성립되었던 초기의 격구와 고려시대의 격구가 같았다고 볼 수 있다.

격구는 활쏘기 및 창쓰기와 함께 무술삼재의 하나로 인정되었고 고려와 조선 시대 군사들에게 필수적인 놀이로 되어 있었으며 그것은 무술시험의 주요종목으로 조선시대의 법전들에 법규화되었다. 격구가 이와 같이 무술삼재의 하나로 인정되어 무술시험의 3대 종목에 규정되게 된 것은 격구가 능숙한 기마술을 기초로 하고 있고 경기자들에게 강한 타격술과 명중술을 숙련케 하는 무술의 한 부분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격구는 조선시대에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격구놀이를 하자면 우선 공채, 공과 같은 기재와 운동장으로서 격구장을 갖추어야 하였다. 공채는 끝에 주걱같은 것이 달린 긴 막대기였다. 공채에 달린 주걱의 길이는 9치(약 27cm),너비는(약 9cm)이며 채의 길이는 3자 5치(약 105cm)였다. 주걱의 안쪽은 우묵하게 패이고 바깥쪽은 둥굴면서 평탄하였다. 공은 나무로 만들었는데 그 둘레는 1자 3치(약 39cm)였다. 공에는 붉은칠을 하였다.

경기방법은 공을 공문으로 통과시키면 이겼는데 몇가지 동작을 수행하면서 처넣어야 하였다. 격구선수들은 공채를 오른손에 쥐고 채를 발목에 대고 일정한 거리에 놓여있는 공을 향하여 나간다. 한 선수가 먼저 공을 차지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물러선다. 공을 차지한 사람을 ‘수격’이라고 하였다. 맨 먼저 공을 차지한 선수-수격이 채의 주걱 안쪽으로 비스듬히 공을 끌어올리거나 튕기는데 이것을 ‘배지’라고 하였다. 배지한 다음 동작은 ‘지피’로서 공채의 주걱 바깥면으로 공이 굴려나가게 하는데 이런 동작을 세 번 한다. 이런 기초동작이 끝나면 말을 달리며 공을 멀리로 굴리는데 공채를 옆으로 눕혀서 말의 귀와 가지런하게 하여야 하였다. 이것을 ‘귀견줌(비이)’이라고 하였다. 귀견줌이 끝난 다음 손을 높이 들어서 채를 아래로 드리우고 공을 쳤는데 그것을 ‘수양’이라고 하였다. 수양동작은 여러번 하여도 무방하였다. 이와 같이 공채를 아래로 드리운 자세로 공을 공문으로 쳐내보내고는 멈추어 섰다. 공이 제대로 공문을 통과하였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그러면 말을 돌려서 처음 섰던 곳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말을 달리고 공채를 잡는 자세는 처음 출발할 때와 같이하였다. 공을 쳐나가면서 조금만 동작을 멈추어도 무효로 인정되었다. 이상에서 말한 것이 격구의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이밖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규정과 동작이 있었다.

타구는 공채로 공을 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구덩이에 공이 들어가게 하는 놀이다. 그것은 현대골프와 유사한 놀이였다. 『고려사』에는 1320년 5월 선흥사와 민천사에서 타구를 하였다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격구와 타구의 차이점은 전자는 말을 타고 나무채로 공을 쳐서 공문에 쳐 넣는 경기이라면 타구는 선 자리에서 공을 쳐서 일정한 거리에 파놓은 구덩이에 넣는 경기이다.

우리나라에 유행되었던 타구는 15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골프보다 앞서 14세기 이전에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 규칙이 엄밀하고 노는 방법도 현대골프와 유사하였다. 타구의 구체적인 놀이방법은 조선시대 기록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행되었던 타구놀이에 이용된 기구와 놀이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크기가 대체로 손바닥만한 공채가 있었는데 물소가죽이나 소가죽으로 씌웠다. 공채에 씌운 가죽은 얇게 씌우면 공이 너무 높이 뜨고 두텁게 씌우면 반대로 공이 높이 뜨지 않기 때문에 그 두께를 잘 조절하였다. 채는 두터운 대나무를 합쳐서 만들었다. 공은 크기가 달걀만 하였는데 그것은 마노나 나무로 만들었다. 공채와 공은 크기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있었다.

경기는 2명으로부터 10여명까지의 인원이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라서 승부를 겨루며 놀았다. 공을 쳐넣게 되어 있는 구덩이는 사발이 들어갈 만한 크기와 깊이로 땅을 파서 만들었다. 구덩이는 전각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나 둔덕이진 곳 또는 평지에 파놓았다. 그러므로 공은 곧바로 구덩이로 굴러 들어가지 못하고 구덩이의 위치에 따라 튀여 오르기도 하고 비스듬히 비껴서 굴러가기도 하였다. 경기는 공을 누가 먼저 몇번을 쳐서 구덩이에 넣는가 하는데 따라 승부가 결정되었다. 한번 쳐서 공이 구덩이에 들어가면 두 점을 주었다. 한번 쳐서 구덩이에 들어가지 않으면 공이 구르는 대로 굴다가 멎은 다음 그곳에서 다시 두 번 또는 세 번 쳐서 넣으면 한 점밖에 얻지 못하였다.

경기규칙에 의하면 한사람이 한번 쳐서 들여보내면 다른 사람도 한번만 치고 두 번을 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만약 한사람이 두 번 쳐서 들여보내면 다른 사람도 두 번밖에 치지못하였다. 세 번, 네 번도 같은 방법으로 하였다. 즉 어느 한 사람이 공을 구덩이에 먼저 넣으면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친 회수이상을 더 치지 못하였다. 또한 한번 친 공은 다른 공과 부딪쳐도 ‘죽지’ 않으나 두 번 친 공이 다른 공과 부딪치면 죽었다. 공은 서서 치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치기도 하였다. 이처럼 타구는 공을 적은 회수로 쳐서 먼저 구덩이에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타구놀이에서 공채를 몇 개 썼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현대골프에서와 같이 여러 개의 채와 공을 가지고 놀았다고 보인다.
 
 
 
북한지역정보넷  
사이트링크-국가지식포털 사이트링크-행정안전부 사이트링크-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사이트링크-평화문제연구소 사이트링크-통일부 사이트링크-통일교육협의회 사이트링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이트링크-통일문제연구협의회
로고-북한인문지리넷 북한지역정보넷 로고-국가지식포털
유관기관링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북한지역정보넷 저작권정책 북한지역정보넷 개인정보보호정책 북한지역정보넷 위치 및 연락처 북한지역정보넷 관리자에게 북한지역정보넷 배너및뷰어
식풍습
옷차림풍습
주택생활풍습
가족생활풍습
노동생활풍습
민속명절
민속놀이
    - 민속놀이의 역사적변천
    - 무술연마놀이
    - 체력단련놀이
    - 지능겨루기놀이
    - 인형 및 탈놀이
    - 어린이 민속놀이
    - 민속놀이의 계승발전
민속음악
민속무용
구전문학
민속공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