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목놀이는 12모가 난 나무방망이를 던지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이 놀이는 16세기 초의 기록에 처음으로 보이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해오던 것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527년 중종이 승정원에 지시하기를 “이전에는 탈춤을 구경할 때 의례히 윤목놀이를 하였으니 오늘도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왕족들, 재상들, 시종관들이 윤목놀이를 하였던 것이다.
윤목은 모두 12면으로 되었는데 면마다 짐승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윤목에 적은 짐승이름 가운데 사자를 으뜸으로 쳤다. 놀이는 윤목 3개를 던져서 사자가 나오면 동그라미를 그려놓는다. 그리하여 여러차례 놀아서 동그라미를 세여 보고 동그라미가 많은 사람을 으뜸으로 치는 방법으로 하였다. 이 놀이는 12월 말에 한 것으로 보면 연말에 놀던 놀이었던 것 같다. 윤목놀이는 재미있고 체력단련에도 좋은 것이었으나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없어지고 말았다.
투호는 화살을 던져 단지 구멍 안에 넣으면서 명중을 겨루는 놀이다. 기록에 의하면 투호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즐겨하던 놀이라고 하였다. 구체적인 놀이방법은 전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에 투호를 흔히 놀았다는 것이 전하여온다.
투호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전반기에 일정하게 보급되어 있었다. 투호를 하자면 화살과 단지가 있어야 하였다. 화살을 보통 화살을 쓰기도 하였으나 투호용의 화살을 뽕나무로 따로 만들어 썼다. 단지로서는 보통 사기단지를 썼으나 궁중에서는 청동단지를 사용하였다. 박태보(1654~1689년)가 정리한 투호 의례에 의하면 투호에 쓰는 단지의 허리높이는 5치, 목길이는 7치, 주둥이 직경은 5치 반이고 단지 안에는 팥을 채워 넣었다.
단지는 화살길이의 2배반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놓았다. 두 사람이 하는 경우에는 각자가 화살 4개씩 가지고 일정한 거리에서 화살 1대씩 던졌다. 화살을 던져 그것이 단지에 들어가면 산가지를 계산하는 통에 넣었다. 그리하여 4개를 다 던진 다음 그 산가지를 계산하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였다.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