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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나르기놀이는 일정한 무게를 가진 물건을 들고 정해진 거리를 가는 것을 겨루는 놀이다. 이 놀이는 오랜 옛날부터 짐을 나르던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인다. 고구려무덤인 집안의 세칸무덤(5세기 초) 벽화에 평행고임을 떠받들고 있는 힘장수(역사)의 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그림은 대안리1호무덤(5세기 말) 벽화에도 있다. 이것은 물론 짐을 드는 운동이나 놀이를 하는 장면은 아니나 그림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현대 역기선수가 역기를 하는 자세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삼국시대에는 힘내기로 하여야 할 일도 많았다. 특히 기계수단이 없는 조건에서 험한 산악지대에 축조한 많은 성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무거운 성돌들을 하나하나 져 날라다 쌓은것이다. 성을 쌓기 위하여 큰 돌을 들어올리고 다루는 과정에 그것이 놀이로 일반화된 것이 짐들기놀이(또는 짐나르기놀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무덤 벽화들에 있는 힘 장수의 그림은 짐들기를 집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에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짐나르기놀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445년에 힘내기를 한 예가 있다. 이해 한번은 두손에 50근(30kg)짜리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100보(120m)를 가게 하였다 또 한번은 두손에 각각 50근짜리 물건을 들고 160보(192m)를 간 사람을 1등(1력)으로, 130보(156m)를 간 사람을 2등(2력)으로, 100보 간 사람을 3등(3력)으로 각각 평가하기로 하였다.
한손에 30kg씩 들고 100여m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그것을 들고 190여m를 간다는 것은 힘센 장정이 아니고 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위에서 본 두 번째 경기내용이 『경국대전』에 그대로 반영되어 규정으로 고착되었다. 역기와 같이 선자리에서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경기를 한 실례는 아직 찾아볼 수 없으나 일정한 물건을 들고 정해진 거리를 가게 하는 방법으로 놀이를 조직한 것은 흔히 하였던 것 같다. 이러한 짐나르기놀이는 실지 생활과 밀접히 결합된 것으로서 일상 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관심을 돌린 데서 생긴 힘기르기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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