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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옷은 사람이나 짐승 등을 형상한 탈을 쓰고 춤을 춘 춤꾼들의 무대의상이었다. 탈춤은 먼 원시시대부터 존재하였으며 거기에 따르는 몸치레들도 이미 있었다. 다른 무대의상들이 그러하듯이 탈춤옷도 해당 시기의 기본옷에 바탕을 두고 매 탈춤의 내용에 맞게 만들어졌다. 탈춤옷으로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랜 것은 삼국시대의 것이다. 고구려고분벽화에 사람탈과 소탈 등을 쓰고 춤을 추는 춤꾼의 옷차림이 보인다. 사람탈을 쓰고 춤을 추는 탈춤꾼의 옷차림에는 가랑이가 좁은 바지에 소매가 좁은 저고리, 허리띠와 보통 신발로 이루어진 소박한 차림과 가랑이가 너른 바지에 붉은 줄무늬가 있는 맞섶 저고리, 허리띠와 고운 신발로 이루어진 화려한 차림도 있다.
벽화에서 가랑이가 좁은 바지에 소매가 좁은 저고리를 차려 입고 추는 탈춤은 야외에서 말을 기르는 것을 형상한 춤으로서 고구려 사람들이 흔히 춘 소박한 탈춤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벽화에 나타난 탈춤꾼도 별로 치렛거리를 하지 않고 평소에 입던 바지, 저고리차림에 탈만 쓰고 춤을 추면 되었던것이다. 그러나 가랑이가 너른 바지에 붉은 줄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저고리를 입은 탈춤꾼의 옷차림은 궁중에서 악공들의 음악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전문탈춤꾼의 옷차림이다. 그러므로 이 탈춤꾼이 입은 바짓가랑이 끝도 붉은 줄무늬를 큼직큼직하게 장식하여 화려한 저고리와 어울리게 하였으며 무대의상으로서의 장식미를 돋우었다.
삼국시대의 사람탈춤옷에는 이밖에도 신라의 황창무를 출 때 입은 옷도 있었으나 그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다. 소탈을 쓰고 춤을 추는 탈춤꾼의 옷차림은 소매가 너른 긴 겉옷을 입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소모양을 형상하는 데 긴 겉옷이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 있었던 탈춤옷은 그후 탈춤이 계승되면서 후세에까지 이어져 나갔다.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황창무’ 이외에 ‘처용무’, ‘대면놀이’, ‘속독놀이’, ‘산예놀이’ 등의 새로운 탈춤이 생겨났으므로 거기에 따르는 탈춤옷도 응당 있었을 것이다. 이 탈춤 가운데서 황창무와 처용무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었으며 그에 따라 탈춤옷도 이어졌다. 그러나 이 탈춤들은 주로 봉건통치자들이 즐긴 탈춤이었고 민간에서는 거의 추지 않았다.
조선시대에 탈춤옷으로 널리 보급되고 알려진 것은 여러 가지이나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황해도 봉산탈춤옷이었다. 황해도 봉산탈춤옷을 등장인물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상좌춤’에 나오는 네 명의 상좌들은 무명 바지, 저고리에 흰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중이 입는 옷의 한 가지. 장삼 위에 한쪽 어깨만 걸치게 되어 있다)를 걸치었으며 고깔을 썼다. 그리고 버선에 짚신을 신었다. 네 명의 상좌들이 입는 장삼은 긴 옷이라는 뜻인데 길이가 정강이까지 내려온 긴 겉옷이었다. 모양은 두루마기와 비슷하나 소매가 넓고 약간 길었다.
다음 ‘팔목춤’에 등장하는 먹중(검은 장삼을 입은 중)들은 바지, 저고리를 입고 남색 소매에 긴 한삼이 달린 검은색의 긴 겉옷(먹장삼)을 걸치었으며 버선에 짚신을 신었다. 바짓가랑이에는 대님을 맸으며 양쪽 무릎 아래에 붉은색이나 황색의 끈을 동임으로써 옷차림을 간편하게 하면서도 화려하게 하였다. 그리고 무릎에는 큰 방울을 달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울소리가 나게 함으로써 춤동작과 놀이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다음 ‘노승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노승(늙은 중)과 소무(젊은 여자), 취발이(더벅머리 총각)였다. 노승은 바지, 저고리에 재색 장삼을 입었고 붉은 가사를 걸치었다. 목에는 염주를 걸고 손에는 접선(접는 부채)을 들었다. 그리고 버선과 짚신을 신고 송낙을 썼다.
소무는 관료양반집 부녀자의 역을 하는 여자이므로 화려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버선과 짚신 혹은 갖신을 신었다. 치마는 대체로 남색의 꼬리치마였고 저고리는 황색 회장저고리였다. 그러나 치마, 저고리 색은 규정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붉은색 꼬리치마와 그에 맞는 색의 저고리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치마, 저고리 위에 원삼을 걸치기도 하였으며 저고리와 원삼의 소매 끝에는 흰 헝겊으로 긴 한삼을 달았다. 그것은 소무를 양반집 부녀자처럼 분장시킴으로써 통치자들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더 잘 형상하기 위해서였다.
취발이는 긍정인물로 출현하는 인물이었다. 취발이는 바지, 저고리를 입은 위에 색동이 달린 맞섶옷을 입고 허리띠를 맸다. 이 맞섶옷은 흔히 붉은색으로 지었는데 길이는 저고리보다 더 길어 허리를 넘었으며 색동으로 된 소매 끝에는 긴 한삼을 달았다. 취발이는 이 긴 한삼으로 노승과 소무를 야유하고 혼쭐내는 한삼춤을 추었다. 취발이는 버선과 짚신을 신고 행전을 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쪽 무릎에는 큰 방울을 하나 달았다. 이 방울은 취발이춤의 동작을 잘 살리고 춤판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 ‘양반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양반 삼형제와 말뚝이었다. 양반 삼형제 가운데서 맏이와 둘째는 지식있는 양반으로 분장하기 위하여 바지, 저고리에 중치막이나 두루마기를 입고 흔히 선비들이 쓰는 정자관을 썼으며 버선에 갖신을 신음으로써 양반 어른의 차림새를 하였다. 막내 양반은 두 형과는 달리 바지, 저고리에 중치막을 입지 않고 두루마기 위에 쾌자를 입고 복건만 썼으며 버선에 갖신을 신음으로써 어린 양반 차림새를 하였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삼형제 모두가 양반 어른차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양반 삼형제는 또한 멋을 부리기 좋아하는 당시 양반들의 풍조에 따라 다같이 손에 접는 부채를 들었다.
양반집 심부름꾼으로 등장하는 말뚝이는 붉은 바지에 색동과 한삼이 달린 붉은색 옷을 입고 대님을 맸으며 무릎 아래를 끈으로 동이었다. 그리고 버선에 짚신을 신었다. 남쪽 지방에서는 흰 바지, 저고리에 검은 덧옷을 입은 다음 벙거지를 쓰고 채찍을 손에 쥐는 경우도 있어 옷차림에는 지방적인 특색이 있었다. 이렇듯 양반 삼형제와 말뚝이의 무대의상 사이에 강한 대조를 이루게 함으로써 그들 사이의 계급적 대립을 차림새를 통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하였다.
다음 ‘미얄춤’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은 미얄영감과 미얄할미 그리고 덜머리집(젊은 여자)이었다. 이들의 무대의상차림을 보면 미얄영감은 흰 바지, 저고리에 흰 장삼(혹은 재색 장삼)을 입고 개털모자를 썼으며 할미와 덜머리집은 치마, 저고리를 입고 버선에 짚신을 신었다.이렇듯 봉산탈놀이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대의상들은 모두 조선사회의 여러 계급, 계층들의 옷을 본따서 만들면서 탈춤의 주제내용과 예술적인 특성에 어울리게 잘 개량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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