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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식생활에서 많이 써온 가장 큰 저장용기의 하나이다. 저장용기로서 독은 여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덥게 하므로 음식물이 빨리 쉬거나 쉽게 얼어 맛이 변하는 것과 같은 폐단을 덜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저장용기보다 비교적 안전성있게 오래 보관할 수 있은 유리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을 써온 역사는 매우 오래다. 독은 이미 신석기시대유적에서 발굴되고 그후 무산범의구석유적에서는 밑굽이 평평한 것이 드러났으며 고조선시대의 유적에서는 오늘의 독과 비슷한 밑굽이 평평하고 배가 불룩하고 어깨와 목, 아가리 등이 갖추어진 것이 발견되었다.
고분벽화에 보이는 고구려의 독은 오늘의 항아리와 비슷한데 그보다 훨씬 크며 상경용천부에서 발굴된 발해의 독은 찰흙을 반죽하여 높은 열에서 구운 것인데 몸체가 풍만하고 밑이 납작한 것으로서 그 형태와 크기가 지금의 독과 비슷하다.
고려시대의 독은 기록과 함께 유물로도 전해온다. 『고려도경』에는 ‘대옹’, ‘수옹’이 나오는데 대옹은 큰 독, 수옹은 물독이다. 도기로 된 수옹은 몸체의 배가 부르고 목이 짧으며 크기는 높이 6자, 너비 4자 5치, 용량은 3섭 2되는 아주 큰 독이었다. 큰 독은 물독, 술독 같은 용기로 쓰였다. 유물로서는 자강도 희천시 서문동 고려유적에서 발굴된 독(아가리직경 26cm, 높이 82cm)과 평양시 낙랑구역 두단동에서 드러난 것들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독은 그 종류와 형태가 더욱 다양해졌다. 재료는 도기뿐 아니라 오지, 자기로 만든 것이 있으며 크기는 큰 독, 중독(중두리), 작은 독(조쟁이)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독의 용도에서도 장독, 물독, 김장독, 쌀독 등 다양하였다. 큰 독과 중독에는 간장·된장을, 작은 독에는 고추장을 담아 두었다. 개성지방에서는 장독을 뚜껑까지 한조로 만들어 썼는데 1년 동안 먹을 장을 한 번에 만들어 집뜰 양지바른 곳에 장독대를 계단식으로 만들어 여러 개의 장독을 보기 좋게 놓았다. 뒷줄에는 큰 독, 중간 에는 중독, 앞줄에는 작은 독을 뚜껑까지 덮어 가지런히 놓았다. 가족성원수와 생활정도에 따라 9개, 6개, 3개씩 놓기도 하였다. 큰 독은 아가리직경 40cm, 높이 70cm, 중독은 아가리직경 30cm, 높이 60cm, 작은 독은 아가리직경 30cm, 높이 50cm 정도에 달한다.
김치독도 형태는 대체로 장독과 같다. 농가에서 쓰던 김장독은 아주 큰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깍두기 같은 김치는 오지나 자기로 만든 작은 독에 담갔다. 낟알을 넣어두는 채독을 버들가지 같은 것으로 결어서 물독처럼 둥글고 깊게 만들었는데 안팎에 종이를 발라 낟알이 새지 않게 하였고 위에는 둥글넙적한 뚜껑을 덮었다. 조선시대의 독은 같은 용도에 쓰이는 경우에도 지역별로 그 형태에서 차이가 있었다. 서북지방의 독은 일반적으로 크고 투박하며 동북부지방의 독은 작으면서 날씬하고 남부지방의 독은 대체로 서북부지방의 독과 유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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