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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혼인은 가장 낮은 발전단계의 혼인으로서 그안에는 무리혼인, 혈연혼인, 동서혼인이 포함된다. 무리혼인(군혼)은 최초에는 배우자선정에서 아무러한 제한도 받지 않던 이른바 초기상태의 혼인이었다. 이러한 초기상태의 혼인은 선대와 후대들사이에 혼인이 금지되는 혈연혼인으로 발전하였다. 혈연혼인은 집단혼인의 형태안에서 한걸음 전진한 것이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시무리집단의 생활방식에 상응한 혼인이었다.
혈연혼인시기에는 선대와 후대 사이의 혼인은 제한되었으나 집단혼인이었으므로 여자들은 자기가 낳은 아들딸들을 알고 있었지만 남자들은 자기의 아들딸들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였다. 그때에는 아직 아들딸들에 대한 관념이 그 어떤 개별적인 사람들의 아들딸들로서가 아니라 원시무리집단 전체의 아들딸들로 인정되었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아이들도 자기를 낳아 키워준 어머니만을 알고 있을뿐 이었다. 그러나 혈연혼인에서는 점차 모계로 계산되는 친형제와 친자매사이의 혼인이 배제되고 그것은 다시 종형제와 종자매(사촌)사이, 그다음에는 재종형제와 재종자매(육촌)사이의 혼인도 배제되게 되었다. 이렇게 배우자선정에서 그 제한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혈연혼인은 마침내 동서혼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동서혼인은 서로 다른 두 씨족들 사이에 공동의 부부관계를 가지는 혼인이므로 원시무리공동체가 씨족공동체로 발전하면서 생겨났다.
동서혼인에서는 배우자는 반드시 다른 씨족에서 선정되었고 남자가 여자를 찾아가는 처가나들이 혼인형식을 취하였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씨족성원들과만 혼인하는 족외혼인이었다.
동서혼인은 서로 다른 씨족에서 배우자를 정하였으나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맺어지는 부부관계가 아니라 한 씨족의 남자들과 다른 한 씨족의 여자들사이의 공동의 부부관계였다. 따라서 동서혼인은 개별적으로는 일부다처제 또는 일처다부제 혼인으로 되지만 전체적으로 다부다처제 즉 집단혼인으로 된다. 동서혼인시기에도 여자들만 자기가 낳은 자녀들을 알고 있었으며 남자들은 자기의 자식들을 알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집단혼인단계에서는 생활이 어머니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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