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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동화는 문자 그대로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구전동화는 설화의 형태적 특성을 보존하면서 발전하였으나 신화, 전설, 민화 등 설화의 다른 형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구전동화는 아이들의 심리적 특성에 맞는 환상과 의인화를 주되는 수법으로 하여 선한 것과 악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고운 것과 미운 것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선한 것, 옳은 것, 고운 것을 긍정하고 지향하도록 이끌어준다.
구전동화에서는 환상을 기본형상수단으로 하고 있는 환상동화가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과 함께 초자연적인 신과 의인화된 인물이 등장하며 마술적인 기적들이 창조되고 있다. 환상동화에서 흔히 보는 백발노인, 제비, 사슴, 범 등은 인간의 염원을 실현시켜 주는 의인화된 상징적인 형상들이며 금방망이, 지팡이, 요술망치, 북과 피리 등은 기적을 일으키는 ‘보물’들로서 인간이 소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준다. 구전동화는 바로 이러한 환상으로 악한 것에 대한 선한 것의 승리를 긍정하며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것을 상상 속에서 펼쳐 보인다. 이러한 동화의 기본수법은 현실생활 논리에 기초한 과장과 예술적 허구이다.
우리나라 설화에서 동화적 형상이 풍부한 것으로서 그 연원이 가장 오랜 작품은 ‘방이설화’이다. 이 설화에는 형제간의 의리도 모르고 자기 혼자만 잘사는 자를 악한 자로 저주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사상감정이 구현되어 있다.
설화에는 선량하고 부지런한 방이와 마음이 고약한 방이 동생이 등장한다. 방이 동생은 큰 부자였으나 형 방이는 가난하여 밥을 얻어먹으며 지냈다. 어떤 사람이 방이를 불쌍히 여겨 방이에게 땅 한 뙈기를 주자 그는 동생에게 가서 누에종자와 곡식종자를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음씨 고약한 동생은 곡식종자와 누에종자를 모두 가마에 쪄서 방이에게 주었다. 그러나 방이는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누에가 알을 깔 무렵이 되자 단 한 마리의 누에만이 생겨났는데 그 누에의 눈이 한치나 되었다. 누에가 한 열흘 지나서 황소만큼 커져 한번에 몇 나무의 뽕잎을 먹여도 부족하였다. 동생녀석이 이것을 알고 틈을 엿보다가 그 누에를 죽여 버렸더니 며칠 사이에 사방 백리 안에 있던 누에들이 모두 방이의 집으로 날아 들어와 누에고치를 틀었다. 방이는 부근의 온 동리 사람들과 다같이 누에고치를 켜서 나눠 가졌다.
한편 동생에게서 얻어다 심은 곡식종자는 다 죽고 다만 한 대만이 자랐다. 그래도 방이는 이것을 잘 가꾸었더니 그 이삭 길이가 한자나 되었다. 방이는 이것을 매일 지켰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가 날아들어 그 이삭을 꺾어 물고 달아났다. 방이가 새를 쫓아 산으로 올라갔더니 그 새가 어떤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두워져 방이는 그 바위 곁에서 자기로 하였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반달이 떴다. 그런데 어디선가 여러 아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서로 장난을 하면서 놀다가 한 아이가 하는 말이 “너희들은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대답하기를 “나는 술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 아이가 금방망이를 꺼내어 돌을 두드리니 술이 나오고 떡과 고기가 돌 위에 그득그득히 놓여졌다. 그들은 이 술과 고기를 얼마동안 마시고 먹으며 놀더니 그 금방망이를 돌 틈에 끼워놓고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다. 이리하여 형 방이는 금방망이를 얻어 잘살게 되었다.
우리는 봉건사회의 현실과 환상이 결합되어 있는 이 설화의 동화적 형상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구전동화에는 방이전설을 중심으로 한 동화군이 형성되었으며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하여 그 주제를 실현하는 동화는 대체로 방이설화와 같은 구성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례로 거짓과 탐욕을 징계하고 선량한 성품을 찬양하는 ‘혹 뗀 이야기’도 이에 속한다. 이러한 동화들은 다양한 생활소재와 다양한 이야기줄거리에 기초하고 있지만 거짓과 탐욕을 비관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것을 찬양하는 설화적 구성의 공통성으로 하여 동일한 유형에 속하게 된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품성을 소유하도록 이끌어 주는 동화는 여러 가지 생활소재에 기초하여 다양한 설화적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그러한 동화로서 ‘황금덩이와 구렁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달속의 옥토끼’ 등 많은 이야기를 들 수 있다. ‘황금덩이와 구렁이’는 우리 사람들 속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하나이다.
옛날 어느 한 마을에 앞 못보는 소경과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어느날 그들은 짚신을 삼아 가지고 난생처음으로 장을 보러 갔다. 소경은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업고 앉은뱅이는 앞 못보는 소경의 귀를 잡아 이리저리 돌리면서 길잡이를 했다. 고개밑의 샘터에 이르러 쉬게 되었는데 뜻밖에 샘에는 누런 황금덩이가 있었다. 앉은뱅이가 “금덩어리다”하고 기뻐하며 소리치니 소경도 “어디 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금덩이는 하나여서 나누어 가질 수 없었다. 마음착한 앉은뱅이는 금덩이를 만져보고는 자네가 이 무더운 날 나를 업고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는데 가지는 것이 좋겠다 하였고 소경은 소경대로 자네가 없으면 이리로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니 자네의 수고가 더 크다고 하면서 자네가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서로 사양하던 끝에 금덩이를 그대로 놔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은 고갯마루에서 한 양반을 만나게 되었다. 악한 양반은 소경더러 앉은뱅이를 내려놓고 자기를 업으라고 호통질을 하였다. 그들은 서로 떨어지면 아무데도 갈 수 없으니 양반님께서 사정을 보아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고개밑 샘에서 본 금덩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양반님께서는 그 금덩이를 가지고 장으로 가던 길을 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악하고 욕심 많은 양반은 이게 무슨 떡이냐 하고 한달음으로 샘터에 달려갔으나 거기에는 금덩이가 아니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질겁한 양반은 몽둥이로 구렁이를 힘껏 쳐서 죽이고는 소경과 앉은뱅이에게로 달려와서 양반을 속인 죄 용서치 않겠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갖은 행패를 부리고 가 버렸다.
소경과 앉은뱅이는 턱없이 매를 맞은 것도 분했지만 사람을 속였다는 말을 듣고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샘터로 가보니 거기에는 구렁이가 아니라 금덩이가 둘로 꼭 같이 나누어져 있었다. 앉은뱅이는 너무도 좋은 김에 “야 금덩이가 두 개다” 하고 달려가려는 순간에 다리가 쭉 펴지고 소경은 “어디 보자” 하는 순간에 두 눈이 번쩍 띄었다. 이렇게 되어 장으로 가던 소경과 앉은뱅이는 성성한 몸이 되어 금덩이를 하나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잘살게 되었다.
이 동화는 재물보다 의리를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고상한 미풍양속이며 그러한 품성을 지녀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동화 ‘달속의 옥토끼’는 그러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구전동화에는 전설적인 특성이 많은 이런 환상동화들과 함께 환상이 없이 생활자체의 논리와 예술적 허구에 의하여 창조되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유형의 동화는 중세말기에 창작된 재담적 민화의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삼동의 딸기’, ‘꾀돌이의 이야기’, ‘지주와 머슴’, ‘병풍속의 호랑이’, ‘어린 재판관’, ‘수돌의 꾀’, ‘선비와 초동’ 등은 중세말기에 창작된 것으로서 재담적 민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외 어른이 등장하지 않고 아이들 자신의 생활세계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도 전해지고 있다. 잘 알려진 이야기로 ‘참새잡이’를 들 수 있다.
어느날 머슴꾼의 아들이 참새 두마리를 잡았다. 그는 이 참새를 미끼로 지주의 아들을 단단히 골려줄 생각으로 그의 앞에서 새를 가지고 놀았다. 이것을 본 지주의 아들은 참새를 달라고 하나 머슴의 아들은 참새를 주지 않고 “내 참새 한 마리를 보고 부러워하지 말고 내 시키는 대로 하면 수천 마리의 참새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대준다. “너의 집 광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수천 마리의 새가 날아들게 아니냐. 이때 문을 잠근 다음 바람구멍에다 볏짚을 밀어 넣고 불을 달아놓아라. 그러면 광 안에 연기가 꽉 차게 되며 그러면 새들이 연기에 취하여 떨어지게 된다”고 일러준다. 지주의 아들은 이 말을 곧이듣고 그렇게 하여 결국은 제 집을 몽땅 태워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지주가 망했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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