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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일상생활 속에서 창조되고 전승되어 온 민화들에는 진리를 사랑하며 재물이나 권력보다도 정의와 의리를 귀중히 여기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생활풍습이 진실하게 반영되어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도덕관념과 생활풍습을 반영하여 효자에 대한 이야기가 수많이 창작되어 전해졌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효녀 지은’은 옛 문헌에 볼 수 있는 효자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이 민화는 앞을 못보는 어머니를 위해 과년토록 시집을 가지 않고 종노릇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는 지은을 효녀로 찬양하고 있다. 효자, 효부에 대한 이야기에는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 ‘안협의 한 효부’에서와 같이 효자, 효부를 도와주는 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강원도 안협 땅에 사는 한 여인이 열일곱살에 이천의 농부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편은 시집간지 몇달만에 병으로 죽고 시어머니 한분조차 늙은 데다가 눈까지 멀었다. 그에게는 다른 자식이란 없어 며느리에 의지하여 살았다. 친정부모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의지할 데 없이 고생하는 딸이 불쌍하여 은근히 재가하라는 뜻으로 여러번 떠 보았다. 그때마다 딸은 내가 만일 다시 시집간다면 불쌍한 시어머님은 누가 모시겠는가고 하면서 굳이 반대하였다.
친정어머니는 말로써 딸을 돌려세울 수 없음을 알고 어머니 병이 위독하다고 소식을 전하여 딸을 오게 하였다. 그런데 친정에 와 본 딸은 집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음을 알고 자기를 기다릴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그 길로 돌아서려고 하였다. 친정어머니는 그러는 딸의 손을 붙잡고 “너는 어찌하여 너를 길러준 부모의 정을 그렇게도 모른단 말이냐” 하면서 삶은 닭과 고기를 먹으라고 내놓았으나 딸은 수저를 들어 조금 먹고는 고기를 남기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딸의 갸륵한 마음을 알고 어서 먹으라고 하며 딸을 정으로써 끌려고 하였다. 그러나 고향동무들을 찾아보겠다고 하고는 가만히 고기를 싸 가지고 대문 밖을 빠져나와 시집을 향해 달렸다. 산중의 해는 이미 져서 어둠침침하고 별들이 반짝이었다. 여인의 앞에는 언제 왔는지 자기 집 삽살개가 동무하여 주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고 밤이 깊어 돌아온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는 “무슨 일로 그렇게 늦었단 말이냐” 하고 성을 내었지만 며느리는 유순하고 정다운 말로 그럴 듯이 위로한 후 가지고 온 고기를 어머니 앞에 벌려놓고 등잔에 불을 켜고는 물을 데워 대접하려고 부엌에 나갔다. 그제야 여인은 앞에서 길잡이를 하던 짐승이 삽살개가 아니라 범이었음을 깨달았다. 날이 밝은 뒤에 마을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시어머니를 받드는 지극한 품성이 마침내 이런 기이한 일까지 있게 하였구나”라고 하면서 칭찬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는 마을사람들이 여인의 어려운 일손을 도와주었고 한집안같이 화목하게 지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를 이어가며 여인이 어질고 참된 행실을 마을의 자랑으로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효자에 대한 이야기는 효자, 효녀, 효부 등 각이한 대상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으나 그 기저에는 부모를 존경하고 잘 모시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우리 민족의 고상한 도덕관념과 생활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민화유산에는 형제들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 사람들 속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의좋은 형제에 대한 이야기’는 형제간의 깊은 사랑과 우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화유산에는 또한 가정의 화목과 관련된 세태적인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민화 ‘두 가정’과 ‘새 며느리’는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가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배나무골에 박서방네와 최서방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박서방네 집은 식구가 많았다. 식구가 많으니 자연히 살림형편도 구차하였다. 그러나 박서방네는 언제 봐도 매우 화목하게 오손도손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박서방네를 보고 모두 부러워하였다.
그러나 최서방네 집은 그렇지 못했다. 그 집은 식구도 적었고 제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어 살림형편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서방네 집에서는 언제나 티격태격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최서방은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어느날 마을에서 제일 화목하게 산다는 박서방네 집을 찾아갔다. 최서방이 박서방네 집을 찾아갔는데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집 소가 고삐가 풀려 남의 조밭에 뛰어들었어요!” 박서방네 아들이 외치는 소리였다. “아니, 이런 변 봤나!” 박서방을 따라 온 가족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최서방도 따라나갔다. 커다란 황소가 밭에서 조이삭을 잘라먹다가 박서방 아들한테 고삐를 붙잡혀 끌려오고 있다가 고다.
그걸 보고 박서방이 식구들을 둘러보며 “내가 아침에 저놈의 소를 풀밭에 끌어 고삐를 든든히 매놓지 못한 것이 잘못이구나”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아니야요. 제가 아침에 여물을 잘 주었더라면 저 소가 곡식밭을 녹이지 않았을 거야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박서방 아들이 “어머니, 제가 점심때에 이놈을 풀이 많은 뒷골짜기로 끌어다가 옮겨 매지 못한 것이 잘못이야요” 하고 말하면서 황소를 뒷골짜기로 끌고 갔다. 이때 박서방의 며느리인 젊은 색시가 앞 시내에서 빨래를 하다가 빨래 광주리를 이고 들어오면서 “제가 오늘따라 빨래를 하면서 소가 놓여난 것도 모르고 있었구만요”하고 시부모님 앞에서 공손히 사과하였다.
이 광경을 본 최서방은 무릎을 탁 치며 크게 감동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옳구나!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가 제가 옳다고, 제가 잘났다고 하면서 잘못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미니까 다툼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로 양보하고 서로 이해하며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는 이 집 사람들은 참으로 훌륭하구나!) 화목의 비결을 찾은 최서방은 기뻤다. “박서방 고마우이. 정말 고마우이. 우리 집도 임자네와 같이 살아가려네” 최서방은 박서방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놓지 못하였다. 민화 ‘새며느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는 새며느리를 맞이하여 기쁨이 컸다. 며느리가 시집 온지 며칠되지 않은 어느날이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맞이한 기쁨으로 마누라를 보고 떡을 한번 해먹자고 하였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사위가 오면 떡을 치겠다고 남겼던 찹쌀을 내 놓았다. 새며느리가 시루에 떡쌀을 찌게 되었다. 그런데 불을 너무 많이 때서 가마가 달아 떡쌀이 타서 떡을 칠 수 없게 되었다. 새며느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때 시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서 며느리를 너그럽게 타이르는 것이었다. “내가 깜빡 졸아서 그렇게 되었구나. 나도 처음 시집와서 이런 일을 당했는데 지내놓고 보면 경험이 되어서 다시 그런 일이 없게 되었구나” 이때 남편이 산에서 나무를 해지고 와서 이 일을 보고 “내가 빨리 와서 불을 보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하고 아내를 위안하였다. 시아버지가 텃밭에서 일손을 놓고 들어오다가 시어머니가 눈을 꿈쩍거리는 것을 보고 눈치를 차리며 “내가 공연히 떡타령을 해서 새며느리의 허물을 만들다니…” 하고 웃어 넘겼다. 새 며느리는 인정 많은 시집사람들 속에서 언제 한번 큰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여성들은 부드럽고 강의한 성품을 지녔다. 오랜 세월 사람들 속에서 도덕적 귀감으로 전해져 내려온 ‘도미와 그 아내’, ‘설씨의 딸’, ‘현부인과 대추나무’ 등은 조선 여인들이 지니고 있는 고상한 정신도덕적 품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현부인과 대추나무’는 가난 속에서도 남편을 위하여 온갖 지성을 다하는 현숙한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청렴결백한 남편의 성격을 하나의 생동한 세태적 일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옛날 한 마을에 아주 마음이 곧은 선비부부가 살고 있었다. 선비의 아내는 그 가난 속에서도 마음을 굳게 먹고 글을 읽어 큰뜻을 성취하려는 남편에게 말없이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날 아내는 먹을 것을 구하려 밖으로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집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면서 자기 집 쪽으로 뻗은 이웃집의 대추나뭇가지에서 대추 몇 알이 떨어졌다.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여 대추를 주어 가지고 그에게 권하였다.
대추를 받은 선비는 기쁜 마음으로 어찌된 대추인가고 묻기에 아내는 생각없이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러자 선비는 아내를 준절히 꾸짖는 것이었다. “어찌 떨어진 물건이라 한들 제 주인이 있을 텐데 남의 눈을 속여 내 배를 채울 수 있으리요. 더구나 한 이웃에서 서로 믿고 사는 처지에서 어찌 마음을 가리고 살겠소. 그대가 나하고 사는지 수십년에 이제껏 남편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한스럽기 그지없소. 그대는 나와 배필이 안되니 쾌히 물러감이 마땅하리오” 아내는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를 굳이 용서치 않았다.
이웃집에서 이 사연을 알고 도끼로 대추나무를 쾅쾅 찍고 있었다. 선비가 이 소리를 듣고 어찌된 영문인가 묻자 옆집 주인이 하는 말이 “우리 집 대추나무가 아니였더라면 어찌 댁의 현부인이 나가게 되리오. 내 대추나무를 없애는 것이 지당하리오”하면서 도끼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는 “내 아내를 불러들일테니 대추나무를 베지 마시오”라고 해서야 옆집주인은 도끼질을 멈추었다. 그리하여 대추나무도 성하고 선비의 아내도 되돌아와 서로 도우며 화목하게 살았다고 한다.
우리의 민화집 들에서 보게 되는 ‘세가지 소원’, ‘섬처녀’, ‘금덩어리와 구렁이’, ‘산삼캐러 갔던 세사람’ 등을 비롯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각이 한 계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생활세태에 의거하고 있으나 진실한 인간, 자기보다 남을 위할 줄 아는 참된 의리를 지닌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거짓을 일삼으며 물욕 때문에 자기의 동무마저 저버리는 악한 자는 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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