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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우’는 조선 후반기에 활동한 민간기악단과 개별적인 연주가들 속에서 널리 연주된 대표적인 민간기악곡의 하나이다. ‘신아우’에 대하여 남도지방에서는 대금음악으로 많이 쓰인 악곡이라고 하여 ‘대금신아위’, 함경도지방에서는 퉁소음악으로 이용된 악곡이라고 하여 ‘퉁소신아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도지방에서는 신아우를 ‘신아위’, 긴신아위를 ‘진아위’, 잦은 신아위를 ‘잔아위’라고 불렀다.
‘신아우’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 없으나 그에 대한 어원적 해석을 통하여 그 발생시기를 추론할 수 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당시 재능 있는 음악가이며 연주가인 박연은 신정아악을 창제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까지 전해지는 민속가요, 향악곡들을 수집정리하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진아우(陳鴉羽)’였다. 이 ‘진아우’가 성악곡인지 기악곡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어원적으로 후세의 ‘신아우’와 일맥상통하며 또 남도지방에서 수집된 악곡인 것만큼 이에 연원을 둔 악곡이 바로 남도지방의 ‘신아우’라고 할 수 있다.
함경도지방의 ‘퉁소신아우’의 연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으나 그것이 오랜 역사를 가진 퉁소음악으로 쓰인 악곡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퉁소가 광범히 이용된 고려시대에 이미 창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아위에는 ‘대금신아위’와 ‘퉁소신아우’ 두가지 유형이 있다. 남도지방 육재비들의 연주곡목이었던 ‘대금신아위’에는 긴 신아위와 잦은 신아위 2개의 악곡이 있으며 그 곡조는 일반적으로 느리고 비장하며 사색적이고 호소적인 정서로 일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잦은 신아위 만은 좀 빠른 곡조로서 활기 있고 낙천적인 선율과 장단가락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남도지방 ‘신아우’가 무속음악과의 연관 속에서 발전하면서 살풀이장단을 많이 적용한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퉁소신아우’는 단천, 이원, 길주 등지를 중심으로 한 함경도지방에서 퉁소음악으로 보급되어 있던 악곡으로서 오늘날에도 유산적 가치가 있는 악곡이다. 함경도지방에서는 ‘퉁소신아우’를 ‘퉁소신아오’라고도 하였다. ‘퉁소신아우’에는 외적들을 무찌르는 싸움에서 항상 슬기와 용맹을 떨친 우리 선조들의 애국적 사상감정이 잘 반영되어 있다. ‘퉁소신아우’는 여러 가지 변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이원지방의 ‘퉁소신아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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