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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발을 따뜻이 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발모양을 곱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발가락을 남에게 드러내보이지 않으려는 예의로서도 버선을 신었다. 버선이라는 말은 일찍부터 씌여 고유한 우리말인데 기록들에는 ‘말(襪)’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발에 신는 옷이라는 의미에서 족의(足衣)라고도 하였다. 버선의 역사는 매우 오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기록에 나오는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이다. 834년 통일신라의 흥덕왕 때에 제정된 복식규정에 의하면 통일신라에서는 버선을 누구나 다 신었지만 버선의 재료는 신분에 따라 각기 달랐다. 진골에 속한 높은 급의 귀족인 대등은 고급비단인 능으로 지은 버선을 신었고 그 아래급인 6두품의 귀족은 거친 면주포 버선을, 5두품의 귀족은 면주 버선을 신었다. 4두품과 평민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5두품 귀족의 버선 재료와 같거나 그보다 못한 것을 신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의 버선은 여자들의 것보다 못한 재료를 쓰도록 규제되어 있었다.
이렇듯 통일신라에서 버선에 관한 상세한 규정이 제정된 것으로 보아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버선이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버선은 그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계승되어 널리 이용되었다. 조선 말기까지 전해온 버선의 형태는 오늘날의 장화 모양으로 생겼다. 조선 말기의 버선 유물을 보면 그 형태가 조선 초기의 것과 비슷하나 더 보기 좋게 되었다. 이것은 버선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다만 미적으로 다듬어지면서 계승되었음을 말해 준다.
무명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베나 명주, 비단 등으로 버선을 만들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무명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명주보다 값이 눅고 베보다 폭신한 무명으로 버선을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조선시대에 보급된 버선의 종류에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홑버선, 겹버선, 누비버선, 솜버선, 타래버선 등이 있었다. 홑버선은 천을 외겹으로 만든 것인데 대체로 더운 여름철에 신었으며 안에 신은 버선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위에 덧신기도 하였다. 겹버선은 천을 겹으로 하여 솜을 두지 않고 만든 것인데 봄, 가을에 신었다. 누비버선은 솜을 얇게 두고 누벼 이른봄, 늦가을에 신었는데 빤 다음에도 솜의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는 장점이 있었다. 솜버선은 솜을 골고루 두어 겨울에 신었다.
타래버선은 어린이용으로 만든 것으로서 대체로 버선코에 술장식을 하였거나 버선등에 꽃수를 놓아 처녀애는 다홍색 술을, 사내애는 남색 술을 달아 곱게 꾸몄다. 어린이들의 버선에는 버선이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버선목에 끈을 달아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먼 옛날부터 계절에 맞는 버선을 만들어 일상적으로 신어 왔는데 이러한 풍습은 우리 민족옷의 구성상 특성과 우리나라 기후 및 신발의 형태상 특성에 의해 생겨난 것이었다. 물론 양반들과 일반 백성들이 신던 버선에는 재료상의 차이가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사철 홑버선을 신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나마 신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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