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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꾸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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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자의 전통적인 머리꾸밈새에서 기본은 상투를 트는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남자가 어른이 되면 상투를 트는 것을 단정하고 소박한 풍습으로 여겨 왔다. 상투는 남자들의 긴 머리칼을 끌어올려 정수리에 삐죽하게 튼 것이다. 이렇게 튼 머리를 상투머리라고 하였다. 상투는 장가를 가기 전에 성인식(관례)을 한 남자나 장가든 남자라야 틀 수 있었으며 따라서 상투를 트는 것은 어른이 된 표시이기도 하였다.
상투를 트는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미 우리나라 고대시대 주민들 속에서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의 고조선 관계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에서 남자들이 상투를 틀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삼국지』 ‘한전(韓傳)’에도 진국에서 남자들이 ‘괴두로계’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여기서 ‘괴두로계’는 민머리에 날상투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고대에 남자들이 상투를 틀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남자들이 상투를 트는 풍습은 그후 삼국시대에도 계승되었다. 고구려의 씨름고분벽화에서 씨름꾼 두 사람이 상투를 튼 것을 볼 수 있으며 신라의 금방울무덤에서 나온 진흙으로 빚은 기마인물상의 남자도 상투를 틀었다.
삼국시대에 상투를 트는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외상투이며 다른 하나는 쌍상투였다. 여기서 기본은 외상투였으며 쌍상투는 머리숱이 특별히 많거나 힘장수와 같이 특별한 인물들만이 하는 머리꾸밈새였다.
삼국시대에 총각들과 사내애들은 어른들과 달리 단발머리를 하거나 머리칼을 짧게 하여 양쪽에 갈라 묶었으며 또 외태머리를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당시 총각들의 머리 형태가 외태로 단일화되지 않고 여러 가지였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고려시대에도 남자 어른들은 의연히 상투를 틀었으나 총각들의 머리 형식은 외태머리로 단일화되었다. 그것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장가를 들지 않은 남자들이 처녀들처럼 머리를 묶어 나머지를 아래에 늘어뜨리였는데 검은색 끈(댕기)을 달았다고 한 데서 명백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머리를 묶어 나머지를 아래에 늘어뜨렸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외태머리처럼 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남자 어른들이 상투를 틀고 총각들이 외태머리를 하는 풍습은 그후 19세기 말엽까지 그대로 계승되어 왔다. 상투를 트는 풍습은 1895년 단발령이 발포된 후에도 오랜 관습으로 인하여 금방 없어지지 않았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시대적 미감에 맞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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