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서비스 사이트맵 열린참여관 북한지역정보넷소개관 조선향토대백과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행정구역정보관 자연지리정보관 인문지리정보관 유물유적관 인물정보관 민속문화관 멀티미디어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인기검색어
내가 찾은 단어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 민속공예 > 죽공예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UCI :
스크랩주소 :
내부조회수 : / 외부조회수 :
스크랩수 :
역사개요
죽공예품의 종류
제작방법과 장식
북한지역정보넷 죽공예의 역사개관
죽공예는 왕대를 재료로 하여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장식품들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만들어내는 민속공예의 한 형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죽공예의 역사는 매우 오래다. 현재까지 전하여 지고 있는 기원전후 한 시기의 평양일대 고조선의 유적에서 드러난 채협(색상자)과 빗, 비녀, 일산살, 죽간 등은 죽공예의 오랜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에서 나온 채협은 같은 너비로 쪼갠 대를 가지고 씨와 날을 규칙적으로 엇바꾸면서 고리짝모양으로 정교하게 엮어져 있을 뿐 아니라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옻칠을 하였으며 인물들까지 그려져 있어 죽공예제작기술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시대의 죽공예발전을 토대로 하여 삼국시대에는 죽공예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고국원왕릉을 비롯한 고구려의 여러 고분벽화들에는 왕대로 만든 다양한 형식의 크고 작은 부채들이 생동하게 묘사되어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귀족들이 차고 다니는 수레의 앞뒤휘장으로 대발을 드리운다는 기록이 있고 경상북도 경주 천마무덤에서는 대를 엮어서 말안장에 깔아놓았던 자리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벽화, 기록, 유물 자료들은 삼국시대에 왕대로 만든 여러 가지 일용품이나 공예품이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에도 죽공예가 발전하였다. 『삼국사기』에 있는 후백제 견훤이 왕위에 오른 왕건에게 부채를 선물로 보냈다고 하는 기록과 또 자리를 제조하는 석전, 고리를 만드는 양전과 같은 전문왕대 수공업장들이 관청에 속해 있었다고 하는 기록들은 왕대제품생산이 전 시기보다 이 시기에 전문화 되었으며 많은 장공인들이 왕대가공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죽공예는 보다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죽공예품은 고려시대에 활발하게 진행된 국내상업과 대외무역에서 큰몫을 차지하였으며 이웃나라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왕대제품을 만드는 장공인들의 생산의욕을 높여주었을 뿐 아니라 왕대가공기술을 한 계단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되었다. 당시 수도 개경에는 대를 엮어서 자리를 만드는 죽제장, 양산, 우산을 만드는 어개장, 빗을 만드는 소장 등 왕대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수공업장들이 있어 돗자리, 고리, 우산, 양산, 붓대, 부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일용품과 문화용품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왕대세공품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전문적인 기술과 기능, 숙련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죽공예는 보다 높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 『규합총서』, 『임원십륙지』, 『목민심서』, 『성호새설류선』 등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들에는 각 지방의 특징의 특산품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공예품 가운데서 왕대제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전라도, 경상도를 비롯한 유명한 왕대산지들이 동시에 우리나라 죽공예의 명산지로 되었으며 왕대가공 기술과 경험도 세습적 성격을 띠고 한 가족, 한 고을을 단위로 대를 두고 물려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집집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왕대로 여러 가지 용구를 만들어 다른 물건과 바꾸며 의례와 조세의 공물도 전적으로 왕대공업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고 한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전 시기까지만 하여도 농사일의 여가에 왕대생활용구를 만들던 전라도, 경상도의 왕대산지 주민들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세습적인 전문왕대 수공업자로 되었다. 왕대가공품들이 그 지방의 진귀한 특산품으로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담양의 죽상자와 삿갓, 전주, 나주, 남평, 옥과, 곡성의 부채, 나주의 발, 영암의 빗과 오죽설대, 제주도의 잣량태와 삿갓, 통영의 양태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죽공예품제작이 전문직업으로 분업화되어 왕대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생산량이 늘어났으며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 뿐 아니라 상업유통 분야에서도 왕대제품의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북한지역정보넷  
사이트링크-국가지식포털 사이트링크-행정안전부 사이트링크-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사이트링크-평화문제연구소 사이트링크-통일부 사이트링크-통일교육협의회 사이트링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이트링크-통일문제연구협의회
로고-북한인문지리넷 북한지역정보넷 로고-국가지식포털
유관기관링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북한지역정보넷 저작권정책 북한지역정보넷 개인정보보호정책 북한지역정보넷 위치 및 연락처 북한지역정보넷 관리자에게 북한지역정보넷 배너및뷰어
식풍습
옷차림풍습
주택생활풍습
가족생활풍습
노동생활풍습
민속명절
민속놀이
민속음악
민속무용
구전문학
민속공예
    - 도자기공예
    - 나무공예
    - 금속공예
    - 나전옻칠공예
    - 수예
    - 죽공예
    - 화각공예
    - 돌공예
    - 초물공예
    - 종이공예
    - 기타공예
    - 민속공예의 계승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