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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원시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장구한 역사적 기간 나무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가구와 장식품을 제작하여 생활에 널리 이용하여 왔다.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은 그 재료상 특성으로 하여 오래 동안 보존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오늘날 나무공예의 초기발전모습을 찾아 볼만한 유물은 매우 적다.
청동기시대쯤에는 여러 가지 귀중품이나 옷가지를 비롯한 생용품을 넣는 나무로 만든 함이나 궤 같은 일용생활용구와 의장, 의례 기구도 제작되었을 것이다. 함경북도 무산 범의구석유적 15호집터, 회령 오동유적 14호집터에서 판자조각이 나왔는데 그러한 판자로 여러 가지 나무제품들을 만들어 쓴 것으로 인정된다.
지금까지 고대의 목기로는 비파형단검이나 세형동검의 나무로 된 검집, 평양시 용성구역 용추동의 구덩무덤에서 나온 5개의 마디로 이루어진 옻칠한 나무검집과 거기에 꽂혀있는 나무단검, 나무로 만든 그릇 등이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모두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으로서 당시 발전하였던 나무공예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의 나무공예는 전시기에 비하여 보다 생동한 자료들을 남기고 있다. 고구려고분벽화들은 당시의 나무제품에 대하여 적지 않은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고국원왕릉, 덕흥리무덤, 감신무덤, 춤무덤의 벽화들에는 무덤주인공을 비롯한 일부 인물들이 짧은 다리의 평상에 앉아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에서 평상이 주요한 가구의 하나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춤무덤이나 씨름무덤을 비롯한 여러 고분벽화들에는 네다리로 된 밥상들도 그려져 있다.
백제에서도 나무로 생활용품들을 많이 제작하였다. 무녕왕릉에서 나온 나무제품 유물은 그것을 실증해 준다. 무녕왕릉에서는 나무로 만들어 옻칠이나 채색을 하고 금, 은으로 장식한 나무관, 나무베개, 발받치개, 봉황대가리, 장도의 칼집 등이 나왔다. 무덤의 나무제품 유물을 통하여 백제에서 나무로 여러 가지 가구, 장식물, 침구 등을 훌륭히 만들었으며 장식도 하였다는 것을 잘 알수 있다.
신라의 나무유물이란 안압지에서 드러난 몇 가지 식기류와 주사위, 인형 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칠기류는 호우무덤, 천마무덤 등지에서 수십점이 나오고 안압지에서 100여 점이 나와 당시 사람들이 칠기를 많이 썼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안압지에서 나온 칠기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옻칠한 위에 얇은 은판을 오려서 보상화무늬를 형상한 것이다. 이러한 칠기를 평탈(平脫)칠기라고 부른다. 평탈칠기법은 무녕왕릉에서 나온 왕의 나무베개와 발받치개에 장식된 금판부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우리나라 나무공예의 발전수준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은 일본 나라현 법륭사에 보존되어 있는 옥충주자이다. 옥충주자는 고구려를 비릇한 우리나라 기술자들에 의하여 7세기 중엽에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나무공예품이다. 이 유물은 당시의 정교하고 섬세한 건축, 공예, 회화적수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세공품이다.
고려시대에도 나무공예는 가일층 발전되었다. 국가의 중앙수공업기관에서만도 각종 나무공예품 또는 칠공예품들이 생산되었다. 고려시대 나무공예의 형편은 유물로 전하는 몇가지 나전 경함, 상자, 책함, 합자 그리고 전라남도 승주군 송광사에 있는 목조 경패와 경질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나무공예는 보다 세분화 되어 발전하였다. 그것은 중앙관청에 나무, 옻칠, 왕대, 초물, 나전 등 여러 부문의 수공업장들과 수공업기술자들이 소속되어 있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즉 목소장(말털빗겨주는 나무빗 만드는 장인), 죽소장(대빗 만드는 장인), 궁인(활 만드는 장인), 시인(화살 만드는 장인), 염장(발 만드는 장인), 표통장(외교문서 등 서한을 넣는 통을 만드는 장인), 죽장(대나무를 가공하는 장인), 우산장(우산 만드는 장인), 파자장(우바자 만드는 장인), 조각장(조각공), 목공(대목, 소목), 아교장(아교 만드는 장인), 철장(옻칠하는 장인), 금박장(금박놓는 장인), 나전장(나전 하는 장인) 등 분업이 매우 세분된 수공업기술자들이 있었다.
이 시기의 나무공예품으로는 서안, 연상(연갑), 문갑(문갑장), 각개수리, 사방탁자, 머릿장, 책장, 이층장, 옷걸이장, 필통, 필가, 경대, 농, 궤, 함, 통, 소반, 함지, 고비, 빗법, 팔걸이, 나무베개, 등화구, 약장, 바둑판, 나무기러기, 찬장, 뒤주, 침대, 회전판, 실패와 같은 재봉용구, 화장용구 등 매우 다종다양하다. 조선시대 나무공예품의 품종 뿐 아니라 장식도 다양하였다. 이 시기 금속, 종이, 인두, 나전, 옻칠, 화각, 가죽, 뼈, 물고기가죽, 대모 등 여러 가지 공예기법과 자재를 도입하여 나무공예품들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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