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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대
삼현육각(육재비)
북한지역정보넷 삼현육각(육재비)
조선 후반기인 17~19세기에 우리나라의 도시와 농어촌들에서 활발한 예술활동을 벌린 민간기악단의 다른 하나는 삼현육각(三絃六角, 육재비)이었다.★ 삼현육각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에 기악을 전문으로 하는 거사, 광대들이 민간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향악5기’와 같은 민속극이 상연될 때 광대들에 의한 반주음악이 있었다. 그후 고려시대에도 국가적인 의식행사로 진행된 ‘산대잡극’, ‘구나행’과 같은 종합적인 예술공연 가운데 노래, 탈춤, 각종 기예에 대한 반주음악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에 토대하여 조선 전반기인 15~16세기에 이르러 ‘삼현’이라는 명칭을 가진 민간기악단이 무어지게 되었다.

‘삼현’이란 기록은 15세기의 재능있는 음악이론가였던 박연의 문집인 『난계유고』에 처음 보인다. 박연은 자기 자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긴 ‘가훈 17조’에서 “집안에 ‘삼현’, 가무를 가르치는 것은 참말로 가문을 망하게 하는 것이니 극히 삼가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15세기 초엽에 이미 민간기악단으로서의 삼현육각이 형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증해 준다. 이때 박연이 ‘삼현’을 반대한 것은 그가 ‘정악’만을 내세우려는 데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당시 삼현육각이 사회적으로 가장 천시되던 광대들로 무어진 민간기악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삼현육각은 17~19세기에 이르러 서울과 지방에 수많이 조직되어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이었다. 이 시기 삼현육각의 연주활동대상의 하나는 당시 국가적인 의식의 한 형태로 서울과 지방도시들에서 진행한 ‘산대잡희’와 ‘나희’였다. ‘산대잡희’와 ‘나희’는 산대놀이, 탈놀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기악반주에 탈춤, 칼춤(검무)과 같은 춤을 비롯하여 노래와 각종 기예들이 주되는 공연종목으로 되었다. 이때 그 기악반주와 가무놀이는 전적으로 민간예술인들인 광대들이 담당 수행하였다. 17세기 초엽의 기록에 “나례의식을 할 때 기악을 연주하고 가무놀이를 하는 것은 전적으로 광대들이 맡아하는 일이다” 라고 한 것은 ‘산대잡희’와 ‘나희’때의 기악반주를 삼현육각과 같은 광대들로 무어진 민간기악단이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 후반기 삼현육각은 또한 당시 민간에서 급격히 성행한 탈놀이, 마당놀이를 비롯한 전통적인 민속놀이에서 연주하였다. 각종 민속놀이와 개인집 잔치에 참가한 육재비들은 거기에서 탈춤, 칼춤, 승무 등의 춤과 노래, 놀이들의 반주음악을 담당하여 자기들의 기본연주곡인 ‘삼현영산’을 연주하였다. 황해도 봉산지방에서 성행한 ‘봉산탈놀이’때 육재비들은 탈춤반주음악으로 ‘탈춤영산’을 연주하였으며 함경도 단천, 이원 지방에서는 ‘마당놀이’를 하면서 검무(칼춤)반주음악으로 ‘검무영산’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전라도지방에서는 육재비들에 의하여 ‘삼현곡’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검무, 승무, 줄타기, 땅재주와 같은 춤과 놀이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조선 후반기에 삼현육각은 또한 부유한 계층의 생일, 환갑 잔치 등에서도 연주하였다. 잔치에 초빙된 육재비들은 기본연주곡인 ‘삼현곡’을 연주하였는데 황해도 안악지방에서 활동한 육재비들은 생일잔치, 환갑잔치 전날 저녁부터 당일까지 연주하였다. 특히 잔치 당일 육재비들이 주인집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처음 ‘긴영산’을 연주하면 주인과 가족들은 느리고 애조를 띤 이 곡을 들으면서 추억에 잠겨 눈물을 흘리게 되며 다음 ‘타령’으로 넘어가면 여기들이 나와서 칼춤을 추었고 마지막 ‘잦은 타령’을 연주하면 잔치에 모인 사람들이 춤추며 노래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삼현육각은 생기발랄하고 은근한 주선율을 담당한 피리, 대금, 해금, 퉁소와 같은 관현악기들과 다양하고 율동적인 장단가락을 표현하는 장고, 북과 같은 타악기들로 편성되어 있는 것으로 하여 야외에서 진행되는 탈춤, 칼춤, 승무들의 무용반주에 가장 효과적인 민간기악단으로 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삼현육각은 중세기 우리나라의 민간기악 음악발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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