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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는 역사기록들에 의하면 ‘상희’, ‘상기’라고도 하였다. 장기는 주로 남자들이 노는 놀이였고 여자들은 잘 놀지 않았다. 장기의 연원에 대한 기록은 똑똑한 것이 없으나 고려 때에는 틀림없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기록들에서는 흔히 바둑을 한자로 ‘기자로 썼으며 장기는 ‘棋’자를 써서 바둑과 구분하였다. 이것은 모두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데 그말의 재료가 바둑은 돌이고 장기는 나무이기 때문에 그렇게 구분한 것이다.
다음의 자료는 고려시대의 장기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18세기 초의 기록에 옛날에 ‘광상희’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장기판이 가로 14줄, 세로 15줄, 모두 210칸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군, 중군, 내영 등 말이 놓이는 위치가 각각 있었다. 이것은 가로 9줄, 세로 10줄로 된 조선시대의 장기판보다 더 크고 복잡한 것이었다. 줄이 많았던 사실로 미루어보아 말이 놓이는 위치와 말이 움직이는 방법도 달랐을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이미 오늘의 것과 같은 장기로 고정되어 있었다. 장기의 판구조는 대체로는 가로 70cm, 세로 60cm 정도의 직사각형, 나무판에 가로 9줄, 세로 10줄을 긋고 홈을 파고 거기에 먹물을 칠하여 만들었다. 판밑에는 7~10cm 정도 높이의 다리를 달기도 하였다. 장기쪽은 흔히 팔각형의 나무토막을 매끈하게 다듬어서 글자를 새겨넣었다. 왕을 의미하는 ‘한(漢)’, ‘초(楚)’, 싸움용 병차를 의미하는 ‘차’, 기마를 의미하는 ‘마’, 코끼리를 의미하는 ‘상’, 대포를 의미하는 ‘포’, 왕의 호위병을 의미하는 ‘사’, 병졸을 의미하는 ‘졸’ 등이 있다. 장기쪽의 크기는 역시 제작자의 취미나 장기판 크기에 따라 알맞게 만들었는데 왕을 제일 크게, 차·포·마·상을 그보다 작게, 졸·사는 훨씬 더 작게 만들었다.
놀이를 시작할 때 보통 나이가 많은 사람이 붉은색 말을, 나이가 아래인 사람이 푸른색 말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로 되어 있었다. 경기를 시작하여 왕앞에 포를 가져다놓고 두는 것을 면포장기, 왕앞에 상을 가져다놓고 두는 것을 면상장기라고 하고 왕앞의 양쪽귀에 말에 가져다놓고 두는 것을 양귀마장기라고 한다. 16개의 장기쪽으로 구성된 장기는 그 수가 깊고 두는 사람마다 제나름의 식이 있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전술은 매우 다종다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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