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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민속놀이 > 민속놀이의 역사적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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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민속놀이의 역사적 변천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부지런히 일하면서 낙천적이고 정서적인 생활을 지향하여 왔다. 원시사회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노동생활과 그 숙련과정, 쉴참의 즐거운 모임 등은 곧 민속놀이가 형성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원시인들은 원시사회의 전기간에 맹수들의 피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먹고 입고 쓰고 사는데 필요한 생활자료를 얻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노동활동을 벌렸으며 생활상 요구로부터 그것을 더욱 숙련시켜 나갔다. 동시에 사람들은 쉴참에 피곤을 풀며 생활을 유쾌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집단적으로 즐겼다.

신석기시기에는 활이 기본 사냥무기로, 전투무기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것은 이 시기의 문화유적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활촉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유물들을 종합하여 보면 찌르는 창과 함께 던지는 창도 많이 쓰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창을 잘 쓰기 위하여 찌르는 연습, 던지는 연습을 부단히 하였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 창던지기, 창찌르기와 같은 놀이가 발생하였을 것은 당연하다.

고대시대 놀이는 여러 부문에 걸쳐 발전되었다. 이 시기 경제와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말타기, 그네뛰기와 같은 놀이도 변화 발전하였다. 활은 작고 센 것으로 이름났던 단궁으로 발전하였으며, 철기가 보급되면서 쇠활촉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활촉의 형태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것은 활이 위력한 전투무기로, 사냥무기로서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을 말하여 주며 동시에 이 시기에 활쏘기가 더욱 광범히 진행 되었다는 증거로 된다. 또한 고대시대 비파형단검과 세형동검이 위력한 전투무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역사유적들에서 청동단검유물들이 수많이 드러나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흔히 전투에서만 아니라 놀이에서도 단검쓰기 솜씨를 보여주었을 것으로 짐작하게 한다. 고조선에는 비록 키는 작으나 잘 달리는 ‘과하마’라는 말이 있었고 이 시기 역사유적들에서는 말뼈와 마구부속들이 수많이 나온다. 이러한 사실은 이 시기에 말타기를 많이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대시대의 민속놀이는 원시시대와 다른 일련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대시대 민속놀이의 특성은 우선 앞선 시기와는 달리 일부 민속놀이들이 생산이나 군사 활동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놀이로서의 형식을 갖추고 나타난 것이다. 앞선 시기의 민속놀이는 대체로 생산노동과 밀착되어 진행 되었다. 원시시대에는 생산활동과 민속놀이가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면 고대시대에는 일련의 민속놀이들이 그 자체로서 정서생활의 독자적인 한 분야를 이루고 발전하게 되었다.

고대시대 민속놀이의 특성은 또한 앞선 시기와 달리 주로 군사적 성격을 띤 것이다. 원시시기의 민속놀이는 그 사회제도의 특성으로 하여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투쟁,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생존수단을 얻기 위한 생산노동이나 육체적 활동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계급사회에 들어선 이후인 고대시대의 민속놀이는 대체로 외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준비와 연결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대시대의 민속놀이들은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말타기 등과 같이 군사행동과 직접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삼국시대의 민속놀이들은 역사기록과 무덤벽화들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이 시기 이미 무술연마놀이, 체력단련놀이, 지능겨루기놀이, 탈놀이, 어린이놀이 등 여러 부문에 걸친 다양한 놀이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삼국시대의 우리 민족의 용감하고 민첩한 기질을 보여주는 무술연마놀이로서는 활쏘기, 말타기, 칼쓰기, 창쓰기, 수박희, 석전(돌팔매놀이) 등이 있었다.

활쏘기와 말타기놀이는 세 나라에서 다 하였지만 특히 용맹하고 강의한 기질을 가지고 있던 고구려 사람들 속에서 많이 진행되었다. 다음으로 삼국시대 무술연마놀이로서 들 수 있는 것은 칼쓰기, 창쓰기 등이다. 이것은 고구려무덤벽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칼쓰기와 창쓰기는 고구려인들의 민속놀이에서 주요한 종목의 하나였다. 고구려무덤벽화에서 기마전투장면들에 칼쓰기와 창쓰기가 나타나며 칼춤, 창춤, 칼곡예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서 칼쓰기, 창쓰기 놀이가 매우 성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무술연마놀이의 한 종목으로서 맨손놀이인 수박희가 있었다. 고구려의 여러 무덤벽화에는 이 놀이가 생동하게 그려져 있다. 수박희는 맨손으로 상대방을 치거나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것으로서 그 놀이내용으로 보아 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무술연마놀이의 다른 한 종목으로서는 석전(돌팔매놀이)이 있었다. 고구려에서 많이 한 석전은 두 패로 나누어 일정한 거리에서 돌을 던져 승부를 가르는 것으로서 시작은 사냥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무술연마놀이와 함께 여러 가지 체력단련과 기교 놀이도 있었다. 이 시기 널리 보급된 놀이로는 씨름, 줄다리기, 중량물들기, 걷기, 달리기, 연띄우기, 투호, 축국, 대말타기, 말기교, 손기교, 발기교, 공기교, 무동 등 다양한 종목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서 씨름, 중량물들기, 대말타기와 기교놀이인 말기교, 손기교, 발기교, 무동 같은 놀이들은 고구려무덤의 벽화들에 생동하게 보인다. 나머지 민속놀이들은 기록에만 전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밖에 지능겨루기놀이로서 윷, 바둑, 쌍륙 등도 있었다. 기록에 전하는 것은 없으나 고누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고누는 일반백성들이 주로 논 놀이었으므로 기록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시기 이미 바둑과 같은 놀이가 있었던 만큼 그것보다 간단하고 통속적이며 놀기도 쉬운 고누가 없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삼국시대에는 무술연마놀이, 체력단련놀이, 지능겨루기놀이와 같은 다양한 놀이들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민속놀이들을 종합하여 보면 몇 가지 주목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삼국시대에 이미 민속놀이의 기본 종목들이 대부분 출현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여러 가지 무술연마놀이와 함께 체력단련놀이로서 씨름, 줄다리기, 구기놀이, 기교놀이, 육상과 관련한 놀이들이 새로 많이 생겨났으며 지능겨루기놀이도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이 시기 구기놀이의 발전은 민속놀이에서 새로운 단계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앞선 시기의 민속놀이는 대체로 생산이나 국방과 직접 관련된 것이었으나 구기놀이는 사람들의 체육적 요구로부터 일정한 놀이도구를 가지고 기술을 익히는 놀이로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민속놀이들이 세 나라에서 다같이 진행되었으나 특히 고구려에서 보다 발전한 것이다. 고구려인들이 무술연마와 체력단련을 위한 놀이를 활발하게 진행한 것은 건국초기부터 수많은 종족들, 강대한 이웃나라들과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키자면 강력한 국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였던 사정, 고구려가 위치한 자연지리적 조건과 그에 따르는 생산활동의 특성, 그리고 용감하고 활달하며 씩씩한 기상을 지닌 고구려인들의 민족적 기질과 관련되어 있었다.

셋째로, 그것은 세 나라의 여러 민속놀이 가운데서 무술연마놀이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것이다. 역사기록에도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말타기 등 무술연마놀이가 많이 보이며 무덤의 생활풍습 가운데서도 무술그림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시대에 가장 많이 하고 발전한 민속놀이종목이 무술연마놀이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 민속놀이도 전 시기의 경험과 성과를 계승하여 가일층 발전하였다. 자료의 부족으로 이 시기의 놀이의 전모를 다 밝힐 수 없으나 알려진 것만 보아도 공다루기, 바둑, 대말타기, 격구 등 민속놀이들이 있었다. 이 시기의 기록에 처음 보이는 민속놀이는 격구이다.

격구는 말타고 다루는 구기운동이다. 격구는 말을 탈 뿐 아니라 손동작이 민활해야 하며 판단이 빨라야 하는 민속놀이로서 당시의 군사들에게 유익한 놀이였다. 후에 격구는 고려, 조선 시대까지 우리 나라 군사들의 무술을 익히기 위한 놀이로 널리 진행되어 왔다. 발해는 공치기의 기교를 보여주는 격구와 같은 무술의 성격이 농후한 놀이들을 즐겨 진행하였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민속놀이는 발해의 그것과는 대조적이다. 무를 경시하고 오직 유교적인 학문연구에만 치우침으로써 민속놀이에서도 건전하고 발랄한 무술연마와 체력단련을 위한 놀이들은 발전할 수 없었다. 고려시대 민속놀이는 종목과 내용에서 가일층 다양해지고 풍부화되었다. 고려는 근 500년간 존재하는 기간 앞선 시기부터 전하여오는 민속놀이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놀이들을 창조하고 발전시켜 왔다. 고려시대에 있은 무술연마놀이로서는 말타기,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돌팔매놀이, 수박희 등이 있었으며 체력단련놀이로서는 격구, 타구, 포구, 기구, 척초희(풀뭉치던지기), 씨름, 그네, 수희(물놀이), 대말타기, 연띄우기, 달리기, 뜀뛰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민속놀이들의 대부분은 고려이전시대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논 민속놀이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고려시대의 기록들에 가장 많이 보이는 민속놀이는 격구, 말타기, 활쏘기, 그네 등이다. 앞선 시기의 기록에 보이지 않던 민속놀이는 타구, 포구, 기구, 척초희, 수희, 등이다.

이 시기의 지능겨루기놀이로서는 바둑, 장기, 윷, 쌍륙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서 장기만은 고려시대에 처음 보이는 종목이다. 고려시대에 새롭게 생긴 민속놀이들은 많지 않으나 앞선 시기부터 전하여 오던 민속놀이들이 이때에 와서 형식과 내용이 상당히 세련되고 보충되게 되었다.

고려시대 민속놀이에서 주목되는 것은 첫째로, 구기놀이가 특별히 발전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앞선 시기의 축구, 격구 놀이를 계승 발전시켜 격구, 타구, 기구, 포구, 척초희 등 여러 가지 구기놀이로 확대 발전시켰다. 이 가운데서 말을 타고 공을 치는 격구, 지상에서 공채로 공을 치는 타구, 바람넣은 공을 발로 차는 기구, 일정한 구멍에 공을 던져 넣는 포구 등은 오늘 국제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체육경기들인 폴로, 골프, 축구, 농구 등과 유사한 것이었다. 둘째로, 그것은 고려말기에 이르러 민속놀이에 대한 국가의 제한과 제재가 심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 초 중기까지도 민속놀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한 예는 없었다. 그러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사회내부에 유교가 깊이 침투되고 보다 엄격한 신분적인 상하차별과 질서를 추구하게 되면서 지어 민속놀이까지 억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통치자들은 강한 신분관념으로부터 전 시기까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놀아오던 놀이들도 이러저러한 구실 밑에 제한하고 억제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민속놀이는 그 형식과 내용이 보충정리되어 더욱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들의 연원은 매우 오래나 고려시대까지는 놀이방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구체적인 자료에 의하여 그 자세한 내용을 알수있게 되었다. 이 시기 민속놀이에서는 전기와 후기 사이에 발전상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전반기의 민속놀이는 무능한 통치자들의 문존무비사상에 의하여 전반적으로 쇠퇴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조선 전반기의 민속놀이에서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우선 봉건시기에 전하여오던 민속놀이들의 규칙과 규정이 명확히 정해져 그의 내용이 비교적 완비된 것이다. 앞선 시기에도 활쏘기, 창쓰기, 칼쓰기는 많이 진행되었으나 경기내용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조선 전반기에 이르러 그것들의 구체적인 종류와 규격, 구조, 목표물, 경기방법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격구 역시 조선전반기에 와서 격구의 채와 공의 형태, 규격, 격구방법, 채점법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밖에 이미 오래전부터 놀아오던 널뛰기, 그네뛰기, 달리기, 짐나르기, 수영, 여러기교놀이, 지능겨루기놀이 등도 이 시기에 이르러 놀이방법까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조선 전반기 민속놀이의 또 다른 특징은 새로운 민속놀이종목들이 그 어느 시기보다도 많이 나타난 것이다. 썰매타기, 도적잡기, 윤목희, 짐나르기 달리기와 같은 체력단련놀이와 함께 종정도, 남승도, 성불도, 작성도와 같은 앞선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능겨루기놀이들이 나타났다. 앞선 시기의 민속놀이들은 주로 무예와 힘, 강의성을 발휘하는 굳세고 씩씩한 것이었다면 이 시기에는 지능과 기교를 발휘하는 섬세한 놀이들이 수많이 생겨났다.

조선 전반기 민속놀이의 마지막 특징은 민속놀이들이 점차 형식화 되어 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조선에서 무술연마놀이를 비롯한 체력단련놀이들에 대한 놀이 절차와 규칙들을 정비하는 계기를 통하여 뚜렷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 양반지배계급들이 즐겨한 놀이들이 형식화 되었으며 점차 실용성이 적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은 놀이에서도 엄격한 계급적 차별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 체력단련놀이들은 본래의 체력단련의 성격은 거세되고 하나의 의례적인 것으로 변모되어 갔다.

조선 후반기에 전통적인 다양한 민속놀이들은 국가의 구속에서도 부단히 계승발전되었다. 이 시기 일부 진보적인 학자들이 군사를 강화할 것을 염원하면서 무술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무예서적들을 편찬하였다. 이것은 무술놀이발전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출판된 무예관계 서적으로는 『무예제보』와 『무예도보통지』 등이 있다. 『무예신보』는 임진왜란 당시 한교 등에 의하여 편찬된 『무예제보』에 기초하여 18세기에 무예를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무예제보』는 곤봉쓰기, 창쓰기, 칼쓰기 등 몇가지 무예에 대하여 서술한 책이다. 그후 18세기중엽에 『무예신보』에서는 이러한 성과에 기초하여 내용을 다시 보충하여 18가지의 무예를 그림으로 해설하였다. 실학자인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은 『무예신보』에 다시 말타고 창과 칼 쓰기법 등 6가지 무예를 더 보충하여 24종의 무예를 한데 묶어 서술하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놓은 『무예도보통지』를 1790년에 편찬하였다.

조선 후반기의 체력단련놀이로서는 줄다리기, 씨름, 차전, 동채싸움, 다리밟이, 놋다리놀이, 널뛰기, 그네뛰기, 격구, 공차기, 장치기, 수구 등과 함께 어린이놀이 40여종이 있었다. 앞선 시기 기록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종목은 다리밟이, 팽이치기, 공기, 장치기, 수구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놀이들이다. 조선 후반기의 지능겨루기놀이로는 장기, 바둑, 윷, 쌍륙, 남승도놀이, 시패, 가투를 비롯하여 20여종의 놀이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 이 시기의 기록에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시패와 가투이다. 이 밖에 인형 및 탈놀이도 성하였다. 그러한 놀이로서는 꼭두각시놀이, 만석중놀이 등의 인형놀이와 각지의 탈놀이, 사자놀이, 거북이놀이, 소놀이와 같은 짐승탈을 쓰고 노는 민속놀이가 있었으며 소싸움놀이, 닭싸움놀이와 같이 직접 짐승을 싸움시키며 구경하는 것이 있었다.

조선 후반기 민속놀이에서의 변화는 첫째로, 백성들이 즐겨 놀던 체력단련놀이와 지능겨루기놀이 등이 보다 발전한 것이다. 이 시기 통치자들 속에서 지난날 크게 발전하여온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와 같은 무술연마놀이를 유흥삼아 놀았고 그를 장려하지 않음으로써 무술연마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게 되었다. 구기놀이에서도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던 격구와 타구 같은 것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으며 달리기도 같은 형편에 있었다. 당시 통치자들은 운동량이 많이 요구되고 육체적 동작이 힘든 놀이는 천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들 자신이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성들이 하는 것조차도 시비하고 방해하였다.

둘째로, 사람들의 사회경제생활의 범위가 넓어지고 정서적 수요가 높아지면서 일부 민속놀이가 전문화 되어간 것이다. 백성들은 칼쓰기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검계를 맺어 후비를 키웠고, 또한 이미 널리 퍼졌던 말타기가 쇠퇴하면서 백성들은 말타기를 마상재로 변화시켜 일부 전문 기마수들이 말 위에서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운동으로 만들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박선수들을 선발하여 경기를 진행하였다. 당시 비록 넓은 범위에서 전문화된 종목은 많지 못하였으나 점차 전문화수준은 높아지게 되었다.

셋째로, 조선 후반기에 백성들이 즐겨놀던 민속놀이들이 보다 대중화된 것이다. 이 시기 보다 대중화된 민속놀이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구기놀이에서도 국가적으로 장려하던 격구나 타구는 쇠퇴하였으나 그 반면에 공차기와 장치기는 백성들 속에 널리 일반화 되었다. 이밖에도 줄다리기, 씨름, 그네뛰기, 널뛰기는 전국적으로 명절의 분위기를 돋우는 대중적인 놀이로 되었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놀이들도 대중화 되었다.

근대시기의 민속놀이는 조선 후반기의 민속놀이를 계승한 것으로서 크게 달리진 것은 없었다. 이 시기 앞선 시기부터 놀아오던 일부 민속놀이는 자취를 감추고 부분적인 민속놀이는 시대적 추세에 맞게 변화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시기에 이르러 완전히 자취를 감춘 민속놀이로서는 격구, 타구, 칼쓰기, 창쓰기 등을 들 수 있다. 격구는 조선 후반기부터 쇠퇴한 것으로서 근대시기에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타구는 놀이방법이 그와 유사한 골프가 유행되면서 골프로 변하였으며 칼쓰기와 창쓰기는 총포가 발전하면서 실용적 가치가 적어지게 되자 쇠퇴하여 버렸다. 그러나 시대적 추세에 맞게 개조된 민속놀이도 적지 않다. 그러한 민속놀이의 하나는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300보, 600보, 1,350보 달리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두사람이 세발 달리기 등 여러 가지 종목으로 발전하였다.

근대시기에는 민속놀이와 함께 현대적인 체육종목들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근대적인 학교들이 세워지면서 학교에서는 민속놀이와 현대체육을 과정 안에 포함시켜 발전시켜 나갔다. 1897년 6월 16일에 훈련원에서 있은 영어학교 운동회에 대하여 당시 『독립신문』에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경기종목은 300보달리기, 600보달리기, 1,350보달리기, 공던지기, 대포알(포환)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두사람이 세발달리기, 경마달리기, 줄다리기 등이었다. 1900년대 초 봄과 가을에 진행된 연합운동회의 경기종목에는 여러 가지 달리기와 함께 우리 백성들이 즐겨하는 씨름과 줄다리기, 공차기, 밤줍기, 깃발빼앗기 등이 들어 있었다. 그 다음부터 이러한 민속놀이들이 경기종목에 포함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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