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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옛 기록들에 의하면 ‘세수(歲首)’, ‘연수(年首)’, ‘원단(元旦)’, ‘원일(元日)’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모두 한해의 첫날이라는 뜻이다. 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다. 설과 관련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초가 되면 강(패수)가에 모여서 놀았다. 이날에는 돌팔매놀이와 눈끼얹기 같은 편싸움놀이를 하였는데 서로 쫓고 쫓기우다가 그치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에 나와 앉아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왕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씌여 있다. 7세기 초엽 이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 『수서』에 이미 신라에서 설날에 축하도 하고 놀이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면 신라에서도 벌써 오래전부터 설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도 설맞이 행사를 매우 이른 시기부터 하였다. 백제에선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왕이 정월 초하루 날에 큰소매가 달린 자주빛 겉옷(대수자포)과 푸른 비단바지,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관, 흰 가죽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에서 정사를 처리하였다. 이것은 백제에서도 설맞이를 초기부터 국가적인 행사로, 궁중행사로 진행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은 복잡다사한 생활로 가득찼던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맞는 새해 첫날 명절인 만큼 특별히 더 잘 준비하였으며 당일에는 조상들과 웃어른들에게 예의를 표시하였고 흥미있는 다양한 놀이로 즐기었다. 설맞이행사는 새해 정월 초하룻날 새벽부터 진행되었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서 진행한 설맞이행사로는 차례와 세배, 설음식대접, 민속놀이 등이 있었다.
설날새벽에 먼저 돌아간 조상들에게 드리는 설인사와 같은 것으로서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제사)를 지내었다. 차례는 윗사람을 존경하던 풍습의 연장으로서 집안의 ‘번영’과 자손의 ‘흥’이 조상을 어떻게 위하는가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한 조상숭배관념에서 나온 행사였다. 동시에 차례는 돌아간 조상들도 잊지 않고 새해를 맞으면서 세배 드리는 형식의 제사였다. 차례를 지내는 제상에는 몇가지 음식과 함께 반드시 떡국을 올리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설날차례를 ‘떡국차례’라고도 하였다.
설날 이른 아침에는 웃어른들에게 세배를 하였다. 세배풍습은 우리 주민이 윗사람을 존경하고 예의를 귀중히 여겨온 데서 생겨난 풍습이다. 그러므로 설날이 되면 우선 집안의 윗사람 순서로 차례차례 큰절로 세배를 드렸으며, 다음에는 마을안의 웃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였다. 가까운 친척집의 윗사람들, 마을의 나이 많은 어른들, 훈장(선생)들에게 의례히 세배를 드리었다.
설날 노인들이 있는 집에서는 간단한 예물을 준비해 놓았다가 세배를 받고 난 다음에는 아이들에게는 콩강정이나 잔돈을 쥐어주었고 어른들에게는 간단한 음식을 내놓았다. 이웃 마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웃어른들에게도 세배를 다녔는데 그때의 세배는 보름 전에 하면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 되었다. 친구들 사이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덕담(앞으로 잘되기를 축복하는 말)’을 주고 받았다. 친구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알맞은 말을 하였는데 “새해에는 아들을 보게나”하든가 “새해에는 소원성취하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세배는 예의도덕이 바른 우리 주민에게 있어서 가장 주요한 설맞이 행사의 하나였다. 설날에 하는 즐거운 일은 다음으로 설음식을 잘 차려 친척들이 한곳에 모여 나누어 먹거나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설날 음식은 세찬이라고 하였다. 이날에는 특색있는 음식인 찰떡, 설기떡, 절편과 같은 떡과 여러 가지 지짐류, 당과류, 수정과, 식혜, 고기구이, 과실, 술들을 마련하였고 특히 떡국과 만두국은 설날음식으로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설을 쇨 때 반드시 떡국을 먹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떡국에 ‘첨세병(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하였다. 만둣국은 서북조선 일대에서 흔히 설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설날에 술을 마시는데 ‘세주불온(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하여 찬술을 한잔씩 마셨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었다. 설에는 도소주를 마시였는데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는 술이다. 도소주는 육계,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만든 술이었다. 그러므로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설명절을 특별히 장식하고 즐겁게 한 것은 민속놀이었다. 설날아침 세배를 하고 설음식을 든 다음에는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다. 설날의 놀이로는 대중적인 놀이인 윷놀이와 여성들이 즐기는 널뛰기, 어린이들이 노는 연띄우기, 썰매타기, 바람개비놀이 등이 있었다.
설날에 즐겁게 논 대중적인 민속놀이의 하나는 윷놀이었다. 윷놀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놀이이다. 집안식구들끼리 놀 때에는 방바닥에 깔개를 펴고 적당히 편을 뭇고 놀았다. 남자들은 흔히 마당에다 멍석을 펴놓고 놀았다. 여자들끼리는 밤윷이나 콩윷이라고 하여 자그마한 나무쪽의 윷이나 콩, 팥을 절반 쪼갠 것을 가지고 놀았다. 콩윷은 토시처럼 종이로 만 것을 세워놓고 거기에 윷을 쏟아 넣어 윷이 나는 것을 보며 말을 썼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밤윷이나 장작윷을 가지고 놀았다.
설날에 여자들이 한데 모여서 즐긴 놀이의 다른 하나는 널뛰기였다. 널뛰기는 여성들의 놀이로서 설날과 대보름날에 성황을 이루던 놀이었다. 마당에 멍석을 둘둘 말아서 굄목으로 하고 그 위에 긴 널판을 가로 놓은 다음 두 사람이 판자 양 끝에 마주 올라서서 구르며 놀았다. 처음에는 잘 구르지 않으므로 널 한복판에 한사람이 올라앉아 구르는 편으로 이쪽저쪽 몸무게로 힘을 더해주어 구르는 사람들이 이내 뛰어오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두 사람이 겨끔내기로 뛰어오르며 내리며 하다가 서로 힘이 진하거나 땅에 떨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면서 즐겁게 놀았다.
설날 추위를 무릅쓰고 아이들이 성수가 나서 즐겨 논 것은 연띄우기였다. 연띄우기는 어른들도 하였지만 주로 어린이들이 즐겨하는 놀이었다. 아이들은 높직한 마을의 등판에 올라가 연띄우기를 하면서 연을 높이 솟구치게 하거나 내리 꽂혔다가 다시 오르게도 하였고 연줄끊기 내기도 하였다. 연띄우기는 대체로 전해 초겨울부터 시작하여 정초를 거쳐 정월대보름명절까지 성황을 이루던 놀이었다. 연이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연줄이 길게 풀려나가는데 바로 연띄우기는 그 긴줄의 길이만큼 오래 살기를 염원한 데서 생긴 놀이었다.
썰매타기는 설 명절날에 즐겨 노는 어린이들의 신바람 나는 놀이었다. 얼음판에서 아이들은 팽이치기도 하며 즐겼다. 설날 아이들은 바람개비놀이도 하였다. 바람을 많이 받을수록 바람개비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재미로 하여 어린이들은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더욱 힘차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설날저녁에는 일찍 자는 풍습이 있었다. 설날저녁에는 ‘야광귀신’이 나다닌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왔다. 야광귀신은 설날 밤에 집집에 나타나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해가 지면 신발을 감추어 놓고 집안에서 놀다가 자리에 들었다. 이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일찍 잠재우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믐날에 설맞이 준비를 하느라 잠을 설쳤고 설날에는 새벽부터 세배와 민속놀이, 손님맞이에 해종일 바삐 지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명절기분에 들떠서 자지 않고 떠들썩거린다. 이로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잠을 재워야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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