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RSS서비스 아이디비밀번호찾기 회원가입 사이트맵 열린참여관 북한지역정보넷소개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행정구역정보관 자연지리정보관 인문지리정보관 유물유적관 인물정보관 민속문화관 멀티미디어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인기검색어
내가 찾은 단어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 노동생활풍습 > 노동생활의 계승발전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UCI :
스크랩주소 :
내부조회수 : / 외부조회수 :
스크랩수 :
북한지역정보넷 노동생활풍습의 계승발전
항일유격대원들은 일제와 맞서 싸우는 어려운 속에서도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양봉업과 사냥을 하는 등 노동활동을 통하여 필요한 식량과 후방물자를 해결하였다. 토지를 분여받아 땅의 주인으로 된 유격구사람들은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면서 농사일을 알심있게 하였다. 그들은 힘껏 거름을 마련하여 땅을 걸우었으며 굶주림속에서도 어떻게 하든 종자를 장만하고 보관하였다. 그들은 부족되는 축력과 농기구들을 서로 같이 쓰고 자체로 해결하여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이 시기 농민들은 주로 감자, 옥수수, 조, 귀밀과 같은 곡식들을 심었다.

일제시기 적들의 ‘토벌’이 빈번하고 농사를 파탄시키기 위한 책동이 극심한 조건에서도 유격구사람들은 항일유격대의 방조와 보위 밑에 김을 매고 덧거름을 주는 등 농작물을 알뜰히 가꾸었다. 그들은 밭일을 하다가도 적들이 습격해 오면 유격대를 도와 총을 잡고 놈들과 싸웠으며 적들을 물리친 다음에는 다시 호미를 쥐곤 하였다. 이때 농민들은 주로 소겨리나 품앗이반을 맺어 집단적으로 농사일을 하여 부족되는 노력과 축력, 농기구들을 해결하였고 농업생산을 보다 늘이었다. 그들은 상호 협조하는 미풍을 발휘하면서 식량증산을 위한 투쟁을 긴장하게 헌신적으로 진행하였다.

유격구사람들은 항일유격대원들과 함께 일제의 ‘식량봉쇄’ 책동을 물리치면서 지어놓은 곡식을 가을하고 탈곡하는 일을 전투적으로 진행하여 귀중한 식량을 확보하였다. 항일유격대는 유격근거지-해방지구에서 사람들과 함께 자체로 농사를 지었을 뿐 아니라 적구의 밀영에서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식량을 해결하였다. 유격구사람들은 또한 가축기르기 양봉업, 사냥 등 여러 가지 생산활동을 진행하여 생활상 보탬과 유격대 원호물자를 마련하였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데서 중요한 수단인 소를 정성껏 키우고 관리하였으며 닭, 돼지 등 가축들을 길러 요긴하게 쓰곤 하였다. 그리고 깊은 산속이나 집주변에 꿀벌통들을 만들어놓고 영양가 높은 꿀을 많이 생산하였으며 여러 가지 사냥도구들을 이용하여 멧돼지, 노루, 곰, 토끼, 꿩 등 산짐승들을 잡아 유용하게 썼다.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전통적인 노동생활풍습은 광복 후 더욱 빛나게 계승 발전되었다. 과거에 형성된 노동생활풍습 가운데서 진보적이고 우수한 전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계급사회에서 이루어진 유산이고 과학기술이 덜 발달한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많은 제한성을 가졌다. 지난날 우리 민족의 성실하고 근면한 노동생활관습, 토지와 자연부원을 귀중히 여기고 알뜰히 관리하며 생활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풍습, 생산노동에서 이웃간에 상호협조 하는 미풍, 오랜 경험을 통하여 형성된 능률적인 생산 기술과 방법, 비록 손노동에 기초한 것이기는 하나 물질적 부의 생산에서 유익한 생산도구의 사용풍습 등이 광복 후 폭넓게 계승 발전되어 노동생활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북한의 노동생활풍습은 과거사회에 형성된 노동생활풍습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노동생활풍습이다. 농사를 ‘천하지대본’으로 중요시하면서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는 풍습, 거름장만과 기경과 관련한 풍습, 종자처리와 파종, 모내기와 김매기와 관련한 풍습, 힘든 농사일을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수행하는 공동노력협조풍습, 수확과 탈곡, 낟알 보관, 찧기와 관련한 풍습, 각종 농기구사용풍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날의 농사풍습은 비록 우리 민족이 장구한 기간에 쌓은 경험과 기술,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자연지리적 환경에 토대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당시로서는 진보적이며 우수한 것이었으나 시대적인 제한성을 면할 수 없었다. 광복 후 농촌생활과 영농기술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적지 않은 농사풍습은 그 의의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일부만이 새로운 사회경제적 조건에 맞게 계승 발전되게 되었다.
광복 후 계승 발전되고 있는 전통적인 농사풍습의 하나는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는 풍습이다. 광복 후 우리 농민들은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농업생산의 기본수단인 토지를 귀중히 여기는 것을 중요한 생산풍습으로 계승 발전시켜왔다. 광복 후 우리 농민들이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는 관점과 태도는 근본적으로 다른 토지소유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지난 시기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그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지난날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던 농민들의 관점은 사적소유가 지배하고 가혹한 수탈이 동반되는 사회적조건의 제약으로 그것은 단순한 경작자로서의 애착이었으며 명줄이 토지에 의존되어 있다는 관념에 기초한 것이었다. 광복 후 토지개혁과 농업협동화의 실현으로 땅의 진정한 주인으로 된 우리 농민들의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는 관점은 사회의 주인, 땅의 참다운 주인으로서의 집단주의에 기초한 자각이며 책임감이기도 하다. 우리 농민들은 당이 밝혀준 ‘농장경지는 나의 논밭이다!’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국가적, 협동적 소유의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며 알뜰히 가꾸고 있다. 우리 협동농민들은 논밭의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높은 자각을 가지고 부지런한 농민들에게는 좋은 땅, 나쁜 땅이 따로 없다는 풍습을 계승하여 논밭을 기름진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밑거름주기, 가을갈이, 흙갈이 등을 끈기 있게 진행해 오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형성된 경작지를 귀중히 여기는 풍습은 협동화된 새로운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서 가일층 발전되고 있다.

광복 후 계승 발전되고 있는 전통적인 농사풍습의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거름장만 방법과 그 과정에서 발휘된 근면한 노동생활기풍이다. 우리 농민들은 효능 높은 화학비료를 쓰면서도 지난날의 합리적인 방법을 계승 발전시켜 질좋은 여러 가지 유기질비료를 생산이용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 무한한 근면성을 발휘하고 있다. 농촌의 가정들에서는 아궁에서 나오는 재를 꾸준히 재우리나 퇴비장에 모아두어 봄농사나 가을농사 때 쓸 밑거름으로 마련하며 아침, 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 생흙을 얼마씩 아궁에 퍼넣고 불에 구어 흙거름을 생산한다. 또한 가축우리에 깃을 자주 넣어주어 밟혀서 두엄을 생산한다. 농민들은 진거름을 흙에 섞어 말리거나 썩혀 흙거름과 가루거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풀베기운동을 적극 벌여 야산과 들에 있는 섶나무, 개암나무, 잡초들을 많이 베어 기계에 썰어 풋거름을 만들어낸다. 여름철에는 등판의 뗏장을 떠서 뗏장거름도 생산한다. 마을들에서는 이른봄이나 여름 또는 가을에 많은 구들재와 흙거름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강, 도랑, 늪, 바닥의 썩은 흙도 파내어 흙거름으로 쓰고 있다.

북한사람들은 재래식 방법을 살려 거름을 생산하여 화학비료와 함께 유기질비료로 쓰고 있으며 거름을 수집운반하는데서 현대적인 기계수단들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사람들은 거름생산에서 전통적인 풍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농촌에 일반화되고 있는 농사풍습은 대부분이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서 창조된 풍습이다. 북한의 농업근로자들은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당과 수령의 둘레에 일심단결하여 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가고 있으며 농촌건설을 위한 투쟁에 높은 혁명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그들 속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현신하는 미풍이 높이 발양되고 있다. 농업근로자들은 현대적 기술수단들을 다루며 주체농법에 따라 모든 농사일을 과학기술적으로 하는 새 기술의 소유자로 되었으며 그들 속에서 온갖 낡고 뒤떨어진 관습과 인습이 없어지고 건전하고 낙천적인 정서생활이 꽃펴나고 있으며 생활양식이 확립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농촌경리의 수리화, 전기화의 과업이 이미 오래전에 실현되었고 기계화, 화학화의 과업도 실현되어 사회주의 농촌테제에서 제시된 농촌기술혁명의 역사적 과업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농촌에 트랙터와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현대적인 농기계들이 수많이 생산공급되어 모든 주요 영농작업을 기계화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화학비료의 시비량이 훨씬 늘어나고 그 질적 구성이 개선되었으며 효능은 살충살균제와 살초제가 많이 생산공급되고 있다.

북한 농민들의 사상정신적 면모로 인해 근본적인 전변이 일어나고 농촌경리의 물질기술적토대가 튼튼히 마련됨으로써 농업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게 되었으며 농민들의 농사풍습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북한 농촌에서는 우선 기계농사, 화학농사, 과학농사 풍습이 새로 창조되었다. 기경과 파종, 모내기와 김매기, 수확과 탈곡 등 영농공정의 모든 중요작업이 트랙터와 파종기, 모뜨는 기계와 모내는 기계, 영양단지 모옮겨심는 기계, 김매는 기계, 비료 및 농약살포기, 수확기와 종합탈곡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농기계들에 의하여 헐하고 능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질소, 칼륨, 인 등 비료를 비롯하여 각종 화학비료들이 많이 생산되어 유기질비료와 함께 밑거름, 덧거름, 알비료, 이삭비료로 사용되게 되었다. 살초제로 김을 잡고 각종 농약을 쳐서 작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병해충의 피해를 막고 있다.

농사에서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며 토양의 성질, 비옥도, 기상기후의 특성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종자를 선택하고 농사일의 시기를 결정하고 있으며 과학적인 육종체계를 세우고 임색혁명을 다그치고 있으며 과학적인 시비체계를 세우고 포기농사를 하고 있다. 이리하여 북한의 문명하고 풍요한 농촌에는 흥겹고도 생신한 기계농사, 화학농사, 과학농사 풍습이 지배하게 되었다. 다음은 서로돕고 이끄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공동노동풍습이 창조된 것이다.

북한 농촌에서는 협동화가 실현된 결과 집단주의에 기초한 공동 노동풍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난날 우리 농민들이 조직해온 소겨리, 두레, 황두 등은 어데까지나 개인소유가 지배하는 조건에서 다만 상호부조의 미풍을 발휘하여 일부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임시 조직운영유지되어 오던 공동노력협조풍습이었다.
북한의 협동농장원들은 집단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는 공동경리에 망라되어 작업반과 분조가 화목한 한 가정을 이루고 공동노동을 하고 있다 농장원들은 작업반과 분조에 소속된 영농공정의 모든 작업을 항상 분조원들과 같이 공동으로 수행하고 휴식도 함께 한다. 농장에서는 선전대를 조직하여 힘있는 경제선동으로 농장원들의 공동노동을 고무해 주며 휴식시간을 춤과 노래로써 흥겹게 보내도록 보장해준다. 이리하여 북한 농촌에서는 집단주의적 원칙, 높은 주인다운 자각에 기초하고 있는 공동노동풍습, 집단주의노동풍습이 지배하고 있다.

북한 농촌의 농사풍습에서의 경이적인 전변은 농민들을 세기적인 낙후와 빈궁, 힘든 노동에서 광복 시키고 그들에게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명한 영도와 은정깊은 사랑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는 축산풍습도 계승 발전되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전통적인 축산풍습 가운데서 광복 후에 계승 발전되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것은 대체로 개인축산과 일부 공동축산에 국한된 것이다. 광복 후 계승 발전되고 있는 전통적인 가축사양풍습의 하나는 우리짓는 관습이다.

개인집들에서 돼지, 양, 염소, 개, 닭, 오리, 토끼 등을 기를 때 이용하는 우리는 그 형식과 크기를 지난날의 것과 비슷하게 하면서 적지 않게 개조하였다. 소나 말과 같은 큰 가축은 협동화가 실현된 후 공동축산을 하게 되면서 개인집들의 외양간은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집들에 있는 가축우리들은 대체로 몸채옆이나 사랑채모퉁이, 허청간 등에 판자, 나뭇가지로 엮은 바자, 쇠창살 등으로 둘러쳐서 지었다. 가축우리의 형태와 구조는 역시 지난날과 같이 기상기후와 지대적 조건에서 차이가 있으며 산골과 평야, 북부지방과 남부지방 사이에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가축의 우리들은 형태와 구조가 더욱 합리적으로 개조되고 있으며 금속류들과 합성수지, 비닐방수재, 합판 등 현대공업용부재들이 널리 이용되고 시공에서 최대한의 위생조건과 문화성이 보장되도록 관심이 돌려지고 있다.

가축먹이 이용과 가공 풍습도 계승 발전되고 있다. 농가들의 개인축산과 일부 공동축산에서는 대체로 지난날과 같은 먹이 이용과 가공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가축의 먹이로는 볏짚, 강냉이짚, 콩짚, 콩깍지, 강냉이오사리, 강냉이속, 호박넝쿨, 고구마넝쿨, 마른풀, 쌀겨 ,강냉이눈, 벼와 보리 쭉정이 등을 이용하고 있다. 먹이가공에서는 일부 지난날과 같이 곡식짚과 넝쿨 등을 절단기에 썰어 거기에 쌀겨나 낟알깍지, 옥수수, 콩 등 낟알을 섞어 쌀뜨물에 푹 삶는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먹이소재를 사료분쇄기를 이용하여 썰거나 배합사료공장에서 나오는 배합사료, 효모먹이, 발효먹이, 비타민먹이, 항생물질사료 등을 섞어 먹이며 강냉이짚, 먹이풀과 같은 즙많은 먹이를 풀절임 하여 먹이는 등 새로운 공업적방법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 가축의 사양관리에서도 전통적인 축산풍습이 계승 발전되고 있다.

북한사람들은 공동축산이 기본으로 되고 있는 새로운 조건에서도 지난날에 형성된 사양관리풍습을 계속 지키고 있다. 우선 가축의 일상관리에서 먹이를 끼니때를 넘기지 않고 제때에 주며 자주 우리안의 두엄과 진거름을 쳐내주고 깃을 넣어주어 언제나 우리를 깨끗이 해주며 짐승의 몸을 정상적으로 솔이나 싸리비로 쓸어주며 맑은 물로 몸을 씻어준다. 또한 계절에 따른 관리에서는 겨울에는 가축들이 추위를 타지 않도록 우리의 바람막이를 잘해주며 마른깃을 두터이 깔아주고 몸에 덕석을 입혀주며 자주 햇빛바래기를 시켜준다. 봄철에는 털갈이를 잘하도록 억새뿌리솔이나 싸리비로 몸을 쓸어주며 엉덩이에 게발린 지저분한 것을 떨어주며 만만한 햇풀을 뜯어다 많이 먹인다. 여름철에는 더위를 먹지 않도록 주의하며 오랫동안 불볕에 내세우거나 비를 장시간 맞히지 않도록 하며 우리안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해주고 풀을 많이 먹인다. 가을철에는 곡식짚을 많이 먹이고 풀이 시들기전에 풀을 많이 먹이며 겨울철을 앞두고 외양간과 우리를 잘 손질해준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형성된 가축사양관리풍습에서 좋은 관습은 오늘도 일정한 생활력을 가지고 계승 발전되고 있다.

현시기 축산풍습에서 계승 발전되고 있는 전통적인 풍습은 부분적인 것이고 대부분은 현 시대에 와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이다. 광복 후 농촌에서 협동화가 실현되고 대규모 국영목장들과 협동농장목장들이 출현하고 집단사육에서 기계화, 자동화가 높은 수준에서 실현된 결과 축산풍습에서는 근본적인 전변이 일어났으며 새로운 내용의 축산풍습이 창조되게 되었다. 새롭게 창조된 축산풍습은 우선 대규모의 집단적인 공동사육풍습이다. 집단적인 공동사육풍습은 이미 삼국시대에 발생되었다. 그러나 고대시대에 형성된 집단사육은 봉건적 소유에 기초한 집단사육이었고 규모도 작고 가축의 품종도 얼마되지 않았으며 더욱이 과학적인 사양관리는 진행될 수도 없었다.

목장들에서 가축들의 사양관리는 기계화, 자동화, 과학화되어 있다. 대규모 목장들에서는 생산공정, 생산물수집, 배설물처리 등이 기계화, 자동화되어 있고 우량종 가축원종체계와 선진적 사양관리체계, 위생방역체계 등이 확립되어 있으며 가축우리구조가 규격화되어 있고 정연하고 산뜻한 생산문화가 보장되어 있다. 고기와 알이 공업적 방법에 의하여 생산되어 있으며 공업화, 집약화 수준이 높은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일부 규모가 큰 목장들은 가축을 공업적 방법으로 사양한다는 의미에서 돼지공장, 닭공장, 오리공장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집단사양, 공동사양은 현시기 북한의 가축사양에서 보편화된 관습으로 되고 있다.
광복 후 새로 창조된 축산풍습은 다음으로 가축들의 사양관리에서 집단주의에 기초한 공동노동풍습이다. 목장들에는 새끼치기, 고기와 알, 젖, 생산, 가공 등으로 분담된 임무에 따라 작업반과 분조들이 조직되어 있다. 사양공, 관리공들은 작업반과 분조에 소속되어 서로 돕고 이끌면서 흥겹게 일하고 있다. 목장들에서의 노동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집단주의원칙에서 진행되며 사람들은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맡겨진 경제과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면서 높은 책임성과 열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처럼 사양관리에서 작업반, 분조가 한 단위가 되어 국가와 국민, 집단 앞에 책임지고 공동으로 일하는 것은 오늘날 북한에서 주요한 축산풍습으로 되고 있다.

광복 후 새로 창조된 축산풍습은 또한 야생동물들을 길들여 집단사양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메추리, 꿩, 노루, 사슴, 여우, 해리서, 수달 등은 다 야생동물로서 사냥의 대상으로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냥만으로는 이러한 동물들의 고리와 털가죽을 충분히 얻을 수 없었다. 야생동물들의 생활습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것들을 생활에 유익하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경주된 결과 지금은 야생동물들을 인공적으로 집단사양 하는 것이 하나의 추세로 되었다. 이리하여 가축종류도 상당한 정도로 늘어나 여러 곳에 수백, 수천 마리의 야생동물을기르는 메추리목장, 꿩목장, 노루사슴목장, 해리서목장, 여우목장, 수달목장 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목장들에서는 지난날 사냥에 의해서만 몇 마리씩 얻을 수 있었던 야생동물들을 가축들처럼 집단적으로 사육하고 번식시켜 많은 양의 고기와 값비싼 털가죽을 얻고 있다. 이처럼 야생동물들을 길들이면서 가축처럼 집단적으로 키우는 것은 최근 축산분야에서 창조된 새로운 풍습이다.

그밖의 다른 축산풍습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종자개량에서 과학적, 생물학적 방법이 적용됨으로써 재래종은 점차 도태되고 전혀 새로운 우량종이 얻어지고 있으며 가축의 사양도구도 현대화되어 가축사양을 보다 능률적으로 문화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광복 후 북한에서의 과수업은 다른 경제분야와 마찬가지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과정에 광복 전에 창조된 과수재배풍습 가운데서 계승된 것보다 새로 창조된 과실나무 재배풍습이 지배적인 것으로 되었다. 물론 지난날에 창조된 우수한 과실나무재배풍습 가운데서 광복 후에 계승 발전되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난날 흔히 재배해오던 과일종류들을 광복 후에도 계속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먼 옛날부터 재배해오던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대추, 포도, 감, 귤, 앵두, 밤 등을 나라의 기후풍토에 적응한 과실나무로 널리 가꾸면서 많은 과일을 생산하고 있다. 다음으로 과실나무 모 키우기와 관리 풍습이다. 북한은 광복 후에도 조상들이 그러했던 바와 같이 충실하고 우수한 과일을 종자로 선택하여 씨를 받아 모판에 뿌리고 싹틔워 씨모를 얻고 있다. 이와 함께 꽂이접, 깎기접, 가지꽂아싹틔우기 등의 방법으로 과실나무모를 키우고 있으며 높은 책임성과 창발성을 가지고 한알의 과일이라도 더 많이 생산하여 사람들에게 공급하기 위하여 과실나무가꾸기에 온갖 지성과 열성을 다 바치고 있다.

북한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두엄, 풋거름, 흙거름, 재거름, 진거름 등 여러 가지 유기질 비료를 많이 생산하여 과실나무두리를 파고 듬뿍 묻어주기에 힘쓰고 있다. 이와 함께 과일밭갈이, 과실나무의 가지자르기, 모양만들기도 지난날의 경험을 살려 새로운 과학기술적 요구에 맞게 잘 해주고 있다. 그리고 꽃과 과일 솎구기도 깐깐히 해주고 있다. 광복 후 과실나무재배에서 혁명적인 전변이 일어나게 되면서 현대적인 과학기술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재배풍습이 창조되었다. 전국도처에 대규모의 국영 및 협동농장 과수원들이 수많이 설치되어 우수한 과수재배풍습이 개화발전하게 되었다.

황해남도 과일꾼은 온 군이 하나의 과수원으로 건설되어 ‘100리청춘과원’을 이루게 되었으며 평양, 북청, 숙천, 황주 등지에 대규모의 국영과수농장들이 조직되었다. 1961년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 이후 전국각지에 과수원들이 대대적으로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도시와 일부 평야지대를 제외하고 모든 농장들에 과일밭들이 생겨나 과실나무재배에서는 집약적이고 전문적인 재배풍습이 더욱 개화발전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광복 후 과실나무품종도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광복 후 사과, 배, 복숭아, 살구, 자두, 감, 대추, 앵두, 밤 등 전통적으로 재배해오던 과일들을 심으면서도 같은 사과, 같은 배 가운데서도 재배기술이 크게 발전된 결과 우량종의 새 품종들이 육종되어 널리 재배되게 되었다. 그리한 실례로 사과 가운데서 황주ㆍ남포1호ㆍ북청ㆍ송화ㆍ구월ㆍ금강ㆍ덕성ㆍ허천ㆍ강계5호, 배 가운데서 성천배ㆍ길주배ㆍ신천배ㆍ안변배ㆍ모란배ㆍ꿀배 등을 들 수 있다. 이렇듯 광복 후에 과실나무품종이 확대되고 여러 가지 우량종의 과실나무들이 재배됨으로써 과일의 질적 구성은 크게 개선되었다. 또한 광복 후 과실나무가꾸기풍습에서도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났다. 과실나무가꾸기작업에 대, 소형 트랙터들과 각종 제초기, 분무기 등 현대적인 기계수단들이 도입되고 각종 화학비료, 농약들을 과실나무에 주게 되면서 과실나무가꾸기방법은 옛날과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또한 광복 후 과실나무재배지역이 비할 바 없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우수한 과실나무재배풍습은 더욱 널리 일반화, 보편화되었다.

지난날 북한에서는 평안도 북부 내륙지방과 함경도 북부 지방에서는 기온이 낮아 사과를 재배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감도 황해도의 강령반도 이남의 해안지방, 안변이남의 동해 연해지방에서나 재배하여 왔다. 특히 귤나무는 제주도와 남해가의 일부 지방에서나 재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광복 후 과수과학분야에서도 새 품종을 찾아내며 종자를 개량하고 지리적 환경에 순응시키기 위한 탐구에서 혁신적인 성과들이 이룩된 결과 오늘날 사과는 북한의 거의 전지역에서 재배하게 되었으며 감도 평안남도와 함경남도의 일부 평야지대에서까지 가꿀 수 있게 되었다. 황해남도와 강원도의 일부 해안지방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귤도 재배하게 되었다. 제한된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던 일부 과실나무의 재배지역이 보다 확대되고 모든 농가와 마을, 농장들에서 과실나무를 전군중적 운동으로 재배하게 됨으로써 온 강토가 아름다운 과원으로 변모되었다. 그리하여 어느 농장, 어느 마을, 어느 농가에 들려봐도 과일밭, 과실나무가 펼쳐져 싱싱 자라고 과일이 주렁지게 되었다. 실로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이름높은 과수의 나라, 향기짙은 과수의 꽃밭 속에 묻혀있는 낙원으로 자랑떨치고 있다.

입는 문제를 보다 원만히 해결하기 위하여 누에치기를 전군중적운동으로 벌일 데 대한 집집에서 누에치기를 즐겨하던 전통적 풍습은 가일층 발전하여 농촌은 물론 광산마을과 도시들의 세대들에서도 누에를 치는 기풍이 서게 되었다. 누에치기는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인민반과 봉사기관에서까지 진행하게 됨으로써 그것은 실로 전군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누에를 치는 것은 일반대중 자신의 생활향상에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노동풍습으로 전환되었다.

광복 후 우수한 재래식 누에치기 방법과 경험이 새로운 과학기술적 토대 위에서 빛나게 계승 발전되었다. 누에를 칠 잠실과 도구의 준비, 누에부화와 털기, 뽕주기, 누에관리, 누에올리기와 고치따기 등에 관한 재래식 방법과 경험은 오늘 가정들에서의 누에치기에 참고로 되고 있다. 그러나 누에치기 도구와 설비에서 새로운 현대적인 자재와 기구들이 도입이용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재래식 누에치기 방법과 경험은 현대과학기술의 토대 위에서 가일층 발전하게 되었다. 광복 후 누에치기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새로운 현대적인 누에치기풍습이 형성되었다. 누에치기를 대규모화, 과학화할 데 대한 국영잠업농장들이 전국도처에 조직되었으며 협동농장들에는 잠업 작업반과 분조들이 조직되었다.

잠업농장과 잠업 작업반, 분조들에서는 넓은 면적의 뽕밭을 조성한 다음 여러 동의 잠실들과 현대적 설비들을 갖추어놓고 누에치기를 공업적 방법으로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곳에 누에알생산기지와 전문연구소, 연구실, 실험실들을 조성해 놓고 누에치기와 고치생산을 과학기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리하여 누에치기에서 새로운 과학적이며 전문적인 사양풍습이 창조되게 되었다. 누에치기풍습에서 새로운 변화는 피마자누에, 산누에 치기를 대대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광복 후 피마자누에, 산누에 치기에 대한 연구와 시험을 거듭하여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도입 일반화 하는 사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농장과 기업소, 인민반, 가정들에서 뽕누에와 함께 피마자누에, 산누에를 많이 치게 되었다.

지난날 선조들이 이룩한 양봉업풍습은 광복 후에도 전승되어 왔다. 종래에 쳐오던 토봉은 생산성이 낮고 경제적이 못되므로 새로운 꿀벌종자인 양봉을 대대적으로 치게 되면서 점차 없어져 가게 되었고 일부 산골지방에서 부분적으로 치고 있을 뿐이다. 토봉은 비록 생산성은 낮지만 약효에서 양봉꿀에 비한 토봉꿀(산청)의 우월성으로 하여 일정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다. 토종양봉업은 지금도 대체로 종래의 방법대로 해오고 있다. 따라서 지난날 형성된 양봉업풍습이 오늘 계승되고 있는 것은 토봉부분에 한정되고 있다.

광복 후 양봉업풍습은 양봉업이 대대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그 내용에서 새로운 전변을 가져오게 되었다. 북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치게 된 꿀벌은 황색종, 흑색종의 양봉이며 벌통, 벌개, 꿀채취기 등 꿀벌치는 도구들은 종래의 양봉업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것들이며 벌떼의 형성과 증식, 그의 관리, 꿀뜨기, 겨울나기 등 모든 사양방법은 종래의 토봉양봉업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것이고 모두 과학기술적 요구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북한에서의 양봉업은 전문양봉사업소들에서와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들에서 수십, 수백통을 갖추어놓고 진행하게 됨으로써 큰 규모로 발전하고 있다. 도시주변의 일부 노동자, 사무원 가정들과 농가들에서도 서너통의 벌통을 놓고 양봉업을 부업이나 문화정서 생활의 일부로 하고 있다.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자동차, 기차 등 운수수단을 이용하여 벌통을 싣고 다니면서 봄철에는 남쪽지방과 평야지방의 야산에 놓고 가을철에는 북부 산간지대로 옮겨 가면서 꿀뜨기를 대규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한의 양봉업은 생산규모에서나 물질적 토대, 과학기술적 관리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제약공업과 식료공업에 꿀을 많이 공급함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증진과 생활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광복 후 북한은 또한 지난날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생산풍습을 빛나게 계승 발전시켰다. 북한은 무엇보다도 세소어업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조상전래의 수산풍습을 계승 발전시켜 왔다. 세소어업은 지난날 선조들이 이루어놓은 수산풍습의 내용들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민족어로방식이다. 우리 당은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선 첫 시기부터 부식물 문제해결의 주요한 방도를 수산물생산을 늘이는 데서 찾고 그 실현을 위하여 국가적 규모의 수산사업소에 의한 현대적인 먼바다 어업과 합께 소규모 수산협동조합에 의한 재래식 세소어업을 배합하여 물고기잡이를 널리 진행하도록 하였다. 물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서는 먼바다 어업만으로는 안되며 가까운 바다에서 덤장, 낚시질과 같은 세소어업을 널리 발전시켜야 하였다. 그것은 한반도의 동서남해안에 철을 따라 먼바다에서부터 떼를 지어 회유이동 하여 오는 물고기들만이 아니라 명태, 가자미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정착어족들과 기슭바다밑에 서식터를 잡고 사는 조개류, 골뱅이류, 연체류, 극피류와 미역, 다시마를 비롯한 바다나물들이 무진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먼바다에 나가지 않고도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간단한 어구와 자그마한 나무배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생산해낼 수 있다. 또한 세소어업은 비용이 적게 들고 간단한 어구를 가지고도 손쉽게 할 수 있는 효율성이 높고 경제적 수지가 맞는 어로방식이다. 그리고 시기와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사철 어로활동을 벌여 성어기와 어한기의 편파성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어로형식이다.

광복 후 양어양식사업은 새로운 기술적 토대 위에서 군중적 운동으로 벌어졌다. 북한에는 양어양식을 군중적 운동으로 벌릴 수 있는 유리한 조건들이 있었다. 모든 어촌과 농촌들이 집단경리로 개조되어 이르는 곳마다에 협동조합들이 조직되었으며 호수, 저수지, 강하천, 바다 등이 국가적 소유로 되어 있고 협동조합들의 물질기술적 토대가 조성됨으로써 양어양식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북한 사람들에게 양어양식의 오랜 역사와 풍부한 경험이 있었으며 북한에는 도처에서 양어양식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자연 지리적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바다와 육지의 가능한 모든 곳들에서 협동농장들과 기관, 기업소들에서 양어양식사업을 전군중적 운동으로 널리 벌이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각 기관, 기업소, 수산협동조합, 협동농장, 학교들에서는 논, 호수, 하천, 얕은 바다를 이용하여 고기를 기르고 조개류를 양식해서 생산성과를 이룩하게 되었다. 미역, 다시마를 비롯한 바다나물의 양식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재래식방법이 개선되었다. 물고기의 가공 및 저장, 보관에서도 현대적인 기술시설에 의한 방법과 합께 조상전래의 전통적 방법도 현실적 조건에 맞게 적용되어 이와 관련한 수산풍습의 내용들이 더운 발전 풍부화되었다.

물고기의 가공 및 저장, 보관에서도 현대적인 방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조상전래의 말리기, 절이기, 얼리기 방법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하나도 허실없이 사철 사람들에게 보장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수산부문에서는 현대식 건조로에 의한 인공적인 말리기와 함께 햇볕에 의한 자연적인 말리기도 병행하여 진행하였으며 현대적인 냉동공장들에서의 냉동법과 함께 겨울에 자연산 얼음을 많이 캐두었다가 깊은 수림속에 지어놓은 중간냉장고들에 물고기들을 얼음덩어리와 함께 파묻어 보관하는 개량된 전통적 얼리기 방법도 적용하였다. 배에서 냉동시설과 능력이 미처 모자랄 때에는 나무통에 절이는 종래의 방법으로도 가공함으로써 한 마리의 물고기도 허실하지 않게 가공, 저장, 보관하였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수산물의 생산과 각공, 저장보관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수단들이 도입되어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남으로써 조상전래의 전통적 풍습들이 현실적 조건에 맞게 계승 발전되어 새로운 내용들로 풍부화 되었다. 수산부문에서는 무엇보다도 낡은 경리형태가 사회주의적 경리형태로 개조되어 온갖 사회적 예속이 철폐되고 어부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한 관계, 동지적 관계로 전환되었다. 어업경리가 사회주의적 집단경리로 개조됨으로써 북한 사람들은 어장과 어로수단 및 생산된 수산물의 진정한 주인으로 되었으며 어로활동에서 창조적 지혜와 적극성을 더 높이 발양하게되었다. 또한 높은 과학기술에 기초하여 어로활동방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고 수산업의 물질기술적 토대가 비할바 없이 강화되었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수산업의 현대화, 과학화가 힘있게 추진되어 대형선미뜨랄선과 같은 수천, 수만톤의 대형 고깃배들과 어군탐색선들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질좋은 그물들과 현대적 어구들이 창안 제작되어 투망과 그물걷기 등 힘들고 고된 어로작업이 기계화, 자동화되었으며 먼바다 어로선단이 모아져 먼바다 어장이 개척되고 먼바다 어업과 깊은바다어업이 기본으로, 어로의 기본전선으로 되었다. 고깃배들의 대형화, 현대화와 함께 만능화가 힘있게 추진됨으로써 먼바다의 물고기, 회유하는 물고기, 들어오는 물고기와 나가는 물고기, 정착해 있는 물고기 할 것 없이 모든 종류의 물고기들을 맞받아 나가서도 잡고 따라가서도 잡으며 들어오면서도 잡고 나가면서도 잡는 등 여러 가지 형식으로 다각적인 어로를 벌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뿐 아니라 부두와 항만들이 새롭게 건설되고 물고기를 부리는 작업과 운반작업이 기계와, 자동화되었으며 조선소와 선박수리기지들이 튼튼히 꾸려져 배뭇기, 배수리 기일이 단축되게 됨으로써 제정된 출어일수를 보장하게 되었다.

수산물가공부문에서도 현대화가 추진되었다. 냉동기술의 도입으로 주요 물고기생산기지들에 현대적인 냉동공장들이 건설되고 냉장운반선, 가공모선들이 만들어져 물고기들을 얼마든지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말리는 설비와 시설, 절이는 설비와 시설도 현대화되고 통조림공장과 병조림공장들이 건설되어 보다 질좋고 위생적인 수산물가공품들을 생산하게 되었다. 이처럼 물고기탐색에서부터 어로, 물고기가공에 이르기까지 수산업의 전과정이 기계화, 자동화되고 과학적인 어로체계와 가공방법에 토대하게 되어 어로 및 가공 작업이 자연계절적 및 기상기후적 영향에서 벗어나 계획적으로 추진되고 어로공들과 가공노동자들이 어렵고 힘든 작업에서 광복되게 되었다. 다음으로 청년들이 바다에로 적극 진출하여 어로전선의 주공을 담당하고 지어 여성들까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와 바닷가양식사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수산풍습의 주요한 내용으로 되고 있다.

지난날 허황한 미신행위로 하여 바닷가 신비화되고 있던 시기에는 오랜 어로공들의 방조없이 나이어린 청년들만으로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으며 더욱이 여성들이 배타고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산업의 물질기술적 토대가 강화되고 어로가 과학화되게 되면서 바다는 청춘의 활무대로 되고 먼바다 및 깊은바다 어업은 청년들이 담당하게 되었으며 여성청년들이 수산전선의 일부를 맡아 나서게 되었다.

북한에서 광복 후 사냥풍습도 계승되어 일정한 발전을 가져왔다. 사냥풍습은 나라의 리로운 동물을 보호증식시키기 위한 정책과 사람들의 숭고한 애국적 열성, 자각적인 노력에 의하여 일정하게 계승 발전되었다. 산짐승들과 날짐승은 나라의 풍치를 돋우어주는 중요한 자연부원이다. 그러나 지난날 일제식민지통치자들의 약탈적인 사냥과 제국주의열강이 강요한 3년간의 가열한 조국광복전쟁의 후과로 말미암아 멧짐승과 날짐승 자원은 고갈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이로운 동물들을 보호 증식시키는 사업에 자각적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사냥질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사냥도구로서 사냥총과 그물만을 이용하여 허가한 유해로운 새, 짐승에 대해서만 사냥하고 있다. 사슴, 노루, 사항노루, 고라니, 산양, 검은담비, 담비, 꿩, 크낙새 등의 사냥은 국가가 허락한 일정한 지역에서만 하고 있으며 눈에 빠졌거나 폭풍에 몰린 이로운 짐승과 새들은 잡지않고 살려주고 있다. 그리고 멧짐승들의 번식기간에는 일체 사냥을 하지 않고 다만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국가가 지정한 사냥구역에서만 사냥을 한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제정된 사냥구역에서 사냥하고 있는 멧짐승과 그 기간은 다음과 같다. 멧돼지, 표범, 곰, 메추리 등은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너구리, 오소리, 여우, 족제비, 산토끼, 다람쥐는 10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기러기, 오리류는 9월부터 다음해 4월 중순까지, 콩새, 방울새, 도요새, 까마귀, 어치, 물까치, 멧비둘기, 굴비둘기, 독수리, 매류 등은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이다. 지정된 사냥구역에서와 사냥기간에만 사냥함으로써 멧짐승들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고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물들의 자연증식이 보장되어 최근년간 그 수는 훨씬 늘어나게 되었다. 실로 나라의 자연부원을 보호 증식시키시려는 원대한 구상이 빛나게 실현되어 북한의 산과 들에는 생활에 유익한 멧짐승들과 새들이 번식되고 수려한 산천의 운치를 한층 돋우어주고 있으며 사냥애호가들의 사냥도 유쾌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북한지역정보넷  
사이트링크-국가지식포털 사이트링크-행정안전부 사이트링크-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사이트링크-평화문제연구소 사이트링크-통일부 사이트링크-통일교육협의회 사이트링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이트링크-통일문제연구협의회
로고-북한인문지리넷 북한지역정보넷 로고-국가지식포털
유관기관링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북한지역정보넷 저작권정책 북한지역정보넷 개인정보보호정책 북한지역정보넷 위치 및 연락처 북한지역정보넷 관리자에게 북한지역정보넷 배너및뷰어
식풍습
옷차림풍습
주택생활풍습
가족생활풍습
노동생활풍습
    - 농사풍습
    - 축산풍습
    - 과수재배풍습
    - 누에치기풍습
    - 꿀벌치기풍습
    - 수산풍습
    - 사냥풍습
    - 노동생활의 계승발전
민속명절
민속놀이
민속음악
민속무용
구전문학
민속공예
북한지역정보넷 tip 북한지역정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