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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천 물고기잡이에서도 그물어구가 많이 쓰였다. 대동강유역에 있는 금탄리유적, 남경유적과 장자강유역에 있는 공귀리유적, 노남리유적들에서 나온 그물추유물들은 강하천유역의 주민들이 그물어구를 쓴 역사가 매우 오래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강하천 물고기잡이 그물은 바닷물고기잡이그물처럼 크게 꾸미지 않고 한두사람이 다루기 좋게 간편하게 꾸미었다. 또한 사람의 손에서 그물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나무나 끈을 많이 써서 만든 것이 특징이었다.
지난날 우리 선조들이 강하천 물고기잡이에 많이 쓴 그물에는 나무나 노끈을 쓰지 않고 순수 그물로만 꾸민 후리, 막걸리, 놀거리, 매기 같은 것과 그물에 나무막대기를 꿰어서 꾸민 반두, 옥후, 활치, 보그물 같은 것, 그리고 노끈을 많이 써서 꾸민 투망 같은 것이 있었다.
후리, 막걸리, 놀거리, 매기 그물은 보통 3~4명이 다루기 좋게 만들었고 간흑 10여명이 다루게 만들기도 하였다. 후리그물은 일반적으로 그물코의 크기가 4푼 정도이고 총길이가 25~30발, 높이 한발이상 되는 그물을 마름질하여 거기에 떼와 벼리, 추돌을 달아 꾸미었다. 그물의 양끝에는 40여발의 긴 밧줄을 연결하여 당김줄로 썼다.
강하천 물고기잡이그물에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그물에 나무를 댄 반두, 활치, 옥후였다. 반두는 사다리형, 사각형, 삼각형으로 마름질한 그물의 양가녘에 두 개의 손잡이용 막대기를 잡아 붙여서 만들거나 자루모양의 그물입구에 정방형 또는 반원형의 나무틀을 감아 붙여 만들었다. 두가녘에 손잡이용 막대기를 감아 붙여 만든 반두를 양손반두라 하고 정방형의 나무틀을 만들어 붙인 반두는 끌반두, 반원형의 나무틀을 고정시킨 반두는 찍을반두라고 하였다. 이 반두는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나라의 모든 강하천들에서 사용하여 왔다. 옥후는 쇠줄이나 물푸레나뭇가지로 원형테를 만든 다음 그것을 긴 자루에 연결시키고 원형테에는 자루나 바가지형의 그물을 매달아 만든 어구로서 물고기를 떠내거나 푸기 좋게 되어 있었다.
활치는 가지가 ‘Y’형으로 된 나무막대기의 갈라진 가지 두 끝을 철사나 물푸레나무를 휘어서 활등처럼 연결시키고 그 테두리 아래에 늘어진 그물을 꾸며 붙여 만들었다. 활치도 옥후처럼 물고기를 퍼내어 잡을 수 있게 되었는데 물고기를 바위기슭이나 강변으로 몰아다넣고 떠내는데 매우 편리하였다. 이 어구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옥후라고도 할 수 있는 어구였다.
보그물은 말그대로 보자기처럼 그물을 마름질하고 그물의 테두리에는 그물추와 벼리를 엮어붙이고 네귀에는 그물을 위로 끌어 잡아당길 수 있도록 줄을 연결시켰으며 그것을 긴 장대에 매어 만들었다. 강하천 물고기잡이에서 특색있는 그물은 투망이었다. 투망은 부채형의 그물을 마름질하고 그 아래가녘은 단을 접어 조리개줄을 넣을 수 있게 꿰어매고 그물이 물속에 빨리 가라앉도록 연추들을 촘촘히 달아맨 다음 그물의 양가녘을 연결하여 원추형의 그물이 되게 만들었다.
이 그물에서 중요한 것은 그물위의 뿔모양의 상투를 조여맨 끈과 그물아래 가녘을 조이는 줄을 잘 만들어 그물이 던지는 사람의 뜻대로 잘 펴지고 마무리되도록 하며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줄을 벌이줄이라고 불렀으며 그물아가리쪽에 촘촘히 매단 추돌을 거둠추라고 하였다. 투망은 『임원십육지』를 비롯한 역사기록들에 ‘산망(散網)’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강하천들에 널리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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