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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누에치기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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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누에치기풍습은 일찍이 고대에 발생하였다. 누에치기는 아름다운 비단천을 짤수 있는 명주실과 이불, 겨울옷에 필요한 풀솜을 제공해주는 유익한 생산노동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누에치기의 유익성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이미 원시사회말기에 누에치기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풍습으로 굳어지기는 고대에 와서부터였다. 고대에 우리 선조들은 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에치기를 많이 하였다.
『후한서』의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사람들은 삼재배와 누에치기, 베짜기 등을 알고 있었으며 한(3한: 진국)에서도 “누에치기를 알고 있었고 비단천을 짰다”고 한다. 같은 시기 북쪽의 부여에서 누에치기를 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기온이 낮은 불리한 자연조건으로 하여 아직 부여에서는 누에치기가 크게 보급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국가들에서 누에치기가 보급된 것은 옷감 해결과 옷생활풍습의 발전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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