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서비스 사이트맵 열린참여관 북한지역정보넷소개관 조선향토대백과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행정구역정보관 자연지리정보관 인문지리정보관 유물유적관 인물정보관 민속문화관 멀티미디어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인기검색어
내가 찾은 단어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민속문화관 > 노동생활풍습 > 농사풍습
 
북한지역정보넷 북한지역정보넷
UCI :
스크랩주소 :
내부조회수 : / 외부조회수 :
스크랩수 :
봄철농사풍습
여름철농사풍습
가을철의 농사풍습
겨울철농사풍습
북한지역정보넷 밭작물파종
밭작물파종에서는 작물의 품종, 지대의 특성에 따라 씨뿌리기 시기와 방법을 달리하였다. 밭작물의 파종에서 기본을 이룬 것은 조, 수수, 기장 등 서속류였으며 그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작물은 조였다.

조파종은 지방에 따라 얼마간 차이는 있었으나 대체로 음력 3월 하순 곡우를 전후한 때부터 음력 4월초인 입하전에 걸쳐서 끝냈다. 밭파종일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므로 서너집 또는 네댓집씩 겨리나 품앗이를 맺어 하였는데 조파종도 이러한 품앗이를 맺어 5~6명 또는 7~8명의 일꾼들이 달라붙어 해치웠다. 조파종을 위하여 먼저 종자를 준비하였다. 전해 가을에 방안의 시렁이나 바람벽, 창고의 봇장과 벽 등에 매달아 두었던 종자타래를 벗겨내어 멍석 위에 놓고 씨를 털었다. 씨를 털 때는 씨알이 상하지 않도록 손으로 비비거나 서서 발로 슬근슬근 밟아 비비었다. 그리고 바람에 날리거나 키로 까불어서 쭉정이와 검부러기를 버리고 종자를 깨끗이 거두어 두었다.

비교적 토질이 좋은 논밭을 조밭으로 정하고 전갈이나 이랑갈이를 하여 이랑을 지어놓았다. 다음에 후치로 이랑등말기에 곬을 쳐놓았다. 또는 한사람이 이랑을 따라 앞서 나가면서 두발로 자구치기를 하여 이랑위에 곬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선구자구친다’고 하였다. 이러한 준비가 된 다음에 다른 한 사람은 삼태기에 거름을 담아가지고 휘뿌리거나 줌으로 쥐어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거름을 놓았다. 이때 거름을 놓는 사람을 분재꾼이라고도 하였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씨뒤웅박이나 종자다래끼에 종자를 담아 어깨나 목에 걸치고 그 뒤를 따라나가면서 줄씨뿌리기로 씨를 뿌려 나갔다. 평안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씨손이라는 도구로, 함경도지방에서는 드베로 씨뿌리기를 하였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다른 한 사람이 솔가지나 댑싸릿가지를 노끈으로 묶은 개지를 끌고 나가 씨가 흙에 묻히게 하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자구곬을 흙으로 덮는데 미투리(큰 짚신)를 신고 안으로 몰아차면서 묻어나갔다.

함경도지방에서는 이랑묻는 작업에서 화폐라는 도구를 썼다. 화폐는 반달형으로 깎은 굽은 나무토막에 수직으로 손잡이가 달린 나무대를 박아 만든 것이었다. 화폐를 멍에채에 연결시켜 놓고 손잡이에 힘을 주어 누르면서 소를 몰아나가면 이랑이 뭍히였다. 자구치기도 지방에 따라 달랐다. 평안도지방에서는 자구너미라 하여 두말로 자구곬을 엇서게 치고 씨를 뿌리기도 하였다.

조씨뿌리기는 ‘쥐놓이’라 하여 한 사람이 재에 버무린 종자를 한발 뒤축으로는 이랑에 구멍을 내어 씨를 뿌리고 다른 발로는 흙을 차서 묻으며 나가는 방법으로 점씨뿌리기를 하기도 하였다. 조씨를 뿌릴 때 북부지방에서는 이랑을 따라 줄씨뿌리기를 하였다면 남부지방에서는 이랑 위에 띄여뿌리기(점파)를 하였다. 북부지방의 줄씨뿌리기는 많은 면적의 밭에 조파종을 보다 능률적으로 하기 위한 탐구과정에 얻어진 파종방법이며 남부지방의 띄여뿌리기는 이 고장에서 많이 하는 벼재배의 건삶이에서 흔히 써온 흩어뿌리기와 띄여뿌리기를 밭농사에 적용한데서 나온 것이었다. 밀, 보리와는 달리 조파종을 이랑에 하는 것은 건조한 것을 요구하는 조의 생태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었다.

평안도 산골지방과 같이 경사가 급한 산전들에서는 조씨뿌리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 산전은 소로 밭을 갈고 거름을 운반할 수 없었으므로 가루거름에 버무린 재씨한 종자를 넣은 베자루와 자루가 긴 장드레호미, 점심꾸러미를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밭으로 올라갔다. 한사람이 장드레호미로 가로 이랑을 째나가면 다른 한사람은 목에 걸친 씨뒤웅박이나 종다래끼, 투생이에서 씨를 한줌씩 꺼내어 뿌렸다. 또 다른 한사람은 장드레호미로 이랑을 묻었으며 동시에 자구밟이를 하며 나갔다.

수수와 기장을 파종하는 방법은 조의 경우와 같았다. 다만 수수는 조, 기장과는 달리 낮고 습한 땅에 심었다. 『농사직설』에는 수수를 2월에 일찍이 심는다고 하였으나 황해도 봉산이나 평안도 의주, 용천, 철산 등지에서의 재배경험에 의하면 조를 먼저 심고 수수는 3월 하순경에 파종을 하였다.

봄보리의 파종은 2월 즉 대체로 경칩 이후 춘분을 전후한 시기에 하였다. 먼저 밭은 전갈이하고 가로세로 써레를 쳐서 흙을 고르게 한 다음 후치나 쇠스랑으로 고랑을 두줄 또는 외줄로 폭이 넓게 쨌다. 그 다음은 오줌재에 버무린 보리씨를 두줄고랑에 줄씨뿌리기를 하였다. 외고랑인 경우에는 넓은 씨뿌리기를 하였다. 이어서 삼태기에 담은 거름(소두엄 또는 돼지거름)을 이랑을 따라 나가며 뿌리고 고무래나 쇠스랑으로 씨를 뿌린 이랑을 흙으로 덮으면서 자구밟이를 하며 나갔다. 피는 생활력이 강하여 물에 잠겨도 썩지 않으며 가뭄과 추위에도 마르거나 얼지 않고 견디어내는 알곡이다. 그러므로 장마에 잠기기 쉬운 강변의 진펄땅이나 지대가 낮은 습한 땅, 산간지방의 냉습한 골바닥의 논밭들에 많이 심었다.

『농사직설』에 의하면 피는 대체로 3월 상순부터 4월 상순 사이 즉 청명이후 입하를 전후한 시기에 심었는데 심는 방법은 조나 기장과 같았다. 평안도 북부 산간지방에서의 피파종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우선 피밭을 2월 하순 춘분경에 한번 갈고 파종전 곡우때에 두벌갈이를 하였다. 소와 사람의 힘이 부족한 경우에는 홑갈이를 하였다. 홑갈이는 보습으로 전해의 이랑을 절반씩 째주어 전해의 고랑 위에 이랑을 지어주는 방법으로 하였는데 이러한 갈이방법을 이 고장에서는 ‘홀띠기’라고 하였다.

다음은 한사람이 장드레호미를 들고 나가면서 돌을 추어내고 흙덩이를 부스러뜨렸으며 이랑을 정리하고 돋우었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앞서 나가면서 파종을 할 준비를 한다하여 ‘앞살이꾼’이라고 하였다. 앞살이꾼 뒤로 다른 한사람이 긴 나무지팡이를 짚고 나가면서 두발로 이랑 위에 자구를 쳤으며 그뒤로 종자꾼이 재씨한 종자를 구름나무껍질로 엮어 만든 구름망태기에 담아가지고 나가면서 넓은 줄씨뿌리기를 하였다. 또 다른 한사람은 쇠스랑이나 장드레호미로 이랑을 묻으며 자구를 밟아나갔다. 이때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마감 뒤거둠질을 한다 하여 ‘뒤살이꾼’ 또는 ‘뒤구미꾼’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 밭작물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콩, 팥, 녹두, 땅콩, 완두콩, 동대 등 콩과작물이었다. 콩류는 식생활에서 부식물로 이용될 뿐 아니라 사료용으로 쓰이는 낟알이므로 우리 민족은 평야지대나 중간지대는 물론 산간지방에서도 많이 재배하였으며 주작으로 뿐아니라 간작, 그루갈이, 거름작물 등으로도 재배하였다. 콩과작물들의 파종방법은 대체로 같았는데 콩파종방법을 대표적으로 들면 다음과 같다. 콩은 3월 중순경부터 시작하여 4월 중순경인 입하 사이에 파종 하였다. 만숙종을 밀, 보리 밭의 후작으로 그루갈이하는 경우에는 4월 하순경인 소만때 파종을 하였다.

콩을 주작으로 심는 경우 비옥한 밭에는 드물게 심고 척박한 밭에는 배게 심었다. 그러나 어떤 밭이건 먼저 전갈이로 갈아엎고 이랑을 지은 다음 재씨처리한 종자(이것을 ‘콩알굴리한다’고 하였다)를 씨구럭망태에 담아 어깨에 걸치고 호미로 파종을 하였다. 씨를 놓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한 방법은 오른 손으로 이랑 위에 구덩이를 먼저 파고 왼손으로 종자를 놓는 것이었고 다른 한 방법은 왼발을 내짚으며 발뒤꿈치로 구멍을 낸 자리에 씨를 떨어뜨리고 오른 손에 쥔 호미로 묻으며 나가는 것이었다. 이 파종방법을 ‘자구놓이’라고 하였다.

콩을 주작으로 파종하는 다른 방법의 하나는 줄씨뿌리기였다. 이 방법에서는 먼저 연장으로 전해의 이랑등말기를 짼 다음 다른 한사람이 고랑홈에 줄씨뿌리기를 하였다. 이어 연장으로 다음 이랑을 째어 나가면 파헤쳐진 흙밥에 의하여 종자들이 묻혔다. 이렇게 파종하는 것을 평안도지방에서는 ‘콩노가리 친다’고 말하여왔다.

콩파종 하는 방법의 다른 하나는 그루갈이하는 경우에 심는 방법이었다. 그루갈이 콩은 가을 밀, 보리 이삭이 패기전 대체로 4월 하순 소만을 전후하여 밀, 보리 밭의 이랑사이를 따라 나가며 호미로 구멍을 파고 심었다. 이렇게 그루갈이 콩을 박는 것을 ‘대우친다’고 하였다. ‘대우’라는 말은 호미가 곰방메를 대신하여 땅갈이를 한다는 뜻이다. 콩을 파종하는 방법의 또 다른 하나는 혼작하는 경우에 하는 방법이었다.

콩혼작은 흔히 조밭, 수수밭, 기장밭, 옥수수밭 등에 하였다. 혼작하는 콩은 조나 기장, 수수 등을 자구넘이로 심은 밭과 줄씨뿌리기 한 조, 수수, 기장 등에 목이 진곳 즉 싹트지 못하여 결주가 많이 생긴 곳에 심었다. 이때 콩을 파종 하는 것은 조나 수수가 돋아난 다음에 호미로 구멍을 파고 심었다. 반대로 콩밭에 옥수수를 혼작하는 경우에는 콩 두 포기 사이에 옥수수 한 대씩을 박았다. 이 경우에는 콩과 옥수수 종자자루 두 개를 허리에 차고 호미로 심어 나가거나 먼저 콩을 심고 6~8일 지나 콩이 땅 위로 머리를 내민 다음 옥수수 씨를 콩포기 사이에 묻기도 하였다. 이처럼 조나 수수, 기장과 옥수수 밭에 혼작으로 콩을 심는 것을 평안도의 산간지방에서는 ‘머드레친다’고 하였다.

팥을 주작이나 그루갈이, 혼작으로 심을 때는 콩과 같은 방법으로 파종하였다. 녹두는 메마른 밭이나 밭둑과 산기슭의 묵은 땅에 잘되었다. 녹두는 아지가 넝쿨처럼 뻗어 무성하므로 성글게 심어야 하였다. 파종방법은 먼저 연장으로 홑갈이를 하고 알굴리기를 한 종자를 이랑에 구멍을 파고 3~4알 또는 5~6알씩 묻었다.
감자류는 볏과작물이나 서속류와는 달리 뿌리에 알이 맺히는 작물이므로 파종방법은 그것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감자류 가운데서도 감자와 고구마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파종을 하였다. 감자 가운데는 조생종과 만숙종이 있었다. 조생종은 대체로 기후가 온화한 평야지방이나 중간지대 밭의 가을채소 앞그루나 조, 기장, 밭의 간작으로 또는 집주변의 텃밭에 심었다. 그리고 만숙종은 땅이 늦게 풀리는 북부산악지대의 밭이나 중간지대의 냉습한 산전에 주작으로 많이 심었다. 올감자와 늦감자는 파종 시기가 얼마간 차이가 있을 뿐 파종방법은 같았다. 감자의 파종은 조생종인 경우에는 땅이 풀리면 되도록 일찍이 즉 2월 하순인 춘분 전에, 만숙종의 경우에는 3월 초순인 청명을 전후한 시기에 하였다.

감자를 파종하기 위하여서는 우선 종자를 잘 준비하였다. 전해 가을에 광이나 움에 섬이나 항아리에 넣어 따로 보관해 두었던 종자감자 가운데서 상하지 않고 흠집이 없는 크고 충실한 알을 다시 골라 그것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허청간 같은데 발을 펴고 널어놓거나 섬에 담아두고 바람이 잘 통하도록 자주 뒤재겨 주었다. 이렇게 하여 굵고 튼튼한 싹이 움트도록 하였다. 파종을 앞두고 종자 감자알을 눈을 기본으로 하여 세쪽 또는 네쪽으로 쪼갰다. 종자 감자알이 크지 못한 경우에는 반쪽 또는 통알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다음은 쪼갠 감자알을 매운 재에 굴려서 쪼갠 감자살에 재가 묻도록 하였다. 이렇게 재처리를 해야 굼뱅이 같은 벌레가 씨감자를 파먹거나 감자살이 썩는 것을 막을수 있었다.

감자밭은 전갈이로 갈아엎은 다음 이랑을 지었다. 이어 한사람이 괭이(곽지)로 60~70cm 간격으로 구덩이를 파며 나갔다. 다음 사람은 씨망태기에 씨감자를 담아가지고 나가면서 눈이 위로 향하게 종자를 구멍에 한쪽씩 박거나 떨어뜨렸다. 또 다른 한사람은 가루거름이나 두엄을 담은 거름함지를 허리에 끼고 나가며 손으로 거름을 한줌씩 듬뿍듬뿍 쥐어 구덩이에 넣었으며 그다음 한사람이 뒤따라 나가며 괭이나 고무래로 종자 구덩이를 흙으로 묻었다. 감자를 파종하는 다른 한 방법으로는 줄놓이가 있었다. 먼저 이랑 위에 자구를 치고 한사람이 종자를 적당한 간격을 잡아 한쪽씩 손으로 심어 나가면 다음사람이 거름을 뿌리며 나갔고 그 뒤사람은 그것을 흙으로 덮으며 나갔다.

고구마는 소출도 많고 식량보탬도 할 수 있었으므로 함경도와 평안도 북부산악지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고구마의 파종은 감자 파종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였다. 고구마를 파종 하기에 앞서 우선 고구마의 모를 길렀다. 가을철에 덩굴채로 엮어 광이나 방안 벽에 매달아 두었던 고구마 가운데서 상하지 않은 것을 종자로 골라 모판 흙속에 묻었다. 못자리는 온기가 드는 방안머리나 햇볕이 잘드는 울안에 만들었다. 못자리 밑바닥에는 두엄을 두텁게 깔고 그 위에 고구마 싹이 자라는데 맞춤한 모래질흙을 두텁게 폈다. 종자 고구마를 묻은 다음에는 못자리 흙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하루에 한두번씩 아침저녁에 골고루 물을 뿌려 주었다.

3월 초순경 청명이 지나 씨고구마를 모판에 묻으면 4월 중순 입하에는 싹이 두세잎 정도 되게 자랐다. 이렇게 되면 고구마 싹을 밑뿌리로부터 꺾어 내여 한묶음이 15~20대 정도 되게 짚오리로 묶었다. 싹모묶음은 밭에 내기 전까지는 물버치나 물모랭이에 담아 시들지 않도록 그늘진 곳에 두었다. 고구마모를 밭에 옮겨 심는 시기는 입하이후 여름절기에 접어들어 하는 일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봄철 농사일에 속했다.

고구마 모심기를 위하여서는 소두엄이나 돼지거름을 밭에 골고루 뿌린 다음 전갈이하고 이랑을 지었다. 그리고 한사람이 호미로 이랑 위에 구멍을 파면 다음사람은 고구마모를 한 대씩 구멍에 눕혀 놓으며 나갔다. 그 다음사람은 구멍에 물을 부으며 나갔고 뒤따라 호미로 고구마모를 묻었다. 고구마모를 묻을 때는 모가 약간 사선으로 기울어지도록 하였다. 그래야 싹이 땅의 습기를 알맞게 받아 뿌리를 빨리 내리고 추설 수 있었다.
목화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함경도, 평안도, 강원도의 산간지대를 제외하고는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하였다. 『후생록』이 편찬된 17세기 후반기에 풍종과 주종이라는 두 품종의 목화가 재배되고 있었다. 풍종은 건조한 땅에 잘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오늘 우리가 말하는 재래면이고 주종은 습한 땅에 잘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개량종인 육지면으로 인정된다. 우리 선조들은 밭의 지질적 특성에 맞게 두 품종 가운데서 적응한 종자를 골라 심었다. 목화는 대체로 모래땅에 잘되었다.

목화를 파종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2월 중순경에 밭의 초벌갈이를 하고 3월 상순에 두벌갈이를 하였다. 그리고 써레를 가로세로 쳐서 땅을 고르게 정리한 다음 후치로 째서 이랑을 만들었다. 종자는 거름처리 하여 준비해 두었다. 목화종자를 소똥에 비벼서 흰색의 솜털을 없앤 다음 오줌에 재운 재에 버무리고 다시 매운 재에 굴리어 씨를 개암알 만큼 크게 만들었다. 다음은 앞살이꾼이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 나가면서 이랑에 발로 자구를 치거나 혹은 괭이날로 밭이랑에 1자 반~2자 간격으로 구멍을 파놓는다. 그 다음사람은 씨구럭이나 씨망태에 씨를 담아가지고 한줌으로 줄씨뿌리기를 하거나 쥠씨뿌리기 즉 쥠놓이를 하였다. 그 다음사람은 발로 차서 이랑을 흙으로 묻거나 발 또는 고무래로 씨를 놓은 구멍을 묻었다. 이때 자구밟이는 하지 않았다.

위에서 든 것들은 우리 농민들이 가장 많이 재배해오던 작물들의 파종 방법들이었다. 우리 민족의 파종 풍습에서 좋은 것은 우선 토양의 특성과 계절에 맞게 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씨를 뿌리기에 앞서 토양의 성질과 지방의 기후조건, 계절적 특성을 고려하여 종자를 선택하였고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 습한 땅과 건조한 땅, 사질땅과 진흙땅에 맞게 종자를 골라 심었으며 앞그루와 뒤그루, 주작과 간작에 따라 가장 알맞은 시기에 씨를 뿌림으로써 소출을 최대한 높일수 있게 하였다. 그것은 다음으로 품종에 따라 그 생육적 특성에 맞게 갈이방법과 밑거름주기 방법도 달리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작물의 품종에 따라 갈이방법을 전갈이, 곁갈이, 홑갈이, 써레질, 화중째기, 이랑짓기 등으로 달리하였을 뿐 아니라 밑거름뿌리기도 전면뿌리기와 이랑깔기, 쥠놓이, 재씨 등 다양하게 하였다. 그것은 또한 파종작업을 합리적으로 분담하여 여러 사람들이 협력하여 한 것이다. 파종일을 합리적으로 분담하고 여러 사람이 협동하여 계획적으로 일해 나가게 되니 작업능률은 높아지고 빠른 시일안에 일을 끝낼수 있었으며 파종 실수률도 높아져 좋은 수확을 담보할 수 있었다. 파종에서의 이런 좋은 풍습들은 우리 민족의 농사일풍습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북한지역정보넷  
사이트링크-국가지식포털 사이트링크-행정안전부 사이트링크-한국정보문화진흥원 사이트링크-평화문제연구소 사이트링크-통일부 사이트링크-통일교육협의회 사이트링크-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이트링크-통일문제연구협의회
로고-북한인문지리넷 북한지역정보넷 로고-국가지식포털
유관기관링크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북한지역정보넷 저작권정책 북한지역정보넷 개인정보보호정책 북한지역정보넷 위치 및 연락처 북한지역정보넷 관리자에게 북한지역정보넷 배너및뷰어
식풍습
옷차림풍습
주택생활풍습
가족생활풍습
노동생활풍습
    - 농사풍습
    - 축산풍습
    - 과수재배풍습
    - 누에치기풍습
    - 꿀벌치기풍습
    - 수산풍습
    - 사냥풍습
    - 노동생활의 계승발전
민속명절
민속놀이
민속음악
민속무용
구전문학
민속공예
북한지역정보넷 tip 북한지역정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