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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가족생활풍습 > 출생과이름짓기·돌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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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과 관련한 풍습
이름짓기
돌맞이 풍습
북한지역정보넷 이름짓기
아기가 출생하면 곧 이름을 지어부르는데 이것은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공통적인 풍습이다. 그러나 이름을 짓는 구체적인 풍습은 나라와 민족에 따라 그리고 역사적 시대와 시기에 따라 다르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고유한 우리말로 된 이름을 지어 불렀다.★

우리나라에 유교사상이 전파되고 지배계급이 사대주의사상에 물젖게 되면서 관청이름, 벼슬이름, 고장이름 등과 함께 사람의 이름도 한자말로 지어 부르게 되었다. 실례로 신라사람 이사부를 태종(苔 이끼, 宗 마루)으로, 거칠부를 황종(荒 거칠, 宗 마루)으로, 모말을 제상(堤 방축, 上 윗)으로, 소나를 금천(金 쇠, 川 내)으로 표기한 것을 들수 있다. 이것은 원래 고유한 우리말로 된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그것이 본명으로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정식이름은 기본이름이라는 뜻에서 본명이라고 하는데 봉건시기에는 소년시절이 끝나고 어른이 되는 관례를 치르는 것을 계기로 짓게 된데로부터 관명(冠名)이라고도 하였다. 처음에 지배계급 속에서 보급된 한자말로 된 이름은 점차 백성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본명외에 아명을 가지고 있었다. 아명이란 아이가 출생하자 처음으로 지어주는 이름으로서 거기에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기대의 뜻이 많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명을 사랑스러운 이름이라는 뜻에서 애명이라고도 하였다. 이것을 역사기록들에서는 흔히 소자(小字) 또는 소명(小名)이라고 하였다.★

아명은 아이가 출생하자 곧 지어 주었는데 보통 사흘부터 초이레 즉 7일안으로 지어주는 것이 보편적인 풍습이었다. 그러나 미리 남자이름과 여자이름을 지어두었다가 출생한 아기의 성별에 따라 이내 부르기도 하였다.

간혹 나쁜 아명을 달아주는 수도 있었는데 이것은 흔히 어린이에게 나쁜 것이 달라붙지 말라는 뜻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양육을 과학적으로 할수 없었던 봉건사회에서 어린이의 사망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오계와의 접촉에서 연약한 어린이는 병에 걸리면 살려내기가 힘들었다. 부모들은 어린이를 나쁜 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책으로 어린이에게 나쁜 아명을 붙여주어 ‘귀신’이 달라붙지 말라고 하였다. 비과학적인 노릇이나 어린이를 건강하게 키우려는 부모들의 소박한 심정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지배계급은 이름(본명), 아명 외에도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18세기 실학자 이익은 “옛날에는 아명이라는 것이 있어서 갓 나서 지은 뒤에는 아름답거나 나쁘거나 그대로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이 그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함을 안다면 나쁜 이름이 그 사람을 해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뒷날에 와서는 반드시 정식이름을 따로 짓고 또 반드시 덕행을 표시하는 자(字)를 지으니 이만해도 벌써 다 갖추어졌는데 벼슬한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시호를 짓고 근세에 와서는 또 이른바 별호라는 것이 있어서 남이 지어주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짓는 것도 허다하다. 스승을 존경하여 스승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면 고장이름을 붙여서 부르면 아름답고 나쁜 구별이 없을 것이다. 자체로 호(號)를 짓는자가 그것으로써 품성을 수양하는 뜻을 표시한다면 그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성(誠 정성), 명(明 밝을), 홍(弘 클), 대(大 큰)와 같은 아름답고 훌륭한 호칭까지도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과연 무슨 심사인가?”고 하였다. 이것은 한사람이 본명, 아명, 자, 별호와 같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중 자는 아명으로 불리우던 소년시절이 끝나고 어른이 되는 관례를 하는 계기에 지어주게 되어있었다. 관례를 계기로 본명과 함께 ‘자’라는 다른 이름을 지어부르게 된 것은 어른이 지어준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삼가야 했던데로부터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본명이외에 자를 지어 쓰기 시작한 것은 늦어도 삼국시대부터였다. 그것은 『삼국사기』 열전에서 볼수 있는바와 같이 7세기사람 김인문이 인수라는 자를 가지고 있은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자를 지어 부르는 생활관습은 그후 우리나라 봉건사회의 전기간에는 물론 근세까지도 존속되었다. 통일신라의 설총의 자는 총지였고 김양의 자는 위흔, 그리고 9세기에 세운 곡성 대안사의 적선탑비에는 선사의 자를 체공이라 하였고 9세기에 세운 충주 월광사의 낭원대선사탑비에도 선사의 자를 대융이라 하였다. 이것은 통일신라에서 불교중들을 포함한 상류지배계급들속에서 자를 지어 부르는 생활관습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봉건사회 양반지배계급들 속에서는 호 또는 별호라 하여 본명(관명)이나 자 이외에 또 다른 하나의 이름을 지어부르는 생활관습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호를 짓기 시작한 것은 자를 지어 쓰기 시작한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때 사람 성각이 호를 스스로 거사라고 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호는 그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근세까지도 널리 보편화되었다.

호는 문필활동을 하던 사대부들 속에서 널리 일반화되었으나 글에 조예가 깊은 무인들도 호를 지어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별호는 자기 스스로 짓기도 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지어주기도 하였는데 그의 생활과 인연이 깊은 고장이름이나 그와 관련된 고사나 사실에 기초하거나 자기의 정신수양이나 희망을 염원하는 글자를 따서 지었다. 그러한 대표적인 실례로 16세기의 철학가 서경덕의 호화담과 18세기 말~19세기 초 실학자 박지원의 호 연암, 16세기의 명필 양사언의 호 봉래를 들수 있다.

그중 양사언의 호는 봉래산을 가리킨 것인데 봉래산은 여름의 금강산을 말한다. 천하명승 금강산은 네계절마다 달리 불리웠는데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불리웠다. 양사언은 우리나라 명산가운데서도 금강산을 가장 사랑하였고 말년에는 금강산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며 자기의 호를 봉래(蓬萊) 라고 하였다.

호는 대체로 두 글자로 되어있는데 아랫글자는 산과 강을 비롯한 자연지물과 서재를 비롯한 건물 등을 나타내는 글자로 되어 있다. 이름난 관료, 학자, 문인, 서예가, 화가들의 호를 들면 다음과 같다.

송강(江) 정철
양촌(村) 권근
율곡(谷) 이이
서포(逋) 김만중
퇴계(溪) 이황
담헌(軒) 홍대용
완당(當) 김정희
농암(巖) 김창협
백사(沙) 이항복
면암(巖) 최익현
석봉(峯) 한호
의암(菴) 유린석
다산(山) 정약용
포은(隱) 정몽주
초정(政) 박제가
서애(厓) 유성룡
오주(州) 이규경
단원(園) 김홍도
단재(齋) 신채호
명월(月) 황진이
약천(泉) 남구만

호에는 3자 또는 4자로 된 것도 있으며 지어 5자로 된 것도 있다.

매월당-김시습
사임당-신씨
남명루-최한기
연려실-이긍익
고산자-김정호
쌍명재-이인로
난설헌-허씨(초희)
동안거사-이승휴
백운거사-이규보
효창노인-심봉원
석간매하옹-조은흘

이러한 호는 저서, 편지, 비문, 묘지명 등에 많이 썼다. 그러므로 옛날 학자, 관료, 문인, 서예가, 화가들 가운데는 정식이름인 본명보다도 호가 더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실례로서 호가 국내는 물론 이웃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진 이퇴계, 이율곡, 정다산(또는 여유당), 박연암 등과 조선시대의 3대명필인 양봉래, 한석봉, 김추사 그리고 명화가들인 현동자(안견)와 단원(김홍도), 혜원(신윤복) 등을 들 수 있다.

본명보다도 호가 더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중요하게는 『율곡전서』, 『퇴계집』, 『여유당전서』, 『연암집』과 같은 그들이 쓴 책들과 글씨, 그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자와 호는 한사람에게 반드시 하나씩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한사람이 자와 호를 여러 개 가지고있었다. 예를 들면 박제가는 재선 이외에도 차수, 수기라는 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김시습은 매월당 이외에도 동봉, 청한지, 오세라는 호를 가지고 있었다. 김정희도 추사 이외에 완당, 예당, 시암, 과파, 노과, 초고당과 같은 여러 개의 호를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일반백성들은 자, 호 같은 것을 짓거나 쓰지 않았다.

우리 조선사람의 이름짓는 풍습에서 중요한 것은 성과 이름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되 성을 먼저 부르고 그뒤에 이름을 부른 것이다. 성은 아버지의 핏줄기를 따른것으로서 아들들은 물론 딸들도 언제나 아버지의 성을 따랐다. 성에는 황보, 남궁 등과 같은 두글자로 된 복성도 있으나 김, 이, 박과 같은 하나의 글자로 된 단성이 대부분이다.

성과는 달리 이름은 하나의 글자로 된 외자이름도 있으나 그 대부분이 두자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사람들은 이름 두 글자와 성 한 글자를 합하여 ‘이름 석자’라고 한다.

이름 석자는 모두 일정한 뜻을 가지고 있다. 성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아버지의 핏줄기를 따른 것이고 이름 두 글자중에서 한 글자는 돌림자이다. 돌림자는 문중안의 항렬을 나타내고 나머지 한 글자만이 그자신에게 고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구해온 문익점에게는 중용, 중성, 중실, 중진, 중계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에서 중(中 가운데)은 형제들의 돌림글자로 항렬을 표시한 것이다. 오직 용, 성, 실, 진, 계만이 다섯아들 각자를 표시하는 글자였다.

두글자로 된 이름의 돌림자는 아버지대에서는 첫 글자로 하고 아들대에서는 둘째 글자로 하였으며 손자대에 가서는 다시 첫 글자로 하는 식으로 정하였다.★

이러한 돌림자를 먼 친척까지 모두 쓰게 하기 위하여 돌림자를 미리 족보에 정해놓곤 하였다. 그리하여 먼 친척이라도 서로 만나서 통성하면 형제벌인가 아저씨 조카사이인가 하는 것을 제꺽 분간할수 있었다.

이름짓는 풍습에서 항렬을 나타내는 돌림자는 남자들에게만 썼고 여자들의 이름에는 돌림자가 없었다. 봉건사회에서 여자들은 출생하면서 지은 아명 하나만으로 한생을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관명이나 자, 호를 따로 짓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황진이와 허란설헌, 신사임당과 같은 이름난 여인들이 자나 호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은 특이한 실례였다.

봉건사회에서는 여성들이 혼인을 하고 시집을 가면 이름을 부르는 일도 별로 없었다. 시집에서는 성씨를 따서 김씨, 이씨, 박씨 등으로 부르거나 택호라 하여 친정집의 고장이름을 따서 평양집, 안주집, 수원댁 등으로 불렀다. 심지어 친정에서까지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사위의 성씨를 따서 ‘김집’, ‘박집’이라 하거나 아이의 이름을 붙여서 ‘○○엄마’, ‘○○어미’ 등으로 불렀다.

우리 선조들의 이름짓는 대표적인 관습을 몇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남자들은 건강과 장수, 행복과 총명 등을 염원하여 만수, 만복, 장수, 복동, 명철, 바위, 돌쇠, 억쇠 등과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여자들은 아름다움과 정절, 순정 등을 상징하여 꽃분이, 이뿐이, 분이, 정숙, 길순, 순녀, 은실 등과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음으로 출생한 해와 난 달을 반영하여 남자들은 갑돌·구월쇠 등으로, 여자들은 갑순·정월·시월녀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또한 딸만 있는 경우 딸은 그만 낳고 아들을 낳을 것을 염원하여 후남, 복동, 필녀, 딸막이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짓기에서 일반백성들은 일찍부터 고유한 우리말로 자식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것은 좋은것 이었다. 봉건사회에서 고유한 우리말로 지은 이름이 양반사대부들에 의해서 아명으로 천시되고 속된 것으로 비난받기까지 하였으나 백성들은 어린이들에게 이쁜이, 별이, 곰손이, 삼손이 등과 같이 우리말로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것은 자기의 고유한 말을 사랑하며 어린이들의 이름을 보다 정답고 아름답게 지으려는데서 나온 좋은 풍습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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