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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주택생활풍습 > 주택생활의 계승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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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후 주택생활조건
문화주택
주택생활관습과 예절
북한지역정보넷 광복 후 주택생활조건의 개선과 변혁
주택생활풍습은 일반적으로 주택의 평면구성형식과 갖춤새를 비롯한 주택생활조건이 발전하는 민족생활의 요구에 맞게 개선되고 변화되는데 따라 계승발전된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 민족의 고유한 주택생활풍습의 계승발전은 일제강점기가 이 분야에 끼친 후과를 가지고 전쟁에 의하여 파괴된 주택들을 복구하며 사회주의 새 생활에 맞게 보다 문명한 주택생활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창조적인 투쟁과정에 이루어졌다.

근 반세기에 걸치는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폭압과 약탈 정책은 사람들의 주택생활에도 극도의 낙후와 빈궁을 가져다주었다. 이 시기 우리 민족의 주택생활은 참혹하였다. ‘서발곱새 발반씩 늘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초라한 오막살이를 형상적으로 이른 말이다. 오막살이집은 칸막이도 되어있지 않은 단칸집이었으며 출입문도 한두 개가 있을뿐이었다. 이러한 집 아닌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이에 대하여 광복 직후 잡지 「농민」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종래의 가옥제도는 너무도 뒤떨어졌으며 추위를 막는데 치중하고 비위생적인 점이 많다. 한증간과 같이 사방이 둘러막힌 가운데 앞으로 출입문 하나가 있을뿐이고 뒤로는 광창이 하나도 없어서 방안에 들어가도 얼른 얼굴이 보이지 않는 점이 많다.” 게다가 일본의 ‘황국신민화’정책에 의하여 주택생활에서는 ‘왜풍’이 부식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주택생활풍습이 유린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후과를 가시고 주택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 향상시키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당시 잡지 『농민』(1948년 1호)은 뒤떨어진 주택생활조건을 개선할데 대하여 강조하면서 “옛날에는 관가(일제식민지통치기관)가 두려워 집을 되는대로 지었지만 이제는 집을 짓는데서도 알뜰살뜰히 쓸모있게 창발력을 발휘해 나가자”라고 호소하였다.

생활이 급속히 향상된 사람들은 원료원천이 풍부한 곳에 기와공장을 비롯한 건재기지들을 꾸리고 건재생산을 늘이는 한편 새 집들을 세우며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조하고 일부 불합리한 주택구조들도 개선하는데 힘을 넣었다.

사람들은 우선 낡은 사회의 유물인 낙후한 오막살이들을 헐어버리고 쓸모있는 민족적형식의 새 집들을 건설하므로 민족주택을 계승발전시켜나갔다. 현지조사자료에 의하면 황해남도 신천군 새날협동농장에서 일하는 한 노인은 광복 직후 땅의 주인이 된 기쁨을 안고 첫해 농사를 잘하여 먹고 남은 것으로 1947년에 새 집을 지었는데 그것은 ‘ㅁ’형으로 꺾어돌린 8칸짜리 똬리집이었다. 이러한 집이 그해만도 하은동(새날농장의 옛마을)에 20세대나 세워졌다. 전국적으로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광복 후 1948년 6월말까지 농촌에만 하여도 새로 지은 집은 10만 1,449호였으며 개축한 집은 4만 1,897호에 달하였다. 이 집들은 대부분이 민족주택형식을 계승한 훌륭한 기와집들이었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유족해진 사람들은 기존주택의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개조하는 투쟁도 힘있게 벌였다. 광복 후 기와생산기지가 도처에 생겨나고 사람들의 생활이 넉넉하여짐에 따라 초가지붕을 내리고 기와를 올린 집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또한 이미 쓰고살던 주택의 불합리한 구조들을 개선하며 가장집물도 새로 갖추었다. 과거사회의 시대적 제한성으로 하여 민족주택의 일부 불합리한 요소들이 이 시기에 와서 개변되었다. 예를들면 양통집에서 정주간과 부엌, 경리시설들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었던 것이 칸막이가 진행됨으로써 살림방과 경리시설이 갈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주택의 평면구성이 위생문화적으로 보다 쓸모있게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택의 평면구성에서뿐아니라 살림집의 갖춤새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매 가정들에 새로운 가장집물이 늘어났다. 1947년 6월말 전국적인 조사자료에 의하면 이불장을 새로 갖춘 세대수가 1만 7,072호, 옷장을 새로 갖춘 세대수 1만 3,175호, 가시장을 새로 갖춘 세대수 6,438호, 축음기를 새로 갖춘 세대수 5,018호, 벽시계를 새로 갖춘 세대수 3,499호였다. 이와 같이 광복 후 옷장, 이불장을 비롯한 가구비품들과 문화용품들을 갖춘 세대가 많이 늘어났다.

특히 주요한 변화는 전기조명시설과 전기일용품들이 갖춰진 것이다. 우리나라 농촌에는 일제강점의 후과로 하여 광복 후에야 비로소 살림집에 전기가 들어가게 되었다. 1947년 7월말 현재로 전기가 들어간 농가호수는 전국적으로 11만 8,300여 호였으며 전등을 가설한 수는 21만 1,890여 등에 달하였다.

많은 농촌주택들에 전기가 들어감으로써 뒤떨어진 조명시설이 없어지고 현대적인 조명시설이 설치되었으며 라디오를 비롯한 문화용품을 갖춘 세대가 늘어나 농민들은 문화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기에 의한 조명시설과 문화용품의 보급은 주택갖춤새에서 큰 변화였으며 주택생활풍습에서의 새로운 발전이었다.

전후시기 주택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이 힘있게 벌어짐으로써 주택건설에서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났다. 주택건설역사에서 근본적인 전환의 계기로 된 것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957년 10월 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이었다. 이리하여 조립식 건설의 새 역사가 펼쳐지고 살림집 건설에서 커다란 혁신이 일어남으로써 쓸모있고 아담한 문화주택들이 우후죽순처럼 건설되었다.

전후부터 5개년 기간에 도시에는 1,231만m², 농촌에는 1,234만m²에 이르는 새로운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노동자, 사무원들은 국가로부터 주택을 보장받게 되었으며 농민들도 집문제로 하여 근심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근로자들의 집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

제1차 7개년 계획기간에는 수도 평양의 천리마거리와 여러 지방도시들이 세워졌으며 숙천군 창동리의 중앙난방화된 현대적인 문화주택마을을 비롯한 많은 농촌문화주택들이 건설되었다. 이 계획기간에 건설된 현대적인 문화주택만 하여도 도시와 농촌에 80여 만세대에 달하였다.

6개년 계획기간(1971~1976년)에는 주택의 구조와 설비를 새로운 시대적요구에 맞게 보다 현대화한 살림집이 더 많이 건설되었다. 평상시에는 현대적인 비파거리, 낙원거리 등이 새로 세워지며 사리원시, 희천시, 남포시, 함흥시, 원산시를 비롯한 지방도시들이 더욱 훌륭한 현대적인 문화도시로 전변되고 군소재지, 노동자구들이 보다 아름답게 조성되었다. 농촌에도 도시주택에 못지 않는 새로운 현대적인 농촌문화주택이 수많이 건설되었다.

농촌에 건설된 주택은 농민들의 기호에 맞고 또 도시주택에 못지 않는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새형의 문화주택이었다. 이 시기 많이 지은 것은 2층 농촌문화주택을 기본형식으로 하는 다층문화주택들이었다. 평안남도 문덕군 용림리, 평안남도 온천군을 비롯한 전국의 모든 농촌들에서 새로운 단층 및 다층문화주택들이 수많이 건설되었다. 이 계획기간에 건설된 문화주택은 도시에 41만 4,000세대, 농촌에 47만 200세대에 달하였다.

제2차 7개년 계획기간(1978~1984년)에도 도시와 농촌에 현대적인 살림집들이 수많이 건설되어 사람들에게 차례졌다. 수도 평양시에는 20~30층의 아파트들이 마치 총석정처럼 집중적으로 솟아오른 창광거리와 10~18층 살림집들이 조화를 이루며 대동강반에 솟아있는 문수거리,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의 제2계단공사의 완공, 보통벌에 우뚝 솟은 40~42층의 현대적인 아파트, 그밖에 많은 살림집들이 건설되었다.

지방도시들과 농촌마을들도 잘 조성되었다. 그 대표적인것으로서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원산에 9층으로부터 25층에 이르는 여러 가지 모양의 주택으로 조화를 이룬 다층문화주택거리, 과학문화도시 평성시에 여러 동의 15층 탑식살림집이 세워졌으며 또 남포시가 현대적인 항구문화도시로 더 잘 조성되었다. 그리고 함경남도 함흥, 단천, 신포 등지에 새 주택거리들이 생겨났으며 함경북도 청진시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도 새로운 주택지구들이 건설되었다. 평안북도 남신의주와 의주군에 새로운 주택지구가 형성되었다. 황해북도 은파군 양동리에 세워진 은덕마을을 비롯한 여러 공산주의이상촌들이 건설되었다.

새로 건설된 살림집들에는 대부분이 2~3개의 온돌방과 전실이 있으며 4개의 살림방으로 된 집도 적지 않다. 그리고 상하수도시설이 잘 갖추어진 부엌, 목욕탕, 수세식으로 된 위생실, 창고 등 모든 것이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하게 꾸려졌다.

3차 7개년계획기간(1987~1993년)에도 수도 평양에는 옹근 하나의 도시와 맞먹는 광복거리와 통일거리가 새로 세워졌으며 그밖의 지방도시들과 노동자구, 농촌마을이 현대적으로 더 잘 조성되었다. 이리하여 아담하고 쓸모있는 문화주택들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차례지게 되었다.

새로 건설된 문화주택들에는 현대적인 가구비품들과 설비들이 그하게 갖추어졌다. 우리 당이 제시한 가구혁명방침이 관철됨으로써 현대적인 가구비품들을 생산하는 중앙공장들과 지방공장들이 세워져 가구비품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농촌수도화방침이 관철됨으로써 부엌과 위생시설이 현대화되고 보다 문화위생적인 주택생활이 보장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까지 기간에 북한에서 사람들의 유족하고 문명한 주택생활조건이 마련됨으로써 북한의 주택생활풍습은 새로운 사회주의의 조건에 상응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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