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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옷차림풍습 > 옷짓기와 옷보관 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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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빨래 및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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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빨래
빨래는 옷에 묻은 때를 물에 빠는 일로서 옷을 손질하고 보관하는 데서 선행공정이다. 우리 선조들은 고대에 벌써 옷을 깨끗하게 차려 입는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옛 기록에 삼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머리단장에 깨끗한 옷차림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에 이미 깨끗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활관습으로 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의복이 깨끗하다”는 평가는 옷에 대한 일상적인 빨래와 세심한 보관을 전제로 한 말일 것이다.

옷을 잘 빨아 깨끗이 입는 풍습은 삼국시대와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도 계승 발전되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풍속은 깨끗한 것인데 지금도 여전하다”고 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반드시 목욕을 한 뒤에야 문을 나서며 여름철에는 낮에 개울물에서 거듭 목욕을 하며...옷을 깨끗하게 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를 통하여 고려시대에도 빨래를 자주 하며 차림새를 깨끗하게 하는 미풍이 일상 생활에서 높이 발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미풍은 그 이후 시기도 변함없이 계승되었다.

옛날에는 주로 손빨래를 하였으며 가정의 주부인 여성들이 맡아하였다. 빨래를 하자면 빨래물과 빨래도구, 잿물과 같은 세탁제가 필요하였다. 빨래물은 우물의 물이나 개울물, 빗물 등으로 해결하였다. 우물의 물은 우물을 가지고 있는 집과 옆집에서 이용하였으나 빨랫감이 크거나 많은 빨래를 할 때에는 가까운 개울가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흐르는 개울은 빨래물 가운데서 원천이 가장 많은 자연수로서 언제나 깨끗하여 흰옷을 깨끗이 차려 입은 여인들이 개인날 개울가에 앉아 부지런히 빨래하는 모습은 참으로 우리 농촌의 수려한 자연풍경에 어울리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았다. 17~18세기의 풍속도에서 여인들이 개울가에 나가 빨래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러한 풍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빨래할 때 쓰이는 기본도구는 단단한 나무를 깎아 만든 방망이었다. 때를 빠지게 하는 세탁제로서 많이 쓰인 것은 매운 재에 물을 부어 얻은 잿물이었다. 잿물에 옷가지를 삶아 빨면 때가 잘 빠질 뿐 아니라 색깔이 더욱 산뜻해졌으며 흰 빨래는 햇볕에 널어두면 표백한 것처럼 하얗게 바래어졌다. 잿물의 원료는 지방에 따라 각기 달랐는데 대체로 볏집이나 콩깍지, 메밀짚 등을 많이 이용하였다. 그것을 태운 재를 시루에 넣고 물을 부어 잿물을 얻어냈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볏집과 기장짚, 조짚을 많이 썼고 강원도 지방에서는 잡초나 들깨, 메밀, 콩 등의 짚과 대 등을 썼다. 그리고 경기도 지방에서는 콩깍지나 풀골, 충청도 지방에서는 뽕나무를 많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잿물 외에 가정들에서 사용한 세탁제로는 쌀뜨물이나 콩, 팥, 녹두 등을 갈아 채에 밭은 물도 썼다. 이러한 물은 명주를 비롯하여 비단옷가지 등의 좋은 옷들을 빠는 데 사용되었다. 세탁제로는 또한 두부를 앗고 남은 순물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물은 명주빨래 같은 것을 하면 때가 잘 빠졌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칼의 기름기가 쉽게 빠지고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돌았다.

가정들에서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세탁제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18세기말~19세기경에 편찬된 『규합총서』 ‘세의편’에는 위에서 지적한 자료들 외의 세탁제와 얼룩진 것을 없애는 데 오미자, 매화열매물, 치잣물, 식초, 오매 달인 물, 우칠가루(옻), 살구씨, 소금물, 소뼈를 태운 재, 복숭아잎, 은행즙, 마늘즙, 동아즙, 도라지 담근 물, 무즙, 무 삶은 물, 조개껍질가루, 생강즙, 토란 삶은 즙, 창포뿌리가루, 오징어뼈가루, 백반가루, 대추 등이 당시 백성들 속에서 널리 이용된 세탁제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세탁제들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생활경험에 기초하여 얻어낸 것으로서 당시 옷차림을 깨끗이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난날 빨래하는 방법은 대체로 애벌빨래와 본빨래, 삶는 빨래, 말리기 등 4개 공정을 거쳐 진행되었다. 애벌빨래는 본빨래를 하기 전에 빨랫감을 따뜻한 물에 담가 가볍게 주물러 때를 대강 빼는 공정이다. 애벌빨래는 주로 이불안 그리고 많이 더러워진 빨랫감을 대상으로 하였다.

본빨래는 애벌빨래를 한 다음에 적당한 세탁제를 사용하여 빠는 공정이다. 빨랫감의 종류에 따라 비비거나 주물고 두드리거나 밟아서 빠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무명옷이나 베옷 같은 것은 빨랫돌 위에 올려 놓고 빨래방망이로 두들기거나 비벼 빨았으며 명주나 모시옷은 가볍게 주물러 빨았다.

빨랫감을 넙적한 빨랫돌 위에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빠는 방법은 지난날 농촌에서 널리 이용한 것으로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습이었다. 그러나 지난날 좋은 세척제도 없었고 흰옷을 많이 입던 시기에 큰 집안살림을 혼자 맡아하던 우리 여성들에게 있어서 빨래하는 일은 실로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빨래터에 모여온 마을 여성들은 고된 시집살이를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였으며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잠시나마 풀려나온 기쁨에 서로 우스갯소리도 나누고 하면 마음도 한결 거뜬해지고 방망이질하는 손동작도 가쁜해지곤 하였다. 삶는 빨래는 본빨래를 해도 때가 잘 빠지지 않는 무명 같은 빨랫감에 한하여 진행되었는데 빨랫감을 삶아서 방망이로 두드려 빨면 아주 깨끗해졌다.

다음으로 깨끗하게 빤 빨랫감을 맑은 물에 헹군 다음 두 손으로 비틀어 짜거나 명주나 모시 같이 얇은 옷가지는 손으로 눌러 짜서 널어 말렸다. 빨래는 흔히 집마당에 매놓은 빨랫줄에 널었으며 시냇가에 나가서 빨래하는 경우에는 가까운 돌판이나 풀밭 위에 널기도 하였다. 집마당에 매어 놓고 있는 빨랫줄을 이용할 때에는 빨래가 늘어지는 것을 막으며 공기가 잘 통하여 빨리 마르도록 하기 위해 빨랫줄 가운데 바지랑대를 세워 받치기도 하였다. 무더운 여름날 제비가 쌍쌍이 날아와 마당가의 빨랫줄에 앉아 조잘대며 노래하는 광경은 독특한 농촌 풍경의 하나였다.

빨래말리기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풍습이 있었다. 빨래는 낮에만 널어놓고 말리며 낮에 채 마르지 않은 빨래는 걷어 두었다가 다음날에 다시 내다 널어 말렸다. 이것은 밤에 이슬이나 기타 예상치 않던 일로 빨래의 풀이 죽거나 빨래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생긴 풍습이었다. 그리고 채 마르지 않은 옷은 식구들에게 입히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딸과 며느리들이 이런 준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하여 “밤에 빨래를 널어두면 남편이 바람난다”, “덜 마른 옷을 입으면 남의 말밥에 오른다”는 식의 속담을 지어 훈계하곤 하였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빨래나 옷감을 하얗게 표백하는 풍습도 있었다. 옷감을 표백하는 것을 ‘마전한다’, ‘바랜다’는 말로도 표현하였다. 여기서 ‘바랜다’는 말은 햇볕에 색을 날려 희게 한다는 뜻이다. 천을 희게 표백할 때에 햇볕을 많이 이용한 데서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 가정에서 천을 바래는 것은 길쌈을 하여 베틀에서 떼어 낸 옷감이 누렇고 곱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명을 바랠 때에는 먼저 물에 담갔다가 잿물에 빨고 삶은 다음에 냇가나 뒷동산 양지 바른 곳에 널어놓았다. 밤에는 걷어왔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시 물에 적셔 널어놓곤 하였다. 이렇게 며칠 동안 반복하면 무명천은 햇볕에 하얗게 바래졌다. 이로부터 “햇볕에 마전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빨래 다음 공정은 푸새를 하는 것이었다. 푸새는 빨래한 옷가지나 옷감에 풀을 먹이는 공정을 말한다. 푸새는 빨래하여 후줄근해지고 발이 늘어진 베, 무명, 모시 등 옷감을 원상대로 빳빳하게 하기 위한 필수적 공정이었다.

풀감으로는 흰쌀풀, 밥풀, 녹말풀, 밀가루풀 등을 많이 사용하였다. 흰쌀풀은 가장 널리 사용된 풀감이었다. 흰쌀을 물에 담가 불려서 망에 보드랍게 갈아 풀을 쑤었다. 쑨 풀을 물에 타서 잘 개어 옷에 먹이었는데 푸새는 주로 베나 무명, 모시 등에 하였다. 풀을 좀더 쉽게 만드는 방법은 흰쌀을 오래 끓인 다음 베주머니에 넣어 주무르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풀물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녹말풀은 감자녹말로 풀을 쑨 다음 보드라운 풀채에 밭아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풀기가 쌀풀보다 세어서 얇은 옷감이나 명주옷감에 먹이었다. 밀가루풀은 밀가루를 물에 개어서 끊인 다음 물에 풀어서 만들었다. 밀가루풀은 색이 깨끗하게 나지 않기 때문에 모시에는 쌀풀을 많이 먹이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고운 명주나 얇은 옷감에 썩힌 밀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빨래에 풀을 먹이는 것은 빨래를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는 것이었다. 말린 빨래에 풀물을 골고루 먹인 다음에 비틀어 짜지 않고 마른 보자기에 싸서 밟거나 무거운 물체에 눌리게 하여 물기를 뽑았다. 다음에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널어 짧은 시간에 말렸다. 그래야 색깔도 좋고 풀기가 빳빳이 살아났다. 젖은 빨래에 풀을 먹일 때에는 마른 빨래보다 풀기를 더 진하게 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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