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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옷차림풍습 > 옷감의 색깔 및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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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
옷색깔과 무늬
옷색갈
옷무늬
북한지역정보넷 옷감
옷의 바탕을 이루는 옷감은 옷 발전의 물질적 조건의 하나이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민족으로서 옷감의 기본 원료도 주로 삼, 모시, 목화, 누에고치 등을 이용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처음으로 이용한 옷감은 삼을 원료로 한 베였다. 베는 원시시대에 가락고동을 이용하여 실을 낳아 짰는데 베의 생산은 사람들의 옷을 생활에 편리하게, 보다 문화적으로 지어 낼 수 있게 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졌다. 베의 생산수준은 원시시대 말기에 비하여 고대에 보다 높은 발전단계에 이르렀다.

고대의 주민들은 베실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가락고동보다 더 능률적인 베짜는 도구인 나무로 된 자새 또는 물레 같은 것을 창안하였다. 새로운 실생산도구의 창안 도입은 베실과 옷감 생산을 훨씬 늘릴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고대 주민들은 베만으로는 추운 계절의 옷을 해결할 수 없었고 늘어나는 옷감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었으므로 짐승의 털가죽을 이용하는 한편 새로운 옷감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창조적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누에를 치고 거기에서 실을 뽑아 명주나 비단을 짜는 기술을 창조하였으며 짐승의 털로 모직천을 짜는 방법도 발견하였다.

옛 기록들에는 고대 주민들이 누에를 치고 명주나 비단을 짠 이야기와 모직에 관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명주, 비단, 모직 등 동물성 섬유로 된 옷감의 생산은 우리 조상들의 옷감 생산에서 획기적인 성과였다. 옷감 생산에서의 이러한 성과는 추운 계절의 옷감을 보다 원만히 해결할 수 있게 하고 여러 가지 생활환경에 맞게 옷을 다양하게 지어 입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게 하였다.

옷감 생산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성과는 또한 천을 짜는 기술을 더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하였다. 이시기에 벌써 ‘금(錦)’으로 불리는 고급비단이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에 비단옷감도 다양하게, 높은 수준에서 짜고 있었으며 그 생산기술이 또한 대단히 높았음을 말해 준다.

고대시대의 주민들은 여러 가지 옷을 더 쉽고 맵시있게 만들기 위해 천의 폭을 종전보다 넓게 짜고 실도 보다 가는 것으로 짜기 위해 힘썼다. 『삼국지』 변진관계 기록에 변진에서는 폭이 넓고 가는 천(광폭세포)을 짰다고 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 옷감생산 수준은 전에 비하여 계통적으로 높아졌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 등 당시 우리나라의 전반적 지역들에서 경작지가 더 개간되고 삼밭이나 뽕밭도 이전보다 훨씬 늘어나 누에를 치는 일이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다. 기록에는 고구려에서 583년에 군, 읍들에 관리를 보내어 농사와 함께 양잠업을 장려하였으며 신라에서도 양잠을 적극 장려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시기에 실 생산도구와 천을 짜는 베틀 등도 이전보다 더 발전하여 조선시대의 베틀과 비슷한 것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대안리1호무덤 벽화에 그려져 있는 베틀의 구조는 후세의 것과 기본적으로 같다. 천 생산 도구의 이러한 발전에 기초하여 베 생산과 명주 생산이 전국적 범위에서 널리 진행되었으며 천 생산을 전문으로 한 관영 직조소들도 설치되었다.

백제에서는 주부라는 관영 직조소가 설치되어 비단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였으며 신라에서도 조하방, 금전, 기전, 마전, 모전 등의 관영 전문직조소들이 설치되어 여러 가지 재질의 옷감을 생산하였다. 고구려에서도 응당 전문직조소가 설치되어 운영되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5세기 전반기에 일본에 우수한 옷제작 기술자들을 보내주었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옷감 생산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었음을 말하여 준다.

삼국시대 옷감에서 가장 비중이 컸던 것은 베였는데 이때의 베는 이전에 비하여 발이 더 가늘고 고운 것이었다. 당시에 새로 생산된 베옷감에는 청포, 금총포 등이 있었으며 올이 매우 가는 28새도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견직물 생산도 발전하였다. 당시 견직물 생산이 발전하였다는 사실은 그 종류가 이전에 비하여 훨씬 늘어나 10가지나 되었다. 그리고 비단의 질이 높아졌다는 것은 1959년에 평양시 대성산에서 2개의 소상과 함께 출토된 누에고치의 풀솜으로 짠 비단 쪼가리와 일본 법륭사에 소장되어 있는 ‘천수국수장’등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천수국수장’은 고급비단에 15가지 이상의 색실을 써서 수를 놓은 자수품이다. 이 화려한 자수품의 원화를 그리고 수를 놓은 기술자는 모두 한민족이었다. 당시 생산된 비단들 가운데서 ‘금’에는 무늬, 색깔에 따라 조하금, 운포금, 오색금, 자지힐문금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조하금, 운포금, 자지힐문금 등은 무늬형태에 따라 붙인 이름이었고 오색금은 비단빛깔의 특징을 살려 단 이름이었다.

삼국시대 모직물 생산도 이전보다 훨씬 발전하였다. 모직물로는 종래에 있었던 ‘계’ 외에 새로 구유, 장일, 백첩포 등이 생산되었다. 모직물 생산이 늘어난 것은 추운 겨울날씨에 밖에서 활동할 때와 난방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살림집 조건에서 추위를 막는 데 큰 의의를 가졌다. 그러나 당시 모직물의 생산량은 다른 옷감들에 비하면 많지 못하였다.

삼국시대의 옷감을 전반적으로 놓고 볼 때 베와 견직물이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베와 견직물 가운데서도 베가 당시 일반주민들의 기본 옷감이었으며 견직물은 대부분 통치자들의 옷감으로 이용되었다. 발해 및 통일신라시대 옷감 생산도 높은 수준에서 진행되었다. 발해에서 새로 생산한 베옷감으로는 황명세포, 60종포 등이 있었다. 황명세포는 황색의 밝은 빛깔을 가진 발이 가는 고급베였으며 60종포도 그 이름으로 보아 발이 매우 가는 베였을 것이다.

발해에서는 이밖에도 현주(중경현덕부의 수주)에서 생산된 베가 질좋은 것으로 이웃 나라들에까지 명성이 높았다. 이 시기 견직물 생산도 발전하여 발해에서는 용주(상경용천부 관하)의 명주, 옥주(남경남해부 관하)의 풀솜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통일신라에서는 야초라, 승천라, 월라, 표방라, 급라, 계라 등의 ‘라’ 종류와 대화어아금, 소화어아금 등의 ‘금’ 종류 등 고급비단이 생산되고 있었다. 이 시기 새로운 옷감으로서 특별히 주목을 끈 것은 모시였다.

모시는 더운 고장에서 자라는 모시풀을 원료로 하여 짜는 천이므로 통일신라에서 생산되었다. 당시에 통일신라에서 모시 생산량이 급속히 늘어났을 뿐 아니라 보다 질 좋은 30새나 40새의 희고 발이 가는 모시도 생산되었으며 고급모시는 다른 나라에까지 수출되었다. 모시 생산은 우리나라 옷감 종류를 보다 다양하게 하는 데서와 무더운 여름철의 고급옷감을 해결하는 데서 큰 의의를 가졌다. 모시는 빳빳한 맛이 있고 질기며 광택이 좋을 뿐 아니라 통풍도 잘되는 옷감이었으므로 당시 여름옷감으로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고려 사람들은 선행 시기의 옷감 생산기술을 이어받아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 고려에서는 11세기 중엽에 직물 생산을 전문으로 맡아보는 국가기관이 재정비되고 강화되었다. 중앙에는 잡직서와 도염서가 설치되고 각 도에는 잡직잡방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관들에는 능장, 나장, 금장, 계장 등의 장공인들을 두어 능, 라, 금, 계 등의 고급옷감을 전문적으로 생산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앞선 시기에 생산되던 베, 모시, 명주, 비단, 모직 등 천 종류에 따른 가짓수가 훨씬 많아지고 다채로워졌으며 질도 높아졌다. 특히 비단의 질이 매우 높아졌다. 개성 불일사 5층석탑 안에서 나온 비단과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고려비단 유물은 그 질이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 유물들을 분석한 것에 의하면 비단올이 매우 가늘고 실이 균일하며 천조직은 평조직이었다. 그리고 무늬 조직을 결합하는 데서 문직기와 자수직기의 원리가 적용되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비단장공인들은 매우 섬세하고 높은 수준의 직조기술을 가지고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여러 가지 비단옷감을 생산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이 이웃 나라는 물론 멀리 아라비아에까지 수출되어 ‘고려비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고려시대에는 베옷감생산도 발전하였다. 당시의 베에는 염색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 가는 것과 굵은 것, 폭이 좁은 것과 넓은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각종 베옷감 가운데서 푸른 색깔의 베인 청포는 주로 이속, 군인, 뱃사람들이 입는 옷감으로 이용되었고 그밖의 것들은 일반 주민들의 옷감으로나 화폐 대용으로 이용되었다.

고려시대의 옷감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의 하나는 모시였다. 고려시대에 생산된 모시옷감에는 백저포, 향저포, 홍저포, 흑저포 등이 있었다. 이런 옷감의 이름은 주로 모시의 색깔에 따라 붙여진 것이었다. 그 가운데서 유명한 것은 백저포(흰 모시)였다. 백저포는 생모시를 표백한 것으로서 당시 여름의 바지, 치마, 저고리는 물론 겉옷 등을 만드는 데 널리 이용되었다.

흰 모시는 당시 우리나라에 사절단으로 온 외국인들의 인상에 깊이 남을 정도로 질좋은 옷감으로 알려졌다. 12세기초에 우리나라에 왔다간 송나라의 사신이 “고려에서는 모시와 삼을 심으며 사람들이 포를 많이 입는다. 그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시라고 하는데 옥처럼 희다. 왕과 높은 관리들이 모두 이것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고 하였다. 또한 같은 시기의 송나라 역사책에도 고려에서 모시옷을 많이 입는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에 모시생산기술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직조할 때에 직접 무늬를 놓는 기술을 창안 도입한 것이었다. 이렇게 짠 모시를 문저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직조기술이었다. 1276년에 한 중이 가늘기가 매미날개와 같고 꽃무늬도 섞여 있는 흰 모시를 바쳤다고 한 기록은 문저포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급스런 모시였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것만 하여도 모시 종류는 10여 종이나 되며 그 질도 우수하여 다른 나라에 많이 수출되었다. 고려시대 옷감 생산에서 새로운 것은 또한 베와 모시를 섞어서 교직물을 짠 것이었다. 성질이 유사한 섬유를 섞어 짜는 기술이 창안 도입된 것은 옷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서 새로운 진전이었다. 고려시대 옷감 생산에서 가장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옷감인 무명을 생산한 것이었다.

14세기 중엽 원나라에 갔던 고려의 이름난 학자 문익점은 돌아오는 길에 몰래 목화씨를 붓대 속에 감추고 와서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듭한 후 끝내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목화를 가공하기 위한 토리개(씨앗)와 문래(소사차) 등이 새로 만들어지고 무명을 짜는 직기도 창안 제작됨으로써 무명생산기술이 급속히 보급되었다. 이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종류의 옷감이 태어났다. 목화와 무명의 생산은 우리 민족의 옷생활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베나 모시에 비하여 더 부드럽고 따스한 무명은 추위를 막는 데 효과적인 옷감이었으며 특히 목화 솜으로 솜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게 됨으로써 겨울철 옷을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민간에서 목화, 삼, 모시의 재배와 양잠업이 광범히 진행되고 관청전문직조업이 발전된 결과 질좋은 옷감이 많이 생산되었다. 조선시대에 생산된 옷감은 이전부터 있던 옷감들인 베, 견직물, 모시, 무명, 모직물 등이었으나 매 종류에 따르는 가짓수가 더 늘어나고 그 질도 개선되었다. 특히 고려 말기부터 새로 생산되기 시작한 목화와 무명이 실생활을 통하여 그 우월성이 확증되자 그 생산량은 다른 옷감들보다 몇배나 더 늘어났다. 그리하여 무명은 조선시대의 옷감에서 베와 함께 가장 주요한 옷감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옷감의 원료가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주로 무명옷과 베옷을 해입었다. 기후가 온화한 남쪽 지방에서는 주로 목화와 모시를 재배하여 무명 생산과 모시 생산을 특별히 많이 하였으며 기후가 찬 북쪽 지방에서는 삼을 재배하여 베 생산을 광범히 진행하였다. 그리고 뽕이 많이 나고 물이 좋은 곳에는 유명한 비단생산지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 옷감 종류에 따르는 이름난 생산지가 형성되었다.

베는 주로 함경도, 평안도, 황해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며 그 가운데서도 함경도 명천, 경성, 회령, 종성에서 생산된 가는 베는 그 질이 특별히 좋아서 ‘북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북포’의 보름새베는 발이 매우 가늘고 고왔으므로 18세기의 학자인 홍양호(1724~1802년)는 가는 베의 얇기가 매미의 날개와 같고 한 필의 부피는 한 줌에 쥘 수 있을 정도라고 하였다. 베는 이밖에 강원도 , 경상도 지방에서도 생산되었는데 경상도 지방에서 생산된 베는 ‘영포’라고 불렸으며 특히 안동지방에서 생산된 베는 고급베로 알려져 ‘안동포’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과거에 농촌에서 베천을 짜는 공정은 매우 복잡하였는데 그러한 공정에서 삼사미와 베짜기는 전적으로 여성들의 가내노동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그러나 힘겨운 삼사미는 혼자서 하지 않고 대체로 동네 여인들이 한데 모여서 하는 것이 하나의 풍속으로 되어 있었다. 삼사미와 베짜기에 대한 여러 가지 노래들이 창작되어 널리 불리게 되었다. 다음의 ‘삼사미 타령’도 바로 그런 노래의 하나이다.

동산 위에 밝은 달 보름달이 솟는데
동네방네 처녀들 삼사미 놀러나 가자
음음음 음음음
고비고비 풀어서 갈기갈기 찢어서
동지나 섣달 긴긴 밤에 삼고나 삼고 또 삼아보자
음음음 음음음
요새 삼은 아홉새 열두새 놓았다가
농속에 깊이 두었다가 그 어느 님께 드리려나
음음음 음음음

견직물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등 우리나라의 서북부 지방과 동북부 지방이 유명하였다. 특히 평안도의 영변·성천, 함경도의 금야·정평·고원·덕원·이원·홍원·북청·단천·길주·명천, 강원도의 철원, 황해도의 수안 등지에서 생산된 비단의 질이 높았다. 남쪽지방에서는 전라도의 나주, 경상도의 안동 등지에서 생산된 비단과 색명주가 우수하였다.

조선시대에 생산된 견직물로는 사(紗), 능(綾), 라(羅), 금(錦) 등 종전부터 생산되던 것 외에 새로 ‘단(緞)’이라는 비단이 첨가되었는데 옛기록들에 보이는 단의 이름은 거의 30가지에 이른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운문홍단, 운문단, 용문단, 대단, 소단, 장단, 운단, 채단, 사색대단, 법단, 금사단, 모본단, 설한단, 초단, 백조봉채금단, 별문오채단, 칠보문단, 운학문단, 수복문단, 운학룡봉문단, 공단 등을 들 수 있다. 단의 이 여러 가지 이름들은 주로 색깔과 무늬의 특징에 따라 붙인 것이었다.

무명은 초기에 주로 목화가 잘된 삼남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어 전국 각지에 보급되었다. 무명은 사시장철 어느 계절이나 입을 수 있는 옷감이었지만 특히 겨울철 옷감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그 생산 원가도 견직물보다 눅었으므로 대중용 옷감으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목화의 재배와 무명의 생산은 삼남지방에서부터 점차 중부지역에까지 확대되어 갔다. 무명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경상도와 전라도였다. 특히 전라도의 해남목, 강진목, 나주목이 유명하였으며 개성의 송도목도 질이 좋고 고운 것으로 알아주었다.

모시도 주로 삼남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모시는 베와 함께 여름철 옷감으로 적합하였으나 베와는 달리 원료가 주로 더운 지방에서만 생산되었으므로 그 생산량이 베보다 제한 되어 있었으며 값도 비쌌다. 그러므로 모시는 베처럼 널리 쓰이지 못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충청도의 임천, 한산, 서천, 남포, 비인, 정산, 홍산, 석성, 부여, 서산, 해미, 청양 등지가 이름난 모시생산지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산, 임천 지방의 모시가 질이 좋았다. 이 고장에서 생산된 모시는 가늘면서도 발이 고르고 탄탄한 맛이 있어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았으며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조선시대에 모직은 종전과 같이 많이 생산되지 못하였으므로 옷감으로 널리 쓰이지 않았다.
조선시대 옷감 생산을 전반적으로 볼 때 이전에 비하여 베, 모시, 비단 등의 생산이 더 늘어나고 그 질도 높아졌으며 이름난 옷감생산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새로운 옷감으로서 무명과 목화의 생산이 급속히 성장함으로써 우리나라 민족옷 발전의 물질적 조건이 이전 시기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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