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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원시시대, 특히 구석기시대의 기후조건은 지금과는 퍽 달랐다. 그러나 그 때에도 더울 때와 추울 때가 있었다. 그러므로 베짜기를 알기 이전의 원시주민들은 더울 때에는 풀이나 나뭇잎, 나무껍질 혹은 짐승의 가죽쪼가리 등으로 앞을 간단히 가리고 생활하였을 것이며 날씨가 찰 때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몸에 짐승의 기름을 바르거나 풀, 나무껍질, 짐승의 털가죽 등으로 몸을 가렸을 것이다.
지구상의 일부 지역에는 현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원시족’들이 있다. 이들의 생활모습을 통하여 먼 원시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옷차림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후 원시주민들은 점차 삼과 같은 식물의 질긴 껍질, 칡, 짐승의 힘줄 등으로 풀이나 나무껍질, 짐승의 털가죽 등을 간단히 잇거나 나래처럼 엮어서 몸에 걸치기도 하였으며 경험을 쌓아 나가는 과정에 예리한 나무막대기나 뼈송곳 등을 이용하여 나무껍질과 짐승의 털가죽 등에 구멍을 뚫고 질긴 풀줄기나 가는 나무줄기 혹은 짐승의 힘줄 같은 것으로 그것을 꿰매어 소박한 원시적인 ‘옷’을 지어 입게 되었다.
우리나라 원시시대의 유적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짐승의 뼈로 만들어진 송곳들은 바로 이러한 원시적인 ‘옷’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을 것이다. 원시주민들이 옷을 만드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진 것은 실과 바늘의 발견이었다. 실과 바늘은 옷감을 보다 손쉽게 꿰매어 옷을 더 잘 지을 수 있게 하였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초기의 유적들에서 베실과 함께 뼈바늘이 나온 사실로 보아 이미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우리 조상들은 베실과 뼈바늘로 옷을 이전 시기보다 더 잘 지었으리라 추정된다.
실과 바늘이 옷을 만드는 데 매우 편리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된 원시주민들은 실 생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신석기시대 중기에 와서는 실을 만드는 원시적인 도구인 가락고동을 창안 도입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실 생산량을 이전보다 훨씬 늘릴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 주민들은 실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북을 이용하여천을 짜는 기술을 창안하였으며 여러 가지 형식의 원시적 베틀로 베천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주민들은 늘어난 실 생산에 기초하여 두 오리, 세 오리로 꼰 베실도 생산하게 되었으며 베짜기도 더 광범히 진행하였다.
함경북도 회령 오동유적에서 나온 원시적인 ‘바디’인 뼈로 만든 씨실조이개와 강계시 공귀리유적에서 나온 ‘수직식 베틀’에 쓰인 추돌 등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전하여 준다. 이 시기의 유적인 무산 범의구석유적에서 나온 뼈바늘로 누빈 봇나무껍질은 그 솜씨가 마치 쇠바늘로 정교하게 누빈 것처럼 섬세한데 이것은 당시 옷짓는 솜씨가 이전 시기보다 현저히 발전하였음을 보여 준다. 이 시기 옷짓기에서는 단추도 이용되었다.★단추는 당시 치렛거리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기본 기능은 옷에서 개방된 부위를 여미어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또한 머리쓰개나 겉옷 모양의 옷도 있었다. 그것은 서포항유적에서 나온 흙인형들이 머리에 모자 같은 것을 쓰고 아랫도리가 넓게 퍼진 두루마기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 우리 선조들은 바느질도구를 알뜰히 쓰고 보관하는 좋은 풍습도 가지고 있었다. 서포항유적에서 새뼈로 만든 여러 개의 가는 바늘들이 섬세하게 선새김장식을 한 바늘통에 소중히 보관된 상태로 발굴된 것은 그러한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 원시주민들은 점차 장신구에도 상당한 관심을 두게 되었다.
원시시대의 치렛거리는 일정한 종교신앙적 목적에 따라 이용되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몸치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그리고 치렛거리가 옷차림을 돋보이게 하여 준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원시주민들은 신석기시대에 이미 조개껍질이나 짐승의 이빨과 뼈 등으로 팔찌나 목걸이, 귀걸이 등을 만들었으며 그후 점차 옥돌로 여러 가지 치렛거리를 만들어 몸치장에 이용하였다. 그리고 극히 드물기는 하였지만 남자들이 여러 개의 팔찌를 끼는 일도 있었다.
옥돌로 만든 치렛거리를 달거나 남자들이 여러 개의 팔찌를 끼는 현상은 그것이 단순히 몸치장으로만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내에서 점차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한 계층들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원시사회 초기에 자연에서 얻어진 풀이나 나뭇잎, 나무껍질, 짐승의 털가죽 등을 이용한 원시적인 ‘옷’을 입고 자연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창조적 활동을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점차 실을 만드는 도구와 바느질도구, 베짜는 도구 등을 창안하여 실만들기와 베짜기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생산된 실과 베천으로 일정한 형태를 갖춘 옷을 짓고 생활에 이용하게 되었으며 여러 가지 장신구 등도 만들어 ‘옷’차림을 다양하게 하였다.
원시시대에 생겨나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옷은 아직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었지만 점차 형성되어 갈 우리 민족의 고유한 옷차림풍습의 귀중한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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