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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식풍습 > 식생활관습과 식사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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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관습
식사예절
북한지역정보넷 식생활관습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고유한 식생활관습을 이룩하였다. 식생활관습은 식생활과정에서 굳어진 습관과 전통적으로 세워진 식생활질서이다. 습관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과정에 저절로 익혀지고 굳어진 버릇이고 질서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생활규범이다. 민족의 오랜 식생활과정에서 굳어진 습관과 질서는 매우 공고하고 사회적 관계나 경제제도가 달라져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민족마다 생산활동, 자연환경, 문화발전수준, 구미와 기호가 서로 다른 사정으로 식생활관습은 그 내용에서 제각기 자기의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은 한강토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수천년 동안 살아오는 과정에 형성발전된 것이므로 고유한 민족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유구한 역사적 과정에서 이룩된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의 주요 내용은 우선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과 김치를 기본 부식물로 한 것이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관습은 생업에서 낟알생산이 위주로 된 이후에 생긴 관습이다.

인류가 발생한 첫 시기 사람들의 주식물은 주로 자연환경과 생산조건에 따라 각이하였다. 산을 낀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은 과일이나 나무뿌리, 산채 같은 것을 주로 먹었으며 짐승이 많은 지대의 주민들은 짐승을 잡아먹고 살았다. 바다나 강을 낀 지대에서 살던 사람들은 주로 조개, 물고기를 잡아 그것을 주식으로 하면서 살았다. 신석기시대 이후 작물재배가 확대되고 낟알음식이 주식으로 되면서 낟알은 찧어서 밥, 죽을 만들 수도 있고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식이 낟알인 경우에도 무엇을 일상음식의 주식물로 하는가 하는 것은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빵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유럽사람들과는 달리 밥을 일상음식의 주식으로 하고 떡은 특별음식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식생활관습은 고대 중세기는 물론 근대 이후에도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밥을 주식으로 하는 관습은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식물에 따르는 부식물도 민족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먹은 부식물은 그 종류가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 기본 부식물은 국, 장, 김치 등이었다. 국, 장, 김치를 기본 부식물로 하였다는 것을 식생활에서 다른 반찬들은 밥상에 놓을 수도 놓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국, 장, 김치만은 음식구성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상시적인 부식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끼니음식상에서 국은 대접받는 대상에 따라 종류에서는 다를 수 있었지만 상시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기본 부식물이었다. 국을 기본 부식물로 하였던 만큼 그 조미료인 장은 끼니마다 상시적으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김치도 끼니마다 정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평상시는 물론 고기나 떡, 그밖의 특별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명절 때에도 시원한 김치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국, 장, 김치를 기본 부식물로 하는 식생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식생활관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생활관습의 주요 내용은 또한 온돌방에 앉아 밥상에 음식을 차려놓고 수저로 먹는 것이다. 우리 민족 돌방에 앉아서 밥상에다 음식을 차려놓고 온 가족이 함께 따끈한 음식을 먹었다. 고대유적에서 드러난 구들시설이나 발굴된 밥상의 크기가 좌식생활에 맞으며 고려, 조선에 이르러 온돌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된 사실들로 보아 온돌방에 밥상을 차려놓고 앉아서 먹는 우리 민족의 풍습이 이미 고대에 형성되고 그후 공고발전하여 온 전통적인 풍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음식물을 수저로 먹는 관습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습이다. 음식물을 숟가락으로 먹는 관습은 세계 여러 민족들의 식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그 이용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다. 숟가락은 용도상으로 보면 여러 음식을 떠먹는 데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민족은 주로 국만을 떠먹는데 이용한다.

우리 민족은 숟가락을 밥과 국 그리고 물기있는 반찬을 떠먹는데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의 원시유적에서 숟가락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러한 관습은 그 시원이 매우 오랜 것이었다. 중국사람들은 숟가락을 국을 떠먹는 데만 썼고 일본사람들은 8세기후 한때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떠먹기도 하였으나 그후 변화되어 밥을 젓가락으로 먹고 국만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관습화되었다.

음식물을 집어먹는 도구인 젓가락의 이용방법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양사람들은 빵을 손으로 집어먹고 반찬을 집어 먹는데서는 ‘포크’를 쓰지만 우리 민족은 젓가락으로 물기가 없는 반찬이나 떡을 집어먹는다. 중국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집어먹는다. 밥을 먹는데 숟가락을 쓰는가 젓가락을 쓰는가 하는 것은 밥을 담아먹는 관습과 관련되어 생겨났다. 중국사람이나 일본사람들은 밥을 큰 그릇에 담아놓고 각기 공기에 담아 손으로 들어 입 가까이에 대고 먹기 때문에 젓가락을 써도 불편한 점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사람마다 한끼분의 밥을 밥그릇에 담아 각기 상 위에 놓고 떠먹었으므로 밥알이 흘러 떨어질 수 있는 젓가락보다 숟가락이 더 편리하였던 것이다. 밥은 숟가락으로, 반찬을 젓가락으로 먹는 관습은 우리나라 만족음식의 구성과 상차림풍습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오랜 생활과정에 관습으로 굳어졌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의 주요 내용은 다음으로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루 먹는 끼니수는 노동생활과 그 과정에 소모된 영양을 보충하는데 맞게 정해지고 그것이 관습으로 굳어지지만 한편 빈부의 차이, 노동강도, 계절조건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된다. 세계 여러 민족들의 하루 먹는 끼니수를 역사적으로 보면 일정한 시간관념이 없이 음식감이 생기는 데 따라 불규칙적으로 먹기도 하고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하루 두끼 또는 세끼 먹기도 했다. 또한 끼니와 끼니 사이에 간식이나 중참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한 오랜 생활과정을 통하여 하루 먹는 끼니수를 불규칙적인 것으로부터 사람의 건강증진에서 가장 효과적인 하루 세끼 먹는 관습에로 넘어갔다.

인류가 발생한 첫시기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이 생기는 데 따라 불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씨족을 단위로 점차 한 곳에 자리잡고 작물재배를 주업으로 하고 짐승기르기도 적극 진행한 신석기시대 이후 우리 선조들은 식생활재료를 지난날보다 여유있게 생산하여 일정한 양을 저축보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하루의 일과생활조직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니면서 불규칙적으로 생활하던 때와는 달리 일정한 생활거처에서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일터에 나갔으며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함께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식생활이 오랜 기간 계속되는 과정에 아침. 저녁 또는 아침, 점심, 저녁 등 일정한 시간간격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던 것이다.

하루 세끼 먹는 식생활관습은 생기는 데 따라 먹던 불규칙적인 식생활에 비하여 인체, 특히 위의 부담을 덜어주며 소화에도 적당한 것으로서 사람들의 건강증진에 효과적이며 노동생활과 일과조직에도 적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하루 세끼 먹는 관습은 계급사회에 들어서면서 일반적인 식생활관습으로 계승 발전되었던 것이다.★

하루에 두 끼 또는 세 끼 먹는 경우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에 따르는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통치자들이나 부유한 자들은 여러 끼를 좋은 것으로 먹었으며 일반 백성들, 가난한 사람들은 한두 끼도 변변한 것을 먹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하루 세끼 먹었다는 기록자료는 고려, 조선 시대에도 여러 곳에 나타난다. 고려시대 평양부에서 대대로 살던 황수가 여러 자매들과 같이 모두가 한솥밥을 먹고 살았는데 하루 세끼 맛있는 반찬을 장만하여 먼저 부모에게 드리고 물러나와서 같이 먹었다고 하였으며, 조선시대 대부가 하루 세끼 밥을 먹었다고 한 것은 그 대표적 실례이다.

물론 우리 선조들은 낮시간이 짧은 겨울철에는 두끼 먹는 경우도 있었으며 힘든 일을 하거나 해가 긴 때에는 간식, 중참을 하여 세끼 이상 먹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식생활관습에서는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하루 세끼 먹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루 세끼 먹는데서도 아침과 저녁 식사를 중시하여 밥을 새로 짓고 국에 여러 가지 찬을 차려놓고 먹었다. 그러나 점심에는 가벼운 식사를 한다는 뜻의 전심이란 말에 맞게 아침에 남겨두었던 밤에다 간소하게 찬을 차려놓고 먹거나 국수 같은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따라서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식생활관습이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에서 주요한 것은 다음으로 음식감을 아껴쓰고 식생활을 깐지고 알뜰하게 한 것이다.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절약정신이 강한 것은 고구려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음식을 절약하였다는 『삼국지』의 기록을 통해서는 알 수 있다. 식량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한 것은 결혼식을 비롯한 대사를 간소하게 한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15세기 말 성현의 저술인 『용재총화』에 의하면 “옛날에는 … 혼인하는 저녁에 친척들이 모여서 상을 하나 차려놓고 술 석잔을 돌리는 것으로 행례를 끝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면서 깐지게 생활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이었다. 조선시대에 ‘주자가례’가 강조되면서 양반관료들의 관혼상제는 낭비와 허례허식이 극심하게 동반되는 속에서도 근로하는 백성들 속에서는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면서 깐지게 생활하는 전통적인 기풍이 발양되었다. 또한 식생활을 항상 깨끗하고 알뜰하게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한 것을 좋아하였으며 알뜰하게 생활해나가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우선 음식물을 만드는 장소인 부엌을 깨끗하게 꾸며놓고 여러 가지 부엌세간들을 장만하여 질서있게 차려놓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항상 윤기가 나게 닦았으며 식기류도 알뜰히 거두고 정성껏 다루어 깨뜨리지 않고 오래 쓰기에 힘썼다. 때문에 부엌세간을 잘 갖추고 그것들을 알뜰하게 정성들여 다루는 것을 우리나라 여성들의 중요한 품성의 하나로 일러왔다. 우리나라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에서는 생활이 곤란한 농민들까지도 그릇을 갖추어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깨끗하고 알뜰하게 살림살이를 해나가려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의 시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부엌에서 음식물을 만들 때에는 머릿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둘렀다. 고구려 안악2호무덤벽화의 시중드는 여자와 감신무덤벽화에 달린 옷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여자의 차림은 부엌일을 할 때 앞치마를 이용하는 관습이 여성의 전통적인 풍습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자료가 된다. 머릿수건을 쓰는 것은 일할 때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으며 부엌일을 하는데서 위생적으로도 좋은 것이었다. 앞치마를 두르는 것은 음식물을 만들거나 다룰 때 문화위생성을 보장하고 활동하는 데 편리할 뿐 아니라 보기에도 좋았다.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에서 주요한 것은 다음으로 음식물을 맛있고도 다양하게 조리하였다는 것이다. 음식물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 여성들에게 맡겨진 기본 임무인데로부터 그들은 가정의 주부로서 음식물을 맛있고도 다양하게 조리하기에 노력하였다. 우리나라 속담에 “한 가지 무를 가지고도 백가지 반찬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잘 조리하여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다는 뜻이다.

재능있는 우리 여성들은 주식물이나 부식물, 당과류나 음료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능한 식료원천을 모두 탐구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솜씨있게 만들었으며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도 맛이 다른 음식들을 다양하게 조리하여 식생활을 단조롭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우수한 조리법을 창안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끓이고 지지며 볶거나 튀김며 찜하거나 데치며 굽는 등의 조리법만이 아니라 장, 젓갈, 두부, 김치와 같이 삭히는 방법에 의한 음식법을 창조해냈으며 지방별로도 특색있는 민족음식들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음식조리를 잘하는 것은 지난날 여성들의 인품을 평가하는데서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되기까지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식생활관습은 온돌방에 앉아 소반에 음식을 차려놓고 수저로 식사하며 식생활을 다양하면서도 알뜰하게 하는 관습과 같은 것은 민족적 특성과 미풍양속이 잘 반영되어 있는 문명하고 전통적인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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