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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식풍습 > 상차림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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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지역정보넷 독상차림
독상은 한 사람이 먹을 음식을 한 상에 차리는 상차림이다. 우리나라의 첫 국가인 고조선후기 유적에서 후세의 독상과 비슷한 크기의 나무밥상이 여러점 드러난 것으로 보아 고대시대에 이미 독상차림풍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독상차림풍습은 삼국시대에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고구려고분벽화와 신라의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씨름무덤벽화에는 여자주인공 두 명이 앉아 각기 음식상을 받고 있는데 여기에는 음식그릇이 3개씩 놓여있다. 춤무덤벽화의 남자주인공이 받은 독상에는 5개의 음식그릇이 놓여있다. 독상차림에 관한 자료는 신라 경주98호무덤 발굴자료에도 있다. 여기에는 토기로 된 밥상 위에 음식그릇으로 인정되는 질그릇 6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밥그릇은 왼쪽, 국그릇은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유적, 유물 자료를 통하여 명백한 것은 삼국시대 독상에 놓이는 음식가짓수가 3개로부터 6개 정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독상차림풍습은 그후 고려와 조선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고려시대의 독상차림은 객관에서의 손님대접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손님대접은 직급에 따라 하는데 높은 급은 하루 세끼 독상에 걸상까지 치렀으며 직급이 낮은 수행원은 5명씩을 한조로 하여 겸상을 차렸다.

조선시대 독상차림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들과 그림자료들에서 더 구체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독상차림은 빈부와 관등급에 따라 심한 차이가 있었다. 독상은 존대하는 뜻으로 주로 가장이나 손님에게 차렸다. 밥상의 형태는 주로 4각, 8각 또는 둥근 것이었다. 밥상 위에 놓이는 음식그릇은 그 종류가 여러 가지였다. 밥그릇과 국그릇은 좀 크나 반찬그릇은 대부분 작았다. 김치나 찌개를 담는 보시기는 좀 크고 종지는 아주 작고 접시는 둥글넙적한 형이었다. 그릇에는 거의 다 뚜껑이 있었다.

독상을 차릴 때 밥그릇은 상의 왼쪽에, 국그릇은 오른쪽에, 그리고 간장, 초장, 고추장 종지들은 상 한 가운데에 놓고 그 뒤로 김치보시기, 왼편에는 된장찌개나 젓국찌개그릇, 그 오른편에는 나물접시, 깍두기 같은 것을 놓고 그밖에 더 놓을 부식물이 있으면 그 주변으로 질서있게 놓은 다음 숟가락과 젓가락을 앞면 오른쪽에 놓았다.

경우에 따라서 국과 간장, 김치만을 갖추어 상을 차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독상차림에서는 대체로 물기있는 음식을 담은 그릇은 오른손 가까이에 놓고 물기가 비교적 적은 마른 음식을 담은 그릇은 상 왼쪽에 놓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대접에 담은 숭늉을 들여왔다.

조선시대의 독상차림에 관한 생동한 모습은 19세기의 그림 ‘판이한 생활’(우진호 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그림의 아랫부분에는 네모난 소반에 밥그릇, 국그릇, 보시기, 접시, 양념종지가 놓여 있는데 한 남자가 숟가락을 막 쥐고 음식을 떠서 입에 넣고 있다. 윗부분에는 이미 밥상을 물리고 물그릇을 들고 마시는 모습이 생동하게 그려져 있다.

반상차림에는 3첩, 5첩, 7첩, 9첩 등 일정한 격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풍습이 있었다. 첩이란 접시를 가리키는데 접시에 담은 부식물의 가짓수에 따라 달리 불렀다. 세 가지 음식이 올랐을 때는 3첩반상, 다섯 가지 음식이면 5첩반상, 일곱가지면 7첩반상, 아홉가지면 9첩반상이라고 하였다. 반상에서 국과 김치, 양념장은 반드시 곁들어내는 음식이었으므로 반찬의 가짓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른 반찬, 장아찌, 젓갈류는 한상에 놓여도 1첩으로 쳤으며 찌개, 찜을 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반상차림풍습은 조선 초기에 예조에서 반상을 5첩이 넘지 못하게 하는 제안을 낸 적이 있고, 15세기 말~16세기 초에 나온 『수문쇄록』에 5첩반상기의 도해가 있는데 밥과 국 사발 이외에 접시 다섯 개가 그려져 있는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이미 고려시대에도 보급되어 있던 풍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상차림에서 첩을 3, 5, 7, 9 등 기수로 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고대이래로 믿어 온 음양설에 준하여 기수를 ‘좋고 길한’ 수로 간주하였기 때문인데 이것은 다 미신적인 것이었다.

반상차림에서는 양념장을 담은 종지를 반찬이 증가되는데 맞게 더 많이 놓았다. 가장 간단한 3첩반상일 때는 탕이나 찬에 간을 맞추어 들도록 간장을 담은 종지 한 개만 놓으며 5첩잔상이면 찬에 전이 더 첨가되므로 전의 맛을 돋우기 위한 초간장을 담은 종지를 보태어 두 개를 놓고 7첩이상이면 전외에 회가 첨가되는 것을 고려하여 초고추장을 담은 종지를 더 놓아 모두 3개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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