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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식풍습 > 식풍습의역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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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의 식생활풍습
고대의 식생활풍습
삼국시대 식생활 풍습
발해및통일신라식생활풍습
고려시대식생활풍습
조선시대 식생활풍습
근대의 식생활풍습
북한지역정보넷 삼국시대
우리나라 식생활풍습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하였다. 식생활의 발전 역사는 다양한 음식재료의 증대와 합리적인 이용, 음식가공기술의 발전, 음식가짓수의 양적 성장에서도 표현된다. 삼국시대의 음식재료는 대부분 원시시대와 고대부터 전해오는 것들이었다. 삼국시대에도 그 이전 시기와 같이 농업생산을 위주로 하면서 거기에서 얻어지는 알곡작물을 식생활에 이용하였다.

이 시기 주식 재료는 종래에 심고 가꾸어 오던 벼, 조, 피, 기장, 수수, 밀, 보리, 콩, 팥 등이었다. 그것은 고구려의 광개토왕비문에 고구려에서 해마다 오곡이 잘되었다고 하였고 조세로 좁쌀을 걷어들였다는 것과 신라와 백제에서 가물고 서리와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 농사에 피해를 입은 경우가 적지 않으며 벼를 비롯하여 오곡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명백히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부식 재료는 채소, 산나물, 고기, 물고기 등이었다.

삼국시대의 주요한 부식 재료는 채소였다. 우리 선조들은 신선한 채소가 사람들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식 재료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일찍부터 많은 채소를 식생활에 이용하였다. 그 가운데서 기록으로 알려진 것은 상추, 가지, 마늘, 아욱, 무 등이다. 자료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비류수에서 채소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그 위에 사람이 사는 줄 알고 찾아 올라갔다고 하였다.

상추는 고구려 때에 널리 재배된 채소였다. 기록에 의하면 수나라에서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채소 종자를 구하여 갔는데 그에 대하여 보상을 후하게 하였으므로 ‘천금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였다. 또한 기록에 고구려사람들이 다시마, 된장과 함께 무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고 하였다.

『본초연의』에 의하면 가지는 신라에서 나는 것인데 불그레한 빛과 약간 자색이 나며 형태는 달걀형으로서 길며 맛은 달다고 하였다. 형태적으로 서술된 내용을 보면 오늘날의 가지와 같다. 아욱은 읍루에서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고구려에도 아욱이 있었다는 내용과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구려와 읍루는 이웃해 있었고 기후풍토와 생활풍습 등 모든 것이 같았다. 삼국시대에는 산나물과 들나물도 부식 재료로 이용하였다.

삼국시대 음식재료의 다른 하나는 고기였다. 소, 말, 돼지, 닭, 오리, 개 등을 길렀으며 꿩, 멧돼지, 노루 등을 사냥하였다. 그러한 사실은 고구려고분벽화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악3호무덤 동쪽 곁칸의 육고간 그림에는 꿩, 돼지, 노루 등이 걸려 있으며 안악1호고분벽화의 서벽 사냥 그림에는 노루, 꿩이 그려져 있다. 또한 고구려고분벽화들에는 노루, 사슴을 비롯한 짐승들을 사냥하는 무사들이 묘사되어 있다. 돼지는 잔치에 보내기도 하고 제사에도 쓰였으며 돼지기름은 추위를 막는 데도 이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닭도 많이 길렀는데 흰닭, 꼬리가 긴 닭 등 그 종류가 많았다.★ 개는 예로부터 많이 기르던 것으로서 벽화에도 보인다. 심지어 좋은 개는 외국에까지 기념물로 나가는 예도 있었다.

삼국시대에도 물고기는 부식 재료로 널리 이용되었다. 『해동역사』에 전하는 삼국시대의 물고기를 보면 새우, 조기, 가자미, 숭어, 붕어, 송어, 웅어 등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동해에서 많이 나는 가자미, 큰새우 등과 서해에서 많이 나는 조기, 복어 등은 삼국시대 이전에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졌으므로 삼국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이러한 물고기를 즐겨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때 동해사람 고주리가 고래의 눈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래고기도 먹었을 것이고 설화기사에 잉어를 기른 이야기도 있으니 고구려에서 큰 바다짐승과 함께 민물고기를 식료원천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세 나라의 산과 들에서는 복숭아, 자두, 배와 밤이 일찍부터 재배되어 식생활에 이용되었다. 복숭아, 자두, 배, 밤, 잣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음력 10월에 복숭아와 자두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하며 고구려의 수도 평양에서 546년에 배나무가지가 서로 어울려 붙은 것이 있었다고 하였다. 또 백제에 큰 밤이 나는데 크기가 배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신라장적』에는 잣·호두, 『사성본초』에는 잣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웃나라의 기록에는 껍질을 까서 먹는 우리나라의 잣이 매우 향기롭고 맛있다고 하였다. 밤이나 잣 외에도 호두, 산딸기 등 산과일이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나 전하는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의 특산물인 인삼도 이미 삼국시대에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삼국시대에 식생활재료가 이전 시기보다 더 다양하게 발전한 것은 당시의 생산력 발전과 관련되어 있다. 세 나라는 모두 고대국가로서 농업, 축산업, 어업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대내외 상업이 발전하여 식품의 교역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이미 시전, 장, 행상이 있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상호 교류가 진행되었다. 고구려시대 행상들은 벌에서 생산되는 알곡과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소금, 수산물을 산간지대에서 나는 털가죽, 약재, 목재 등과 교역하였다. 신라에서는 490년에 처음으로 수도에 시가(시전)를 열어 사방의 물화들이 유통되게 하였으며 그것을 관할하는 관청으로 동시전, 서시전, 남시전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상업을 통한 상호 교류는 다종다양한 식품생산을 촉진시켰으며 식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게 하였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에 자연을 정복하고 사회를 개조하는 투쟁을 통하여 우리 민족은 많은 음식물 재료들을 획득하였고 그리하여 음식물 종류를 늘리고 그 가공방법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서 큰 전진을 이룩하였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우리 민족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조리법이 이전 시기와는 비할 바 없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의 주식은 역시 밥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어느 지역에서나 흰쌀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알곡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흰쌀밥, 오곡밥, 찰밥, 잡곡밥 등 여러 가지 밥을 지어 먹었다. 주식에는 밥 외에 여러 가지 떡이 있었다. 삼국시대의 부식으로는 국, 고기요리, 회, 젓갈과 각종 물고기요리, 나물요리, 상추를 비롯한 채소가 있었다.

삼국시대에 주식과 부식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요리법이 발전함에 따라 조미료와 음료도 함께 발전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술의 종류도 여러 가지였고 그 양조기술도 높았다. 조미료로는 마늘, 소금, 기름, 꿀, 간장, 된장 등이 있었다. 꿀이 있었다는 것은 7세기에 백제 왕자가 벌집 4장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서 번식시키려고 노력하였다는 자료를 통하여 알 수 있으며, 기름은 고급스런 참기름에 대한 자료가 『삼국유사』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쓰였음이 확실하다. 그리하여 삼국시대에는 고추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조미료가 음식조리에 쓰였다. 조미료가 일찍부터 발전하였으므로 그에 따라 음식조리기술도 높은 수준에 있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창조적인 노력으로 삼국시대에 이미 후세에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주식과 부식, 음료와 조미료들을 갖춤으로써 식생활을 여러 모로 발전시켰다.

삼국시대 이후에 새로 생긴 음식물도 많으나 기본적인 민족음식은 이미 이 시기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밥과 떡, 간장, 된장, 국, 회와 젓갈들이 식생활에 널리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의 식생활은 후세의 식생활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한 핏줄을 이어왔기 때문에 조상 전래의 민족음식을 이어받으며 발전시켜 왔음을 보여 준다.

삼국시대에는 음식이 다양하게 발전한 것과 함께 식생활도구는 그 이전 시기보다 상당히 개선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경질토기와 도금한 식기들, 심지어 순금제 식기들이 생산되었는데 질이 좋아 외국에까지 널리 소문났다. 『수신기』에 고구려의 ‘맥반’은 중국에서도 일컬어졌다고 하였으며, 『당서』에는 고구려의 변두(과일 또는 포를 담는 그릇), 보궤(쌀 같은 것을 담는 그릇), 뇌선(놋으로 만든 술그릇) 등 여러 가지 용도에 쓰이는 그릇들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서는 “식기로는 버들가지를 엮은 것과 구리그릇, 질그릇을 썼다”고 하였다.★

발굴된 삼국시대의 식생활도구를 보면 그 종류가 다양하다. 당시 우리의 선조들은 화식 도구로서 솥과 가마·시루를, 식기류로는 숟가락·젓가락·바리·대접·배뚜리·보시기·접시·굽다리 접시·주전자·잔·장수배·소반을, 용기로는 독·동이·버치·구유·자배기·나팔병·단지·항아리·쟁반·장군 등을 썼다.

삼국시대 식생활풍습의 발전은 고구려의 주방, 육고, 우물, 디딜방아, 상차림과 관련된 자료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안악3호무덤의 부엌칸 그림에는 부엌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부뚜막에서 음식을 끓이며 그 곁칸에서는 장방형의 밥상 위에 식기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모습이 생동감있게 보인다. 이것은 당시 부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후세의 고려나 조선시대 부엌과 그 형태와 이용 방법이 같아 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고구려의 고기창고는 이 시기 고기보관 관리수준의 일단을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유적으로 남아 있는 신라의 석빙고와 “여름이면 음식을 얼음 위에 놓아 먹었다”는 옛기록과 관련시켜 볼 때 고기를 부패 변질시키지 않고 잘 보관하기 위한 냉동저장법이 삼국시대에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용두레우물, 디딜방아 등은 당시의 물긷는 풍습과 낟알찧는 풍습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국시대의 상차림풍습은 고분벽화를 통하여 그 내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안악3호고분벽화 부엌 그림에는 양쪽에 다리가 2개씩 있는 상 위에다 포갠 그릇을 많이 올려 놓은 것이 있다. 이 밥상은 그 형태가 장방형으로 생겨 겸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씨름무덤 벽화에는 여인들 앞에 자그마한 상을 하나씩 놓은 것이 있다. 이 그림들은 당시의 상차림에서는 독상을 차리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음을 보여 준다. 춤무덤 벽화에는 두 명의 남자가 의자에 마주 앉아 있는데 한 사람 앞에 상이 3개씩 놓여 있다. 이 상은 네다리상인데 상 위에 그릇을 4개 정도 올려 놓았다. 그리고 옆상에는 큰 그릇에 무엇을 가득 담아 놓은 것이 놓여 있다. 또 그 옆의 좀 떨어진 곳에는 세다리상 위에 뚜껑있는 그릇이 놓여 있다. 상을 크게 차릴 때에는 이 무덤의 그림에 있는 것과 같이 한 사람 앞에 작은 상을 여러 개씩 놓았던 것이다.

상차림에 관한 자료는 옛기록과 유물자료에서도 나타난다. 『삼국유사』에는 한 귀족이 손님을 맞이하여 50여 가지의 음식을 차렸다는 내용이 전하며, 신라 경주 98호 무덤에서는 토기로 된 둥근 밥상 위에 식기로 보이는 질그릇 6개가 놓여 있었다. 위에서 본 몇 가지 자료를 통하여 삼국시대에는 독상, 겸상, 곁상, 술상, 다과상, 연회상 차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사람들의 식생활에서는 음식을 절약하고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는 미풍이 높이 발양되었다. 역사기록에 고구려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음식을 절약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습은 한민족이 옛부터 지켜오는 것이다. 일부 왕족과 귀족들은 농민들이 힘들여 가꾼 곡식을 마구 낭비하면서 허례허식을 일삼았지만 백성들은 없는 살림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하여 생활을 알뜰하게 하였다. 이것이 생활화되어 모든 것을 아끼고 절약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삼국시대에는 비록 어려운 생활형편에서도 부모에게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귀한 음식이 생기면 이웃들과 다정하게 나누어 먹는 미풍이 발양되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 민족은 오랜 옛날부터 일상 끼니 때는 물론 좋은 음식이 생기면 부모와 웃어른에게 먼저 대접하였으며 그들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식사를 하는 것을 예절로, 풍습으로 삼아왔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음식과 식기류, 식생활의 발전 면모를 통하여 우리 민족의 식생활풍습은 삼국시대에 기본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삼국시대에 이미 여러 가지 곡류, 채소류, 고기류, 물고기류 등 우리 민족의 다양한 음식재료들이 거의 다 식생활에 이용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우리 민족의 음식에는 기본 주식이 다 갖추어져 있었으며 부식도 주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그러므로 그후 시기부터는 한두 가지씩의 새로운 음식들이 보충되어 갔을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삼국시대에는 식생활도구도 화식기류, 식기류, 저장용기류 등으로 더욱 다종다양하게 발전되어 후세에 쓰이는 식생활도구들이 이 시기에 거의 다 갖추어졌다. 그 가운데서도 뚜껑있는 식기들이 새롭게 많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더운 음식을 먹고 보관도 위생적으로 해야 할 필요에서 창안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상차림에서도 고대에 비하여 독상, 곁상, 겸상, 술상, 다과상, 교자상 등 그 종류가 다양하게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고유한 민족적 상차림방식의 면모를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의 민족적 식생활풍습은 삼국시대에 한층 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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