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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문화관 > 민속무용 > 민속무용의 역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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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민속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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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민속무용은 해마다 진행한 민속행사와의 연관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미 원시시대로부터 춤과 노래를 즐겼던 우리 선조들은 고대에 이르러 자기들의 근면한 노동생활과 민속행사를 통하여 민속가무를 더한층 발전시켜 나갔다.★
고대에는 민속가무와 함께 농악무도 발전하였다. 고대사람들이 연중행사로 진행한 민속가무놀이는 하나의 생활관습으로 굳어지게 되었는데 그 일부는 농악무의 형태였다. 특히 고대 진국사람들이 5월과 10월에 진행한 민속행사때 춘 춤은 북, 꽹가리와 같은 타악기도 이용한 농악무의 형태였다. 그것은 우선 당시의 기록에 “춤은 수십명이 함께 일어서서 서로 뒤따르면서 땅을 구르고 추는데 손발의 움직임이 잘 조화되었다. 그 절주는 ‘탁무’와 비슷하였다”고 한 것으로써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탁무’는 무용수들이 손에 ‘탁’(큰 방울)을 쥐고 추는 춤 또는 무곡을 말한다. 고대 진국사람들이 추는 춤이 손발의 움직임이 잘 조화되어 탁무와 같은 절주(節奏 ; 음악곡조의 꺾이는 마디)로 되어 있었다고 한 것은 그것이 율동적인 농악무의 형태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고대에는 전투생활을 반영한 민속무용인 ‘창춤’도 있었다. 기원전 2000년기 말에 지었다는 『주례』의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의 매사(?師)라는 관리는 ‘매악(?樂)’을 주관하였는데 궁중제사와 연회때 사 1명과 무용수 16명을 거느리고 ‘동이지무’를 추도록 하였으며 ‘매악’은 16명의 춤꾼과 이에 따르는 40명의 인원이 긴창을 휘두르면서 춤추는 군무였다고 하였다. 이 자료를 통하여 고대 조선사람들이 창조한 민속가무 ‘창춤’은 이웃나라에 전해져서 ‘동이지무’, ‘매악’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전문적인 춤꾼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에 창조된 민속무용에는 이밖에도 고조선사람들이 춘 ‘호랑이춤’과 진국사람들이 즐겨 춘 ‘거북이춤’이 있었다.
『삼국지』에 고조선사람들은 “호랑이를 신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호랑이 제사 때 추어진 춤이 바로 탈춤인 ‘호랑이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후세의 북청사자놀이에 나오는 호랑이탈은 바로 고대시대의 ‘호랑이춤’에 나오는 호랑이탈에 연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고대의 ‘거북이춤’은 진국 유민들인 가야 사람들이 수로왕을 추대할 때 구지봉에 올라가 흙을 한줌씩 쥐고 ‘영신가’(구지가)를 부르면서 즐겨 춘 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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