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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문화관 > 민속음악 > 민속음악의 역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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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음악의 발생발전
고대의 민속음악
근대의 민속음악
북한지역정보넷 고대의 민속음악
우리나라 고대의 민속음악은 민속가요, 민족기악, 민속가무, 농악 등 여러 가지 음악예술형태로 분화되어 새롭게 발전하였다. 고대의 민속가요로서 대표적인 것으로 고조선의 ‘공후인’과 진국의 ‘영신가’, ‘훤호가’를 들 수 있다.

‘공후인’은 고조선의 뱃사공인 곽리자고의 아내이며 민간의 여류음악가인 여옥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재현하여 지은 노래로서 당시 억압받고 천대받던 사람들의 생활처지와 내면세계를 강렬한 정서로 표현한 슬프고도 애절한 노래이다.★

‘영신가’는 ‘구지가’(거북이노래)라고도 하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대 진국유민들인 가야사람들이 구지봉에 올라가 수로왕을 맞이할 때 흙을 쥐고 춤추면서 집단적으로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훤호가’는 진국사람들이 굵은 밧줄과 목도채를 이용하여 성을 쌓는데 필요한 돌과 흙을 나르면서 부르던 노동요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축성공사를 비롯하여 국가적인 부역에 동원된 진국사람들의 고된 노동속에서 창조되고 불려진 구전민요로서 후세의 ‘목도소리’와 같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고조선, 진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여사람들 속에서도 민요가 창작 보급되었다. 지금까지 전하는 부여의 민요유산은 없으나 옛 문헌기록들에 부여사람들은 “밤낮 노인, 어린이 할 것없이 다 노래부르기를 좋아하여 온종일 노래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 부여사람들 속에서 창작보급 된 민요들도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고대에 이미 공후를 비롯하여 해금, 슬, 관목(도피피리), 뿔나팔, 북, 소북, 꽹과리, 팔수형방울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악기를 만들어 썼다. 옛 문헌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사람들은 일찍부터 소공후, 수공후, 와공후를 만들어썼으며 해금은 우리나라에서는 ‘계금’이라고 불렀고, 고대 중국사람들은 고조선악기라는 뜻에서 ‘호(胡)’의 금, 즉 ‘호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슬은 고대 진국사람들이 만들어 쓴 현악기로서 ‘호슬’이라고도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악기의 하나인 가야금의 전신악기였다. 관목, 북, 소북은 고조선, 부여 사람들이 만들어 쓴 관악기, 타악기였다. 외국문헌기록에 의하면 관목은 동쪽의 민족들(즉 고조선, 부여 등)이 “복숭아나무껍질을 말아서 만든 악기인데 피리와 비슷하다”고 하였으며 북도 역시 그들이 만든 악기인데 “채로 치는 것을 북(고)이라 하고 손으로 흔드는 것을 소북(도)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고대에 민속음악의 한 형태로서 민속가무와 농악이 새롭게 발전하였다. 고조선 사람들은 매해 10월 한해농사를 끝낸 기쁨에 넘쳐 한데 모여 하늘제사를 지내고 노래 부르고 춤추었으며 부여사람들 역시 한해농사를 끝낸 12월에 음식을 차려놓고 하늘제사를 지낸 다음 노래부르고 춤을 추면서 하루종일 즐기었다. 그리고 고대 진국사람들은 해마다 씨뿌리기와 가을걷이가 끝난 5월과 10월에 ‘귀신’제사를 지내고 노래부르며 춤추었는데 이러한 가무놀이는 그들 속에서 하나의 풍속으로 굳어져있었다. 고대사람들이 농경제천의식 때 벌인 이러한 민속가무놀이를 고조선에서는 ‘무천(舞天)’, 부여에서는 ‘영고(迎鼓)’라고 하였다.

고대에 민속가무놀이가 성행함에 따라 농악도 발전하였다. 고대조선사람들이 해마다 민속행사로 진행한 농경제천의식은 요사스러운 잡귀신을 몰아내고 경사스럽게 한다는 ‘벽사진경(?邪進慶)’의 신앙적 관념과 ‘천신’(하늘신)에 대한 숭배사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때 벌린 가무놀이는 주로 농악형태의 가무예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례로 진국사람들은 해마다 씨뿌리기가 끝나면 5월에 귀신제사를 지내고 수십명이 함께 일어서서 서로 뒤따르면서 땅을 구르고 춤을 추었는데 손발의 움직임이 잘 조화되었다고 한다. 춤동작이 조화로왔다는 것은 북, 꽹과리를 가지고 장단을 쳐주고 가락을 맞추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그 춤이 농악형태의 가무였다는 것을 확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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