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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놀이는 탈놀이의 한가지로서 사자탈 안에 흔히 두 사람이 들어서서 보조를 맞추면서 사자의 춤과 동작을 보여주는 민속가무놀이이다. 사자와 관련된 기사는 삼국시대 기록들에 보인다. 『삼국유사』,『삼국사기』에 박이종과 이사부가 512년(지증왕 13년)에 각각 우산국 (울릉도)을 공격하기 위하여 허수아비사자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가서 섬사람들을 위협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통일신라말기의 문인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에 산예가 있는데 그것은 사자탈놀이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시는 탈사자가 머리를 흔들거리며 꼬리를 치는 장면과 사람이 부리는 대로 잘 움직이는 장면 등을 보고 읊은 것이다. 머리를 흔들거리며 꼬리를 슬렁슬렁 젓는 것은 예로부터 전하여오는 사자탈놀이의 특기였다.
우리나라에서 벌써 6세기에 나무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퍽 이른 시기부터 사자를 알았으며 동시에 사자탈놀이도 창안보급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자놀이가 다른 지방들에서는 탈놀이의 막간에 등장하나 북청지방에서는 사자놀이가 독립적인 주제로 되어 상연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자놀이의 기본은 북청사자놀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청사자놀이는 북청읍을 중심으로 한 여러 마을들에서 하였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밤에 관원놀이와 함께 사자놀이를 크게 벌리곤 하였다.
사자놀이에 나오는 반주악기는 흔히 피리 4, 퉁소 4, 꽹매기 1, 징 1, 새납 1, 소고기 1, 큰북 1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주요한 것은 숨쉴사이 없이 ‘사자닐리리’를 부는 퉁소와 피리, 피리장단을 맞추는 큰북이었다. 사자놀이에 등장하는 것은 사자외에 꼭쇠, 양반, 중, 점쟁이, 의생, 굴중(상모)들리는 사람, 소고를 든 거사(2명), 무동 등이었다.
사자놀이에서 악대는 3장으로 편곡된 사자닐리리를 기본으로 연주하였다. 사자닐리리의 첫장은 심산유곡에서 사자가 잠들어 있는 것을 형상하였고 중간장은 성낸 사자의 으르릉대는 소리와도 같이 씩씩한 박자로 격동적인 선율을 연주하였다. 마지막 장에서는 부정을 타승한 승리자의 위엄이 그윽한 선율로 형상하였다. 북청사자놀이는 직접 농민대중이 창작하고 전승하면서 자기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공연하던 민속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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