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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두 사람이 각기 흰 바둑돌과 검은 바둑돌을 나누어 가지고 그것을 바둑판의 줄금교차점에 한 개씩 놓아가며 차지한 밭의 넓이로써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바둑은 이미 삼국시대의 기록에도 많이 보이는 놀이다. 당시 바둑을 ‘위기’, ‘혁기’라고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도 바둑에 대한 역사기록은 적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13세기 중엽에 곽희분, 조정통 등이 원(몽골)나라에 바둑원정까지 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고려시대의 바둑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에서는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국수(國手)라고 하였다.
바둑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많이 놀았다. 바둑을 두기 위해서는 바둑판과 바둑돌이 있어야 한다. 바둑판은 예로부터 오동나무로 흔히 만들었다. 그것은 오동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가볍기도 하고 바둑돌을 놓는 감촉과 울림소리가 좋기 때문이었다. 바둑판은 50cm 가량 되는 정사각형의 두터운 오동나무판을 높이 40~50cm 되는 네모난 통 위에 붙여서 만들었다. 잘 만든 바둑판은 통 안에 철사를 늘여 바둑돌을 놓을 때 치르릉 하고 울리게 하여 흥취를 돋우도록 하였다.
바둑판 위에는 같은 간격을 두고 가로세로 각각 19줄의 먹선을 그어 교차점이 361개가 되게 하였다. 줄의 교차점을 노라고 하였다. 백제로부터 왜땅으로 건너갔다고 하는 바둑판과 바둑돌이 현재 일본 동대사에 보존되어있는데 그 판은 먹선이 17줄로 되어 있었다. 이 사실로 보아 삼국시대 바둑판의 줄은 17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둑돌은 둥글납작하며 그 직경은 약 2cm이고 중심부의 두께는 0.5cm쯤 된다. 흰 바둑돌은 큰 조개껍질이나 흰돌을 둥글게 원판형으로 갈아서 만들며 검은 바둑돌은 강가의 검은 돌을 골라서 잘 갈아 썼다.
바둑판과 바둑돌이 마련되면 바둑을 놀 수 있다. 먼저 누가 검은 돌을 쓰고 흰 돌을 쓰는가를 정하였는데 그것은 두 가지 경우가 있었다. 그 하나는 잘 두는 상수가 흰돌을 쥐고 잘못 두는 하수가 검은 돌을 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연고자백’이라고 하여 나이가 위인 사람이 흰 돌을 쓰는 것이었다. 여기서 흔히는 두 번째 경우를 많이 적용하였다. 윗사람을 존경하는 우리 민족의 마음은 이처럼 놀이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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