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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타기놀이는 말을 타고 노는 것으로서 말 타고 달리기와 말 위에서 재주부리기 등을 하면서 말 타는 재주를 익히는 놀이다. 말타기는 일찍이 사람들이 말을 길들이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나 놀이로서 말타기는 고대시대부터 시작 되었으리라고 보아진다.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에서 말타기를 즐겨하였다. 수많은 고구려무덤 벽화들에는 말 타고 달리는 모습, 말 타고 사냥하는 장면, 말 타고 활쏘기, 창쓰기 하는 장면 등 말타기와 관련한 그림이 생동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구려인들이 일상생활과 사냥, 전투에서 말을 널리 이용하였으며 말타기를 잘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고구려무덤 벽화들에는 말 타고 재주를 부리는 그림이 많다. 이것은 말곡예라고 말할 수 있다. 말곡예에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말타기를 하는 것과 소도구를 다루면서 말타기를 하는 것이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면서 말타기재주를 부리는 모양은 팔청리무덤(5세기)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소도구를 다루면서 말타기를 하는 것은 약수리무덤 벽화의 행렬도에도 나타나 있다. 그림에는 한사람이 달리는 말 위에서 갈고리와 같은 어떤 소도구를 공중에 던져 올리고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무슨 동작인지 모르겠으나 말 타고 기교를 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고려시대에 말타기가 앞선 시기보다 더욱 발전하였는데 그 모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말타기에서도 말 타고 달리기가 기본이었으나 동시에 말 타고 재주부리기도 많이 하였다. 이 시기 기마술의 발전된 모습은 우선 말을 타고 말 위에서 여러 가지 재주를 부르는 ‘농마희’가 성행된 것과 다음은 장애물을 극복하는 말타기가 진행된 것 등을 통하여 엿볼 수 있다. 12세기 중엽에 서경의 부벽루에서 의종이 신기군의 농마희를 보고 그들에게 백금 두근을 상으로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말타기에서 주목되는 새로운 점은 여자들도 말타기를 한 것이다. 12세기 초엽에 당시의 왕이 서경에 갔다가 개경으로 돌아올 때 군신들은 그를 성대히 맞이하기 위하여 저마다 신기하고 사치한 것을 보여주기에 힘썼다. 이때에 부녀자들을 시켜 말을 타고 달리면서 공을 치게 하였다. 부녀자들이 말을 탈 뿐 아니라 격구까지 하였다는 것은 여자들의 기마술이 상당한 높이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설사 말 타고 공을 치는 것이 왕을 환영하기 위한 의례적인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기마술이 일정한 수준에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조선 전반기에는 말달리기가 성하였다면 후반기에는 주로 마상재가 유행되었다. 조선 전반기에는 말타기의 기본 내용과 형식은 대체로 앞선 시기의 것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다. 조선 전반기에도 고려시대와 같이 농마희를 계승하여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동작을 하였다. 1595년에는 어린이들의 마상재를 시험하고 뽑힌 아이에게 상을 준 일이 있었다. 이것은 어린이들도 말을 잘 탔으며 어린이들 가운데는 마상재를 잘하는 아이도 있었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조선 후반기에는 마상재가 가일층 발전하였다. 마상재의 방법에 대하여 『무예도보통지』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마상재에는 한 마리의 말을 타고 하는 것과 두 마리의 말을 타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각각 6가지 혹은 8가지의 기본동작으로 수행되었다.★
조선시대 발전한 마상재는 일본에 전수되어 일본의 기마술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635년에 일본정부(에도막부)에서는 우리 나라 마상재 선수를 수십명 보내줄 것을 간청하여왔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마상재를 잘하는 사람들을 일본에 가는 사절단에 따라 보내였다. 그들은 쓰시마(대마도)에서 출연하여 그곳 사람들을 경탄시켰으며 에도(도꾜)에 가서는 대장군이하 관료들과 그곳 주민들 앞에서 출연하여 경탄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당시 사이또라는 일본인은 조선의 마상재기술에 감탄한 나머지 이것을 모방하여 ‘대평본류’(오오쏘보혼류)라는 승마기예의 유파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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