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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쓰기는 창을 들고 찌르거나 던져서 대상물을 소멸하는 것을 익히는 놀이다. 창은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이 다루어온 무기였다. 창은 삼국시대 군사들의 중요한 전투무기였다.
창끝에는 활촉의 경우와 같이 뾰족창끝과 넙적창끝이 있었으며 그밖에 두가닥창끝도 있었다. 창대에는 짧은것과 긴 것 두 가지가 있었다. 그 가운데서 짧은창은 맞서 겨룰 때 썼으며 긴창은 주로 말을 타고 겨룰 때에 썼다. 신라무덤에서 나온 창의 길이는 약 3m였다. 고구려무덤벽화에 그려져 있는 말탄 사람이 쥔 긴창의 길이도 그림의 크기로 보아 대체로 그것과 비슷하였을 것이다. 이밖에 용도와 형태가 다른 창이 있었다. 창이라면 찌르는데 쓰는 무기이나 걸어 당기며 찌르는데 쓰이는 두 가지 용도를 겸한 갈고리창도 있었다.
고구려의 갈고리창은 세 가닥으로 되어 있다. 신라의 갈고리창은 가시가 삐죽삐죽 나오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시 돋힌 창이라고 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걸어 당기거나 찌르는데 썼다. 백제의 갈고리창은 아직 유물로서 알려진 것이 없으나 『삼국사기』에 백제군을 쳐나가던 신라군이 힘이 진하여 퇴각할 때 백제군의 매복병이 갑자기 뛰어나와 대열의 뒤에 섰던 신라장수를 걸어서 끌어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나라에도 갈고리창이나 가시 돋힌 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들에 여러 가지 용도의 다양한 창들과 창쓰기 기교, 경기조직, 판정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창쓰기 훈련이나 경기에 쓰는 기재로는 창과 방패, 허수아비가 있었다. 허수아비는 짚으로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 그것을 찌르게 한 것이었다. 목표물로 허수아비를 세우고 창찌르는 연습을 한 것은 15세기 때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허수아비를 세우지 않고 가짜 창이나 창 끝에 천 같은 것으로 싼 것을 가지고 두 사람이 맞서서 찌르는 방법으로 하였다. 연습을 하는 데는 가짜창을 가지고 하거나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하는 등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실지 경기에서는 15세기 이후에도 두 사람이 맞서서 하는 방법이 계속 존재하였다.
창쓰기에는 창과 함께 방패가 있어야 하였다. 창수는 반드시 창과 방패를 들어야 제대로 무장을 갖춘 것이었다. 방패를 ‘순’이라고 하였는데 순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었다. 그 하나는 긴 방패(장방패)로서 길이가 5자 6치(약 1.7m)이고 너비는 2자 2치(65cm)의 타원형으로 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둥근 방패(원방패)로서 직경이 3자 (약 90cm)인 원형으로 된 것이었다. 방패의 체는 널판자로 하고 둘레는 쪼개지거나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쇠판을 둘러쳤으며 방패의 앞면에는 다섯가지 색으로 짐승의 대가리를 그렸다. 그 색에는 붉은것, 푸른것, 흰 것이 있었다. 이렇게 만든 것이 완전한 격식을 갖춘 방패이고 일반 군졸들이 쓰는 방패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창쓰기에는 칼을 가진 사람과 창을 든 사람이 맞서서 겨루는 방법과 두 사람이 가창을 가지고 서로 맞서서 찌르는 방법, 허수아비를 세우고 찌르는 방법 등이 있었다. 또한 말 타고 하는 창쓰기와 달려나가면서 창을 쓰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기본은 말 타고 하는 창쓰기였다. 창쓰기에서 기본수단인 창에는 갈고리창(모), 외가닥창(과), 세가닥창(극) 등이 있었다. 이러한 창은 고구려의 무덤벽화를 통하여 이미 알려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긴창의 날끝은 날카롭고 그 길이는 1자 5치(약 45cm)이며 나무자루의 길이는 10자(약 3m)였다. 자루에는 붉은 칠을 한 것과 검은 칠을 한 것이 있었다.
창쓰기는 길이 약 3.5m되는 긴창을 가지고 하였는데 실지 전투에서 쓰던 창과 같았다. 후에 창의 길이는 더욱 길어져 15자 5치(약 4.7m)로 되었었다. 이 창의 크기는 조선 후반기까지 그대로 계승되었다. 18세기 중엽에도 창의 길이는 역시 15자 5치였으며 창의 무게는 30근(약 18kg)이었다. 이와 같이 창의 크기와 무게는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짧고 가벼운 것이었으나 규정이 완성된 때에 이르러서는 보다 길고 무거운 것으로 되었다.
창쓰기경기에서의 채점은 찌르기에서의 명중률과 동작의 속도, 정확성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정하였다. 창쓰기경기에서의 평가방법은 창수 선발을 위한 국가적인 시험규정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창쓰기를 잘 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에서는 허수아비 찌르기를 두 차례 진행하여 자세가 좋고 허수아비 표적 여섯을 모두 면바로 찌른자를 1등으로 쳤다. 다음은 다섯을 면바로 찌른자를 2등으로, 넷을 면바로 찌른자를 3등으로 평가하였다. 성적이 우수한 창수에게는 해당한 상을 주었다.
창쓰기경기에서 다른 채점방법으로서는 한차례씩 창쓰기를 한 다음 그때마다 한 개 허수아비를 명중시키면 한 점씩 주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고정된 규정에서는 말 타고 하는 창쓰기에서 한 개 허수아비를 명중시키면서 동작을 바로 한 사람에게는 매번 5점을 주는 방법으로 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 창쓰기에서의 평가방법은 바로 봉건국가에서 창수선발과 무과시험에서 적용하던 것이었으나 민간에서의 창쓰기경기에서도 대체로 이러한 채점제도에 준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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