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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 다음에 오는 명절은 정월 15일인 대보름 또는 상원이라는 명절이었다. 대보름 명절은 초하루부터 시작된 정초명절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였다. 대보름날을 명절로 맞았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대보름명절을 후세와 같이 큰 명절로는 쇠지 않았던 것 같다. 기록에는 정월 보름날에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고 약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대보름명절이 9개 민속명절의 하나로서 널리 일반화 되어 있었다고 인정된다. 정월대보름명절은 보통 14일부터 시작되었는데 14일은 작은보름이라고 하고 15일은 대(큰)보름이라고 하였다. 대보름명절에는 새해의 행운과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소박한 염원을 반영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의례적인 행사를 하였다. 대보름명절의 행사로는 작은보름의 낟가리대세우기와 대보름의 달맞이, 쥐불(횃불)놀이, 과일나무시집보내기, 용알뜨기 등이 있었다.
작은보름에는 긴 장대를 세워 거기에 여러 가지 곡식을 달아놓는데 이것을 ‘화적’ 또는 ‘낟가리대세우기’라고 하였다. 이 낟가리대에는 벼, 수수, 기장, 조, 피 등의 이삭을 달아 매고 목화를 심는 고장에서는 꼭대기에 목화송이를 달아맸다. 그리고 그 아래에 풍년을 염원하는 글을 쓴 깃발을 달았다. 낟가리대는 곳에 따라 마당에 세우기도 하고 외양간 뒤에 세우기도 하였다. 낟가리대를 세우면 어린이들이 나와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 주변을 돌았다. 이 낟가리대는 흔히 2월 초하루에 거두었다. 이것은 새해에도 낟가리대 만큼 높은 노적가리를 쌓을 수 있도록 풍년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농민들의 소박한 염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대보름날에는 달맞이와 횃불놀이를 하였다. 대보름날 저녁에 하는 들불놓이 또는 쥐불놀이, 횃불놀이라는 것은 횃불을 켜들고 들판에 나가 논두렁이나 밭둑의 잡초와 잔디를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횃불놀이는 불이 잘 붙는 싸리나무에다 삼대를 섞어 횃대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불을 달아 들고 논밭으로 나가 잡초를 태우며 놀았다. 이것은 겨울난 들쥐, 메뚜기알, 해충의 번데기, 돌피와 잡초 씨 그밖의 나쁜 것들을 태워버리는 유익한 놀이었다. 이때 태워버린 잡초의 재는 논밭의 거름이 되었고 새풀은 잘 돋아나 밭둑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남쪽의 일부 지방에서는 과일나무에 기름종이를 씌우는 일도 하였다. 정월 14일 저녁에 과일나무의 원기둥 중간에 기름종이를 대고 묶어둔다. 그러면 그 나무에는 그해에 큰 열매가 많이 달리고 벌레도 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벌레가 과일나무에 기어들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밖에 상징적인 방법으로 속신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과일나무 가지친 곳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하면서 이것을 ‘과일나무시집보내기’라고 하였다. 이것은 과일이 잘 열리게 해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과일나무의 가지들을 통풍이 잘 되도록 벌려주는 작용도 하게 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바닷가마을 어부들은 대보름명절을 계기로 배고사(제사)를 지냈다. 평안도 온천일대에 전하여오는 배고사는 봉죽놀이라고도 하였는데 그것은 정월 14일에 지내었다. 봉죽놀이는 ‘용왕신’에게 새해 풍어를 맞게 해달라는 제를 지낸 다음 진행하는 노래와 춤으로 엮어진 집체적 가무놀이었다. 놀이는 큰 북을 둘러맨 북잡이와 꽹과리잡이가 자리를 잡고 서서 장단을 맞추어 치면 먹임꾼이 놀이판 가운데에 나서서 선소리를 먹이는 방법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면 둘러서 있던 배꾼들은 “어야디야 빨리 저어라 연평바다로 나가잔다”고 받는다. 마을사람들은 노랫소리와 북, 꽹과리, 징, 장구 소리가 한데 어울려 퍼지는 장단에 맞추어 모두 춤판에 뛰어든다. 몇번이고 반복되는 봉죽타령으로 놀이판의 분위기가 어지간히 고조되면 일단 놀이를 중지하고 음식을 먹으며 쉬었다. 얼마쯤 쉰 다음에 사람들은 제가끔 뛰어난 장기를 들고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곱새춤’, ‘고사리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여인들은 건드러진 노랫가락으로 흥을 돋우었다. 이러한 놀이들은 전국도처의 바다가 마을들에서 하였다. 평안도 정주앞바닷가 마을에서는 이러한 놀이를 ‘복놀이’라고 하였다.
대보름명절날에는 맛나는 음식을 차려놓고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지냈다. 대보름날의 독특한 음식으로서는 오곡밥과 약밥, 복쌈, 나물반찬, 부스럼깨기, 국수, 귀밝이술 등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정월 상원)에도 오곡으로 잡곡밥을 지어 이웃들 사이에 나누어 먹는 풍습에 대하여 전하고 있다. 오곡밥을 지어먹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오는 풍습이었다.
약밥은 대보름날에 해먹는 특색 있고 영양가 높은 고급한 음식이다. 약밥은 약식이라고도 하는데 찰밥에 약이 된다고 하는 꿀이 들어감으로써 불리워진 이름이다. 기록에 의하면 찰밥에다 대추의 살, 감편, 삶은 밤, 잣을 넣어 비빈 다음 꿀, 참기름, 간장 등을 섞은 것을 약밥이라고 하였다.
대보름날에 먹는 명절음식의 하나로서 복쌈이 있었다. 복쌈은 배추 잎이나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이었다. 대보름명절에 복쌈을 싸먹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의 풍습으로 전하여왔다. 또한 대보름날에 묵은 나물을 먹었다. 묵은 나물이란 박나물, 버섯 등을 말린 것과 콩나무순, 무순, 무 같은 것을 말리워 저장하여 둔 것이다. 이러한 묵은 나물을 물에 불리었다가 데쳐서 무쳐 먹었다. 오이꼭지, 가지껍질, 무잎 같은 것도 버리지 않고 말리워 두었다가 이날에 국을 끓여 먹으면 그해 여름에는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름명절에는 ‘부름깨기(부스럼깨기)’라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 첫새벽에 날밤, 호두, 은행, 잣, 무 같은 것을 깨물면 한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으며 이빨도 튼튼해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딴딴한 것을 깨물기 때문에 이빨을 단련시켜 준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대보름명절에 별식으로서 약재로 되는 이러한 나무열매를 먹게 하려는 뜻에서 생긴 것이다.
국수는 작은 보름날 점심에 별식으로 먹었는데 이것은 국숫발처럼 오래오래 살 것을 염원한 데서였다. 그러므로 이날에 먹는 국수를 명길이국수라고도 불렀다. 또한 보름날에는 덥히지 않은 찬 술을 한잔씩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 찬술을 한잔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면서 그것을 귀밝이술이라고도 하여왔다. 이것은 명절날 술을 절도 있게 적게 마시도록 하기 위하여 귀밝기에다 결부시켜 풍습을 지키도록 한 것이다.
대보름날은 모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겨 노는데 개만을 굶는 날로 되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 “이날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 앞으로 파리가 많이 끼고 마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속담에 굶는 것을 비유해서 정월보름날 개 같다는 말이 있다”라고 씌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새해의 행운과 풍작, 풍어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안고 대보름명절을 유쾌하고 흥미있는 민속놀이와 의례들로 장식하면서 인상깊게 보내었다. 대보름명절은 새해에 들어 맞는 큰 민속명절로서 시간적으로도 길게 휴식하고 다양한 민속놀이와 행사들이 진행되는 것으로 하여 설보다도 더 즐거운 명절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날에 받은 흥취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사람들의 회상속에 오래 남아 있으면서 새해 농사일에서 힘을 내도록 고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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