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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이웃 사이의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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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친척은 핏줄로 연결된 사회적 집단의 하나인 것으로 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었으며 이웃은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오는 과정에 유무상통하고 도와주는 미풍이 생기게 되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처럼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은 물론 이웃들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은 전통적으로 지켜진 예의범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친척과 이웃의 웃어른들을 존경하고 예절있게 대하였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서로 만나면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길을 비켜주거나 잠깐 그 자리에 머물러서서 그가 먼저 지나가도록 하였다. 또한 옛기록에 길을 갈 때 다른 동리를 지나게 되면 반드시 그 마을의 윗사람을 만나 인사하고 지나가는 것을 예절로 여긴다고 하였다. 물론 좀 과장하여 표현한 것이지만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노인들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어디서나 지킨 예절이었다. 친척 또는 이웃 사이의 예절은 다음으로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사는 것을 예의로 여긴 데서 표현되었다. 옛날부터 우리 조선사람들은 친척과 이웃 사이에 서로 도와주고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나누어 먹으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가령 어떤 집에서 혼인을 하면 친척은 물론 이웃들 속에서도 성의껏 부조하고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즐겼다. 그리고 상사가 나면 물질적으로뿐 아니라 노력적으로 힘껏 도와주고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이처럼 친척 또는 이웃 사이에 일상생활을 서로 의논하고 함께 풀어나가며 경사와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을 응당한 도리로, 참다운 예절로 여겼다. 이러한 미풍양속이 있었으므로 봉건사회의 2중3중의 억압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네것 내것을 따지지 않고 서로 도울 수 있었으며 상호 이해와 친목을 도모하여 모든 일에서 힘을 합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손님을 환대하는 것도 주요한 예절이며 미풍양속이었다. 찾아온 손님을 쫓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고 인심이다. 비록 쌀이 없어 죽을 쑤어먹을 때도 손님이 오면 맹물을 한바가지 더 부어넣어서라도 끼니를 대접하였다. 괴춤에 동전한푼 없는 방랑객도 마음만 먹으면 조선팔도를 죄다 돌아볼 수 있었다. 19세기의 풍자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이 돈 한잎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통치자들과 양반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수많은 시작품을 창작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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