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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모든 도시와 농촌의 살림집들은 나라의 자재, 자금 그리고 국가적으로 조직된 전문적인 주택건설사업소나 건설대의 노력에 의하여 건설된다. 나라에서 지은 현대적인 문화주택들은 근로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차례진다. 이러한 현대화된 집짓기에서는 우수한 민족유산들이 시대발전의 요구에 맞게 발전적으로 계승되고있는 것이 적지 않다. 그것은 주로 단층문화주택짓기에서 찾아볼수 있다.
단층문화주택을 짓는데서 집터선택과 집터닦기, 기둥 및 부재 조립과 지붕만들기, 벽체축조 등 작업공정에는 종래의 풍습들이 계승발전되고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지난날 집짓기풍습이 단층집을 짓는데서 이루어진 풍습이라는 사정과 관련되고 있다.
문화주택짓기에서 먼저 집터를 일반적으로 양지바른 곳에 정하는데 이것은 지난날의 집터선택풍습을 계승한 것이다. 뒤에는 낮은 산 또는 언덕을 등지고 남향집을 지을수 있는 지형에 집터를 정한다. 지금 새로 지은 대부분의 농촌문화주택들이 그런 지형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북한의 그 어느 농촌을 가보나 아담한 농촌문화주택들이 낮은 산, 언덕에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남향(동남 또는 서남향)을 하고있으며 심지어 열두삼천리벌이나 재령나무리벌에 건설된 문화주택들도 산은 비록 없으나 언덕진 구릉지대의 우므러진 곳에 남향으로 지어 위치하고 있다. 도시문화주택의 경우에도 부득이한 경우를 내놓고는 대부분의 주택들이 그러한 지형조건을 고려해 지어졌다. 이것은 산간지대로부터 평야지대에 이르기까지 남향집을 짓는 풍습이 계승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층문화주택짓기에서 집터닦기는 기둥보식주택과 일체식벽체주택인 경우에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기둥보식으로 문화주택을 지을 때에는 집터를 일정하게 돋우고 다진 다음 주춧돌기초를 하는 것으로 집터닦기가 끝난다. 이것은 종래의 집터닦기와 거의 같다. 일체식벽체로 된 문화주택을 지을 때의 집터닦기는 기둥보식주택의 경우와는 달리 벽체가 놓일 위치에 일정한 너비와 깊이로 땅을 동결심도 만큼 깊이 파고 거기에 막돌을 채워넣고 다지거나 막돌콘크리트로 일체식기초(연적기초)를 축조한다.
문화주택의 집터닦기는 두 경우가 서로 다르기는 하나 집터를 높이 잡고 기초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풍습의 계승발전이라고 할수 있다.
문화주택짓기에서 벽체만들기는 기둥보식으로 짓는 경우에는 지난날의 방법과 같으며 일체식벽체주택인 경우에는 그 방법이 지난날의 방법과 다르다. 일체식벽체는 벽체가 하나의 입체로 된것으로서 그자체가 기둥의 역할을 겸한다. 그러므로 일체식벽체로 한 문화주택에는 기둥을 따로 세우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체식벽체의 유래는 매우 오래다. 지난날 서북부일대의 주택의 벽체는 대부분이 뚝벽이었다. 이 뚝벽은 전체가 하나의 입체로 되고 기둥대신에 지붕의 무게를 직접 받는다. 따라서 일체식벽체의 시원은 뚝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일체식벽체에는 토피벽, 석비레블록벽, 벽돌벽, 콘크리트블록벽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계승성이 명백한 토피벽과 석비레블록벽만을 보기로 한다. 토피벽은 토피벽돌로 쌓아서 만든 것이고 석비레블록벽은 석비레에 석회를 섞어 만든 블록으로 쌓은 벽체이다. 벽체를 쌓은 다음의 공정은 벽체위에 도리와 보를 조립하고 지붕을 올리는 것이다.
도리는 지난날 기둥보식집짓기와는 달리 도리를 기둥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벽체위에 놓는다. 도리는 설계에 제시된 규격의 각재를 사개물림법으로 연결시켜 벽체에 고정시킨다. 벽체위에 놓은 도리를 베개도리라고 한다. 베개도리위에 보를 올려놓는데 도리와 결합되는 부분은 역시 사개물림으로 연결시킨다.
마루도리를 올린 다음 서까래를 거는데 서까래는 흔히 각재를 이용한다. 지난날에는 제재기술이 발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흔히 가는 통나무를 서까래감으로 썼으며 ‘연침박기’와 같은 복잡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각재를 서까래감으로 쓰게 되면서부터 ‘연침박기’와 같은 복잡한 일이 불필요하게 되었다.
‘만장’(고미다락)이 있는 문화주택을 지을 경우에는 서까래를 걸기전에 만장을 먼저 설치한다. 만장은 지붕위로부터 내려오는 찬 기운을 막아주는 작용을 한다. 지난날에는 기온이 비교적 낮은 우리나라 북부산간지대의 주택들에 만장을 놓았는데 이런 주택을 이곳에서는 겹집이라고 하였다. 오늘도 만장을 설치하는 풍습이 문화주택에 계승되고 있다. 현지조사자료에 의하면 자강도일대의 문화주택은 만장을 놓고 그밑에 문양이 고운 천반지로 바르는데 그것이 천장을 대신한다.
서까래를 건 다음 산자를 엮고 진새를 올리는데 그것은 지난날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산자감으로 나뭇가지나 수숫대와 같은 것을 이용하였다면 지금은 판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판자가 지붕산자감으로 이용됨으로써 지붕면이 고르로워 진새흙을 올리기도 편리하고 기와잇기도 한결 쉽게 할수 있게 되었다. 문화주택의 지붕은 기와로 이은 것이다. 기와로서는 지방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시멘트기와, 토기와(흙기와), 조선기와, 너새를 쓴다. 시멘트기와와 토기와는 평기와이다. 그러므로 시멘트기와, 토기와를 잇는 방법은 종전의 평기와를 잇는 방법과 같다. 조선기와와 너새도 역시 그 형태가 지난날의 것과 같으므로 잇는 방법도 같다.
이밖에 천연슬레이트가 나는 지방에서는 그것을 지붕재로 이용하는데 종전(돌기와)과 달리 청석을 4각형으로 얇게 떠서 기왓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주택을 모두 기와로 지붕을 잇는다. 문화주택의 지붕형식으로서는 뱃집지붕, 우진각지붕, 합각지붕이 있다. 지난날에는 우진각지붕이 가장 많이 이용된 지붕형식이었다면 지금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합각지붕이 기본형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것은 지붕형식에서 합각지붕과 같은 우수한 형식이 계승발전되고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붕을 올린 다음 벽체에 마감미장을 하고 온돌을 놓으며 벽장과 부엌시설들을 만든다. 그리고 도배와 장판을 하는데 이것들이 집짓기에서 마감공정이다. 집짓기가 끝나면 집들이를 한다. 집들이풍습은 지난날에 있었던 속신적인 행사들이 없어지고 다만 이웃이 도와주는 미풍만이 계승되고 있다. 이웃에서 집들이를 할 때 이삿짐을 날라다주며 집들이를 축하하여 성냥 또는 그릇과 같은 간단한 식생활도구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주인집에서는 새집들이를 도와준 이웃들을 위하여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것으로써 보답한다. 이와 같이 광복 후 단층문화주택짓기에서는 전통적인 풍습들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계승발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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