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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무늬는 옷의 바탕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점, 선 등의 일정한 기하무늬와 동식물을 형상하여 옷의 미와 위엄을 나타내거나 위장을 보장하기 위하여 창안된 것이었다. 옷무늬의 시원은 원시시대 사람들이 그 어떤 미신에서 혹은 사냥을 성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러저러한 소박한 그림을 그린 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후 옷감생산이 진행되고 사람들이 천으로 지은 옷을 입게 되면서 옷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그밖의 방법으로 무늬를 형상하게 되었다.
삼국시대에 매우 다종다양한 형태의 옷무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에도 옷무늬를 형상하는 기술이 일정한 수준에 있었다고 짐작된다. 삼국시대에는 옷에 무늬를 놓는 방법도 발전하였다. 당시 옷무늬를 놓는 방법에는 옷감에 여러 가지 형식으로 염색하는 방법과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금박, 은박을 올리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널리 도입된 것은 염색하는 방법이었으나 당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방법은 옷감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흰옷 바탕에 그림을 그린 것을 좋아하였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관리들의 옷에 붉은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옷에 수를 놓는 방법도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여 이때에 벌써 일반색실로만이 아니라 금실과 은실로 수를 놓을 정도로 수놓는 기술이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삼국시대의 옷무늬를 벽화와 그밖의 유물 자료에 의거하여 종합해 보면 당시에 점무늬, 선무늬, 둥근무늬, 점선부늬, 삼각무늬(쐐기무늬), 방형무늬, 능형무늬, 번개무늬 등 각기 다른 형태의 기하무늬와 구름무늬, 초롱무늬 등 자연의 일정한 대상을 형상한 무늬가 있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연꽃을 형상한 꽃무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꽃무늬는 매우 고급스런 비단에 장식된 것으로서 일반화되지는 못하였다. 가장 일반화된 무늬는 기하무늬였다. 옷무늬에서 기하학적 무늬가 많았던 것은 주로 무늬의 형상기술수준과 당시 사람들의 기호와 관련되었다. 식물무늬나 동물무늬를 형상하는 것은 기하무늬를 형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고 보다 높은 형상기술이 요구되었으며 광범한 주민들은 자기의 생활처지의 반영으로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무늬를 더 좋아하였다. 그러므로 손쉬운 기하무늬가 절대적으로 많아지게 되었던것이다.
이 여러 가지 무늬들은 하나의 옷에 한 가지 형태만으로 형상된 것도 있고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형태를 동시에 배합하여 형상한 것도 있어 그 양상은 매우 다양하였다. 비록 옷무늬의 양상은 다양하였지만 그 배열은 매우 규칙적이었고 통일적인 순환체계에 따라 형상되어 있으므로 잘 짜이고 조화롭게 보였다.
옷무늬들은 신분과 계층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벽화에 의하면 점무늬나 선무늬 등 비교적 단순한 무늬들은 주로 일반 백성들의 옷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복잡하고 세련된 무늬들은 주로 통치자들의 옷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생활수준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위계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제정한 옷제도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옷무늬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지나 저고리, 겉옷 등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형상하였지만 여성들의 주름치마에는 무늬를 거의 놓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고상하고 선명한 것을 즐겨한 당시 여성들의 기호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인다. 즉 주름치마에 무늬를 놓지 않고 잔잔한 주름으로 자연미를 내는 것이 더 고상하고 보기에도 좋았기 때문에 당시 여성들은 구태여 주름치마에 무늬를 형상하려고 하지 않은 것이라 짐작된다. 당시의 옷무늬에서 또한 주목되는 것은 옷 바탕색과 무늬색을 두드러지게 대조시키면서도 서로 어울리는 색깔을 택하여 잘 조화시킨 것이었다.
황색 계통의 옷에 붉은밤색 계통의 색무늬를 형상하거나 황색이나 붉은밤색 계통의 옷에 검은색 계통의 무늬를 놓은 것과 그리고 흰색 바탕의 옷에 붉은색 무늬를 놓았거나 암푸른색의 옷에 황색이나 붉은색 무늬를 형상한 것 등은 그러한 실례이다. 옷바탕색과 무늬색을 이렇게 잘 조화시키면서도 무늬를 뚜렷이 살린 것은 당시 사람들의 높은 미적 안목에 기초한 것이었다.
옷에 무늬를 놓는 방법에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 무늬를 찍는 방법, 수를 놓는 방법, 천을 짤 때 직접 무늬를 짜넣는 방법 등이 있었다. 이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서 그림을 그리거나 무늬를 찍는 방법은 비교적 쉬운 방법이 었으므로 널리 적용되었으며 수를 놓는 방법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품이 많이 드는 고급스런 무늬였고 또 천에 무늬를 직접 짜넣는 방법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품이 많이 들었으므로 널리 적용되지 못하고 일부 귀족들의 고급스런 옷에만 적용되었다.
삼국시대의 옷무늬와 그것을 형상하는 기술은 발해 및 통일신라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 시기 옷무늬도 대체로 이전 시기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통일신라에서 큰 꽃이나 작은 꽃을 형상한 고급비단을 당나라에 수출한 사실이 주목된다. 이것은 꽃무늬를 형상한 옷감이 국내에서는 물론 이웃 나라에서까지 호평을 받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옷감에 무늬를 놓는 기술은 한층 더 발전하였으며 그에 따라 무늬도 이전 시기보다 더 다종다양해졌다. 고려시대에는 그 이전 시기의 기하무늬와 함께 여러 가지 꽃, 나무잎 등의 식물무늬와 용, 봉황, 까치 등의 동물무늬 등이 있었으며 해와 달을 형상한 무늬들도 적지 않았다. 이 시기 동물무늬와 해, 달 등의 무늬들이 옷무늬로 새롭게 나타난 것은 그만큼 옷무늬를 형상하는 기술이 높아졌다는 것과 무늬 주제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의 옷무늬에서는 이전 시기의 단순한 기하무늬들이 적어지고 그 대신 모란꽃, 매화꽃, 살구꽃, 도라지꽃, 연꽃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무늬들과 포도넝쿨을 비롯한 여러 가지 넝쿨무늬, 단풍잎 등의 다양한 나무잎무늬, 그리고 풀잎, 불로초, 소나무가지, 왕대 등을 형상한 식물무늬들이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물고기, 나비, 용, 봉황, 사슴, 학, 거북 등 동물무늬와 구름, 해, 바위, 물 등 자연을 형상한 무늬들도 일정하게 늘어났다.
이밖에도 조선시대에는 ‘수(壽)’, ‘복(福)’, ‘쌍희(囍)’, ‘강녕(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좋은 뜻을 가진 글자무늬들이 새롭게 형상됨으로써 무늬의 주제내용이 어느 때보다도 풍부해졌으며 보다 생활적이고 정서적인 것으로 되었다. 특히 일상적인 생활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을 형상한 무늬가 널리 보급되어 옷무늬 자체가 매우 친근한 감을 안겨주었다. 이 점은 조선시대 옷무늬가 이전 시기 옷무늬와 다른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게 된 것은 우선 이 시기 사람들의 미학적 안목과 문화수준, 형상 기술이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좀더 높은 수준의 미학적 안목에서 자연을 고찰하고 아름다운 대상과 자신들의 염원을 반영한 대상을 옷무늬에 반영하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 현실적으로 이런 욕망을 옷무늬에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 물질적 조건들이 상당히 갖추어져 있었고 특히 사실주의적 미술이 일정한 수준에서 발전하고 있었으므로 단순한 점, 선 무늬보다 정서적이고 화려한 꽃이나 아름답고 웅장한 자연, 용맹스러운 동물,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 생활상의 염원을 직선적으로 반영한 글자들을 무늬로 선택하여 옷에 그려 넣거나 수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옷에 무늬를 형상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은 주로 옷감의 재료에 따라 선택되었다. 천에 무늬를 직접 짜넣는 방법은 비단에만 적용되었고 그밖의 무늬형상방법은 비단류와 무명, 모직천 등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베, 모시, 항라 등 비교적 성글게 짠 옷감에는 대체로 무늬를 놓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었다. 조선시대의 옷무늬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옷무늬는 주로 비단류의 옷에 많고 그밖의 옷감으로 지은 옷에는 무늬가 극히 적거나 거의 없었다. 그리고 금실, 은실로 수를 놓은 화려한 무늬들과 금박, 은박을 찍어 형상한 무늬들은 주로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들과 그밖의 귀족들, 도시의 부유한 계층들의 옷에서나 볼 수 있고 민간에서는 결혼식 때 입는 신부의 예복과 그밖의 예복들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과거에 우리나라 민족옷의 색깔과 무늬들은 모두 연하고 맑으며 가벼우면서도 은근하고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이 기본이었다. 이것은 과거에 우리나라 민족옷의 색깔과 무늬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였다. 그리고 무늬는 처음에 점, 선 등의 단순한 기하무늬로부터 점차 방형, 능형, 번개 등의 복잡한 기하무늬로 발전하였으며 그후 식물무늬와 동물무늬, 그밖의 자연을 형상한 무늬들이 나오게 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기하무늬가 위주였고 조선시대에는 식물무늬가 위주였다.
식물무늬의 주제 대상은 모두 우리나라의 것이었고 사람들이 생활과정을 통해 주변의 자연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과 나무잎, 풀잎 등이 기본이었다. 이러한 식물무늬들은 사람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안겨주고 민족적 정서를 짙게 풍겨 주었다. 이것은 우리의 민족옷 무늬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였다.
또한 과거의 옷무늬들은 모두 섬세하고 사생적이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옷무늬들은 대상의 특징을 정확히 그려냈고 세부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형상되었으므로 자연세계에 핀 꽃들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듯 생동감이 있었다. 이것도 한복무늬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였으며 장점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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