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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온성군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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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북부에 위치해 있는 군. 국내 북동부 두만강 중류 연안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의 풍서리는 국내 최북단을 형성하고 있다. 동부는 경원군, 남부는 회령시와 접해 있으며 북부와 서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동북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북동(미산리)~남서(삼봉노동자구) 간의 길이는 18km이며, 면적은 720여 ㎢로서 도 전체면적의 4.53%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0구 15리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온성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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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온성군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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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개척이 활발하던 15세기 중엽에 함길도에서 신설된 군인데 성을 축조하여 외적을 다스리면서 온화한 고장으로 되었다 하여 온성군이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세종 22년에 처음으로 군을 설치하면서 현재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기재하고 있다. 고려시기에는 다온평 또는 전성이라 하였는데(『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다온평에서 ‘다온’은 털가죽을 의미하는 말로서 예로부터 소문났던 이 고장의 털가죽과 그로 인하여 번성하였던 무역거래과정에 들어온 것이고, ‘평’은 두만강기슭의 평야와 마을을 가리킨 것이다. ‘전성’은 ‘다온평’의 의미를 한자로 적은 것인데 ‘전’은 털가죽제품을 가리키며, ‘성’은 이 고장에 성을 축조한 것과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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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온성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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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성군 지역의 동관리, 삼봉리 등 지역에서 포유류동물화석과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된 것은 이곳에서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사실을 입증해준다. 옛 문헌에 의하면 온성군 지역은 두만강유역의 기타 지방과 마찬가지로 숙신(肅愼), 읍루(挹婁), 예맥(濊貊), 옥저(沃沮), 부여(扶餘), 말갈(靺鞨) 등 부족국가들이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당나라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으며 신라 문무왕 9년 발해국 개국에 이르러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소속되었다. 926년 발해가 패망하고 나서부터 온성군 지역은 선후로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공민왕 말기에 고려의 북진정책이 추진되면서 고려의 판도로 수복되어 다온평(多溫平)이라 명명하였다.
조선왕조가 건립되면서 한동안 공허가 되었다가 1440년(세종 22년)에 김종서 장군이 6진(六鎭)을 개척하면서 온성군 지역에 온성군을 설치하여 동해안일대에 사는 함경도인들을 이주시켰다. 1441년(세종 23년)에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로 승격되었고 그 이듬해에 처음으로 진(鎭)이 설치되었다. 그 후 한 시기 동안 전성(氈城)으로 개칭하였다가 다시 온성으로 고쳐 불렸다. 1630년(인조 8년)에 양사복(梁士福)의 모반사건 때문에 온성현으로 격하되었다가 3년 후인 1633년에 다시 온성도호부로 복귀되었다.
189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시에 경성부(鏡城府) 온성군으로 되어 포항사(浦項社), 주원사(周原社), 와동사(瓦洞社), 영달사(永達社), 변포사(汴浦社), 충동사(忠洞社), 미전사(美錢社), 유원사(柔遠社), 당동사(堂洞社), 방후사(放厚社), 덕천사(德川社), 덕산사(德山社), 덕명사(德明社), 황석파사(黃石坡社) 등 14개 사를 관할하다가, 1896년에 다시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북도 온성군으로 되어 읍면(邑面), 주원면(周原面), 변포면(汴浦面), 유원면(柔遠面), 영동면(永洞面), 와동면(瓦洞面), 훈융면(訓戎面), 충동면(忠洞面), 영달면(永達面), 포항면(浦項面), 미전면(美錢面), 어후면(於厚面) 등 12개 면을 개편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읍면과 포항면·주원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온성면(穩城面)을, 어후면·변포면·유원면을 병합하여 유포면(柔浦面)을, 영동면과 와동면을 병합하여 영와면(永瓦面)을, 영달면과 충동면을 병합하여 영충면(永忠面)을, 포항면·주원면의 각 일부와 미전면을 병합하여 미포면(美浦面)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광복 직후 유포면이 남양면(南陽面)으로 개칭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전 온성군의 남양면·온성면·미포면·영와면의 전체 리와 영충면의 1개 리, 종성군 종성면의 1개 리를 통합하여 온성군을 구성하였는데, 온성면의 서흥리와 동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온성읍(穩城邑)을, 종성면의 청강리와 산성리 일부, 남양면의 영달리를 병합하여 영강리(永江里)를 각각 신설하고, 미포면의 풍인리와 풍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풍인리(豊仁里)로, 미포면의 월파리와 풍교리 일부, 훈융면의 금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월파리(月波里)로, 온성면의 심청리와 미포면의 장덕리를 병합하여 심청리(深淸里)로, 온성면의 주원리와 동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주원리(周原里)로, 영와면의 용남리와 송북리를 병합하여 용남리(龍南里)로, 영와면의 상화리와 석수리를 병합하여 상화리(上和里)로, 영와면의 창평리와 영충면의 회덕리를 병합하여 창평리(倉坪里)로, 미포면의 미산리를 온성군 미산리(美山里)로, 남양면의 남양리를 온성군 남양리(南陽里)로, 남양면의 향당리를 온성군 향당리(香棠里)로, 남양면의 세선리를 온성군 세선리(世仙里)로, 남양면의 풍서리를 온성군 풍서리(豊西里)로, 남양면의 풍리리를 온성군 풍리리(豊利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14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 10월에 영강리가 종성군에 편입되었으며, 온성읍이 고성리(古城里)로, 남양리가 온성읍으로 각각 개편되었다. 1958년 6월에 창평리가 종성군에 이관되었고, 동시에 고성리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온탄노동자구(穩炭勞動者區)를 신설하였으며, 1967년 10월에 고성리, 상화리, 주원리, 풍인리가 각각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74년 5월에 종성군이 폐지되면서 종성읍, 동관리, 영강리, 풍천리, 하삼봉리, 창평리, 풍계리, 동포리, 산성노동자구, 삼봉노동자구가 군에 편입되었으며, 종성읍이 노동자구로 강등되었다. 1975년 11월에 온성읍이 남양노동자구(南陽勞動者區)로 격하되었고, 고성노동자구가 온성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6년 2월에 심청리가 왕재산리(旺載山里)로, 1981년 10월에 동관리가 강안리(江岸里)로 각각 개칭되었다. 1987년 10월에 창평리와 산성노동자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운암리(雲岩里)를 신설하였고, 또 창평리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증산리(甑山里)를 신설하고, 나머지 창평리 지역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90년 10월에 월파리가 두루봉리로 개칭되었고, 1991년 9월에 동포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온성읍), 10구(남양노동자구, 동포노동자구, 산성노동자구, 삼봉노동자구, 상화노동자구, 온탄노동자구, 종성노동자구, 주원노동자구, 창평노동자구, 풍인노동자구), 15리(강안리, 두루봉리, 용남리, 미산리, 세선리, 영강리, 왕재산리, 운암리, 증산리, 풍계리, 풍리리, 풍서리, 풍천리, 하삼봉리, 향당리)로 구성되어 있다. 온성군 소재지는 온성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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