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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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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도. 북부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동북지방과 접경해 있으며 북동부 일부 지역은 나선시, 서부는 양강도의 대홍단군과 백암군, 함경남도의 단천시와 접해 있으며 남부와 동부는 동해에 면해 있다. 온성군 풍서리의 북부는 우리나라의 최북단을 이룬다. 함경북도는 동경 128°48′(연사군 노평리)과 130°26′(경흥군 신아산리) 사이, 북위 43°01′(온성군 풍서리)과 40°34′(김책시 만춘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동(온성군 미산리)~남서(김책시 만춘리) 사이 거리는 279km이고 북서(연사군 노평리)~남동(청진시 송평구역 서항1동) 사이 거리는 75km이며, 면적은 15,980여 ㎢로서 국토면적의 7%이상을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3시 12군으로 되어 있으며 도 소재지는 청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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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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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지역은 북부변방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하여 역대에 걸쳐 여러 나라에 귀속되었다. 원래 북부여(北扶餘)에 속했다가 숙신국(肅愼國)의 영역으로 되었고, 후에 한무제(漢武帝)가 함경북도 지역에 현도군(玄菟郡)을 설치하였다. 그 뒤 행인국(荇人國)에 소속되었다가, 옥저국(沃沮國)의 영역으로 되어 북옥저(北沃沮)에 속하였다.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 행인국과 북옥저가 고구려에 통합됨으로써 고구려의 영토로 되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한때 신라의 통치를 받았고 그 후에는 발해국(渤海國)의 영역으로 되어 북부지역은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에, 남부지역은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속하였다.
고려 995년(성종 14년)에 전국을 10개 도로 개편하면서 현재 함경남도와 강원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여 삭방도(朔方道)라 하여 문주(文州), 의주(宜州), 고주(高州), 화주(和州·화주안변도호부), 영주(英州) 등 5개 주를 소관하였다. 1036년(정종 2년)에 10도를 5도 양계(동계, 東界·북계, 北界)로 개편할 때에는 동계에 속하였는데 현재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지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원흥진(元興鎭, 후에 정주에 편입됨)을 신설하고, 1041년(정종 7년)에는 정주(定州)를 신설하였다. 1047년(문종 1년)에는 동북면(東北面)(동면, 東面·동로, 東路·동북로, 東北路·동북계, 東北界)으로 개칭하고, 1108년(예종 3년)에는 동북면에 복주(福州), 함주(咸州), 예주(豫州), 웅주(雄州), 영주, 길주(吉州)를 내왔으며, 1178년(명종 8년)에는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1263년(원종 4년)에는 강릉도(江陵道)라 개칭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에는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 또는 동북면이라 하였는데 화주, 등주(登州), 정주, 장주(長州), 예주, 고주, 문주, 의주 등 8개 주와 선덕(宣德), 원흥(元興), 영인(寧仁), 요덕(耀德), 정병(定塀) 등 5개 진을 소관하였으며, 1360년(공민왕 9년)에는 삭방강릉도(朔方江陵道)라 개칭하였다. 고려 말(공양왕)에는 삭방도(철령이북지역)라 하고 선덕진과 원흥진을 병합하여 덕주(德州)를 신설하고, 공험진(公嶮鎭)과 애수진(隘守鎭, 후에 문주에 편입됨)을 신설하였으며, 복주를 단주(端州)로 개칭하고, 등주를 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로 격하하였으며, 장평진(長平鎭, 후에 영흥에 편입됨)을 장평현(長平縣), 진명진(鎭溟鎭)을 진명현(鎭溟縣, 후에 덕원에 편입됨), 용담진(龍潭鎭)을 용담현(龍潭縣, 후에 문주에 편입됨)으로 승격하였으며 웅주와 영주를 길주에 편입하고, 함주이북에 7개 주를 신설하여 함주대도독부, 안변도호부(속현 7개), 진명현, 예주, 문주, 고주, 화주, 의주(속현 1개), 장주, 정주, 덕주, 북청주부(北靑州府), 단주, 홍주(洪州), 공주(孔州), 경주(慶州), 길주, 감주부(甘州府) 등 구역을 관할하였다. 1398년(태조 7년)에는 홍헌(洪獻)을 홍원(洪原)으로, 청주(靑州)를 청주부로, 공주를 경원(慶源)으로, 길주를 길주목(吉州牧)으로, 경주를 경성(鏡城)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왕조가 건립된 후 1413년(태종 13년)에는 관내에 영흥(永興), 길주가 있다 하여 영길도(永吉道)라 칭하고 문주를 문천군(文川郡)으로, 정주를 정평도호부(定平都護府)로, 고주를 고원군(高原郡)으로, 단주를 단천군(端川郡)으로 격하하였다. 1416년(태종 16년)에는 청주부를 북청(北靑)으로 개칭하고, 영흥부를 화주목(和州牧)으로 승격하였으며, 함주대도독부와 덕주를 통합하여 함흥부(咸興府)를 신설하고 관찰사의 본영(本營)을 두면서 영길도를 함길도(咸吉道)로 개칭하였다. 1422년(세종 4년)에는 장주를 정평도호부에 편입하고, 1426년(세종 8년)에는 화주목을 영흥대도호부(永興大都護府)로 격하하였으며, 1432년(세종 14년)에는 영북(寧北)진을 신설하고, 1434년(세종 16년)에는 회령진(會寧鎭)을 두었다가 회령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435년(세종 17년)에는 종성군(鐘城郡)과 공성현(孔城縣, 일명 공주)을 신설하고, 1436년(세종 18년)에는 경성군을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1437년(세종 19년)에는 공성현을 경흥군(慶興郡)으로 승격하고, 1438년(세종 20년)에는 영북진을 부거현(富居縣)으로 승격하고 무산진(茂山鎭)을 신설하였다.
1440년(세종 22년)에는 온성군(穩城郡)을 신설하고, 1441년(세종 23년)에는 종성군을 종성도호부(鐘城都護府)로, 온성군을 온성도호부(穩城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1443년(세종 25년)에는 경흥군을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449년(세종 31년)에는 부거현을 부령도호부(富寧都護府)로 승격하여 함흥부(속현 1개), 안변도호부(속현 8개), 영흥대도호부, 정평도호부(속현 1개), 북청도호부(北靑都護府), 경성도호부,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경흥도호부, 회령도호부, 종성도호부, 온성도호부, 의천군(宜川郡, 속현 1개), 예원군(豫原郡), 문천군, 고원군, 단천군, 갑산군(甲山郡), 삼수군(三水郡), 길주목, 용담현, 무산진 등 22개 부·군·현·진을 관할하였다. 세종 때에는 경원, 경성, 회령, 경흥, 온성, 부령(富寧) 등의 6진을 설치하였다. 1469년(예종 1년)에는 길주를 현(縣)으로 격하하였으며, 1470년(성종 1년)에는 관찰사의 본영을 영흥부로 천이하고 관내에 영흥과 안변이 있다 하여 영안도(永安道)로 개칭하면서 함흥부를 함흥군(咸興郡)으로, 영흥대도호부를 영흥부(永興府)로, 길주목을 길성현(吉城縣)으로 격하하고, 의천군을 덕원도호부(德源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예원군을 영흥부에, 용담현을 문천군에 각각 편입하고, 명천현(明川縣)을 신설하였다.
1509년(중종 4년)에는 관찰사의 본영을 다시 함흥부로 천이하고 관내에 함흥과 경성이 있다 하여 함경도라 개칭하고 함흥군을 함흥부로, 영흥부를 영흥대도호부로 승격하고 부, 군에 소속되어 있던 현제도를 폐지하였다. 1605년(선조 38년)에는 명천현을 명천부(明川府)로, 길성현을 길주목으로 승격하고, 1630년(인조 8년)에는 온성도호부를 온성현(穩城縣)으로 격하하였으며, 1633년(인조 11년)에는 온성현을 다시 온성부(穩城府)로 승격하였다. 1684년(숙종 10년)에는 무산진을 무산도호부(茂山都護府)로, 1720년(숙종 46년)에는 단천군을 단천도호부(端川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1787년(정조 11년)에는 장진도호부(長津都護府)를 신설하고, 삼수군을 삼수도호부(三水都護附)로 승격하였으며, 이성현(利城縣)을 이원현(利原縣)으로 개칭하여 1886년(고종 23년)에는 함흥부, 안변도호부, 덕원도호부, 영흥대도호부, 정평도호부, 북청도호부, 단천도호부, 장진도호부, 갑산도호부(甲山都護府), 삼수도호부, 경성도호부, 경원도호부, 명천도호부(明川都護府), 회령도호부, 부령도호부, 종성도호부, 경흥도호부, 온성도호부, 무산도호부, 길주목, 문천군, 고원군, 홍원군(洪原郡), 이원현 등 24개 부·목·군·현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년)에는 전국의 8도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실시하여 함경도를 함흥부, 경성부, 갑산부(甲山府)로 분리하였는데, 함경북도는 경성부에 소속되었다. 동시에 도호부·부·현 등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부와 군으로 통일하였는데 길주, 명천, 경성, 부령,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무산 등 10개 군을 관할하였다. 1896년(고종 33년)에 전국을 다시 13도로 개편하면서 함경북도로 되었다. 1898년에는 길주군을 분리하여 성진군(城津郡)을 신설하고, 1900년 1월에는 길주군을 길성부로 승격하고, 성진군을 길성부(吉城府)에 편입하여 1개 부 9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1900년 5월에는 길성부를 길주군(吉州郡)으로 격하하고, 성진군을 다시 복귀하여 11개 군으로 개편하였다. 1901년 10월에는 성진군을 길주에 편입하였고, 1903년에는 성진군을 다시 복귀하였으며, 1906년에는 경흥군을 경흥부(慶興府)로, 성진군을 성진부로 승격하고, 1907년에는 경흥부를 경흥군으로 격하하고 청진부(淸津府)를 신설하여 2개 부 10개 군을 관할하였다. 1910년에는 성진부를 성진군으로 격하하고, 부령군을 청진부에 편입하여 1부 10군을 관할하였다.
1920년에는 경성에 있던 도청을 나남(羅南)으로 천이하고, 1926년에는 부령군을 다시 복귀하여 1개 부 11개 군을 관할하였다. 1931년 읍 면제가 시행됨에 따라 나남, 성진, 회령, 웅기(雄基) 등 4읍이 신설되었고, 1934년에는 나진(羅津)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36년에는 경흥군 신안면(新安面)과 풍해면(豊海面)이 편입되어 나진부(羅津府)로 승격하여 2개 부 11개 군을 관할하였다. 1943년에는 성진군을 성진부로 승격하고, 길주군을 길성군으로 개칭하였으며, 학성군(鶴城郡)을 신설하여 1943년 말에 3부 11군 72면 749정동이 설치되었다. 1945년에는 청진부를 청진시(淸津市)로, 성진부를 성진시(城津市), 나진부를 나진시(羅津市)로 승격하고, 길성군을 길주군(吉城郡)으로 개칭하였으며, 나남시(羅南市)를 신설하고 1947년 11월에는 경원군의 유덕면(有德面), 종성군의 화방면(華方面)이 경원군(慶源郡)에, 무산군 영북면(永北面)의 대부분 지역이 회령군(會寧郡)에 편입되어 1948년 말까지 청진, 나남, 나진, 성진 등 4시와 부령,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경성, 명천, 길주, 학성 등 11군(73면)을 관할하였다. 1949년에는 나진시를 나진군(羅津郡)으로 격하하였으며 청진시의 자작(自作), 송암(松岩), 수성(輸城), 근동(芹洞), 송정(松亭) 등 5개 리와 회암리(回巖里) 일부가 부령군 수성면(輸城面)에, 직하리(稷下里) 일부가 부령군 청암면(靑岩面)에 편입되었다. 1951년에는 성진시를 김책시(金策市)로, 학성군을 김책군(金策郡)으로 개칭하였으며, 1952년 군면리 대폐합을 실시하여 김책군의 일신(日新), 송정(松亭), 풍호(豊湖), 이대(梨垈), 용대(龍臺), 금산(琴山), 예동(禮洞) 등 7개 리를 함경남도 광천군(廣泉郡)에 이관하고 화대(花臺), 영안(永安), 어랑(漁郞), 삼사(三社), 연사(延社), 유선(遊仙), 웅기(雄基) 등 군을 신설하여 3개 시 19개 군을 관할하였다.
1954년에는 양강도를 신설하면서 삼사군을 백암군(白岩郡)으로 개칭하고 양강도에 이관하였으며, 1957년 6월에 도내 일부 행정구역이 개편되었고, 1958년 6월에 도내 7개 시·군의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1960년에는 청진시에 나남시와 부령군의 대부분 지역이 병합되면서 신암(新岩), 청암(靑岩), 포항(浦項), 수남(水南), 송평(松坪), 나남, 부령 등 7개 구역으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 도 행정구역은 2개 시 17개 군으로 되어 있었다. 1961년 12월에는 김책군을 김책시에 편입하고, 연사군의 일부를 양강도의 삼지연군(三池淵郡)으로 이관하였다. 1963년 6월에는 청진시를 청진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67년 8월에는 나진군을 나진시로 승격하고, 웅기군을 나진시에 편입하였다. 1967년 10월에는 영안군을 명간군(明澗郡)으로 개칭하고, 나진시에서 본래의 웅기군 지역을 분리하여 다시 웅기군을 설치하였으며, 1970년에는 청진시를 일반시로 격하하면서 부령구역을 청진시에서 분리하여 부령군을 복귀하고, 나남구역에서 부윤노동자구(富潤勞動者區)와 어유리(漁遊里)를 분리하여 부윤구역(富潤區域)을 신설하였다. 이 시기 도 행정구역은 3개 시 16개 군으로 되어 있었다. 1972년 7월에는 부령군의 대부분 지역으로 부령구역을 복귀하고, 1973년 8월에는 나진시에 남산구역(南山區域), 신흥구역(新興區域), 관해구역(觀海區域)을 신설하였다.
1974년 5월에는 종성군이 회령군과 온성군에 편입되면서 폐지되고, 유선군이 회령군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으며, 나진시의 3개 구역이 폐지되었다. 1977년에는 경원군을 새별군으로, 경흥군을 은덕군(恩德郡)으로 개칭하고, 1977년 11월에는 청진시가 경성군과 무산군이 편입되어 다시 직할시로 승격되었다. 1978년 8월에 연사군 삼장리(三長里), 삼하리(三下里) 일부와 원봉노동자구(圓峰勞動者區)의 대부분 지역이 양강도 대홍단군(大紅湍郡)에 이관되었다. 1981년 10월에는 명간군을 화성군(化城郡)으로, 웅기군을 선봉군(先鋒郡)으로 개칭하고, 1985년 7월에는 청진시를 다시 일반시로 격하하고, 경성군과 무산군이 분리되었으며 1985년 12월에는 부령구역이 다시 부령군으로 복귀되었다.
1991년 7월에는 회령군을 회령시로 승격하고, 1993년 1월에는 부윤구역이 나남구역(羅南區域)에 통합되었으며, 1993년 9월에는 나진시 일부와 선봉군을 분리하여 나진-선봉직할시로 승격 개편되었다. 1993년 12월 도 행정구역은 청진, 김책, 회령의 3개 시와 길주, 화대, 명천, 화성, 어랑, 경성, 부령, 연사, 무산, 온성, 새별, 은덕의 12개 군으로 되어 있었다. 1994년 3월에는 청진시 나남구역 부윤노동자구를 분리하여 부윤구역을 신설하였다. 2002년 현재 함경북도의 행정구역은 3시(청진시, 김책시, 회령시) 12군(경성군, 길주군, 명천군, 무산군, 부령군, 새별군, 어랑군, 연사군, 온성군, 은덕군, 화대군, 화성군)으로 되어 있다. 함경북도 소재지는 청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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