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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산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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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소재지. 도의 북부, 원산만 연안에 위치해 있다. 남동부는 안변군, 남서부는 법동군, 북서부는 문천시와 접해 있고, 북동부는 동해의 원산만과 면해 있다.
동서(용천리~영삼리) 간의 길이는 26km이고, 북남(송천동~칠봉리) 간의 길이는 18km이며, 시 면적은 314.4㎢로서 도 전체면적의 2.83%를 차지하는데, 그 가운데서 섬 면적은 3.73㎢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45동 14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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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산시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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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로서 고구려 때에는 매시달이라 불렀고 통일신라 때는 선산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고려시기에 선산현을 원산으로 개편하였다. ‘원산’이란 이름은 둥글게 생긴 산을 낀 고장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지명으로서 후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둥글 ‘원(圓)’자가 소리가 같은 으뜸 ‘원(元)’자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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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산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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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시 지역의 중평리 등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사실은 이 시기부터 원산시 지역에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 되어 천정군(泉井郡) 또는 어을매(於乙買)라고 불렀다. 후에 신라의 판도로 되어 정천군(井泉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왕시기에 고려의 영토로 되어 용주(湧州)로 고쳐 부르다가, 고려 성종시기에 이르러서는 의주(宜州)라 불렀다. 1018년에 진명현(鎭溟縣) 또는 수강(水江)이라고도 하였다. 후에 오랫동안 외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가, 공민왕시기에 다시 수복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의천군(宜川郡)으로 개칭되었고 그 후 1437년 덕원군(德源郡)으로 되었으며 1445년에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895년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함흥부(咸興府) 덕원군으로 개편되었고 그 이듬해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덕원군으로 되었다.
1912년에 덕원군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를 신설하였는데, 이때 관하에 부내면(府內面), 북면(北面), 천북면(川北面), 용성면(龍城面), 적전면(赤田面), 현면(縣面)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원산부의 대부분 지역이 덕원군에 편입되었고 그 일부와 옛날 일본거류지들, 청나라거류지들이었던 현면의 하신흥동·상신흥동·상동·산제동·광석동·남촌·명석동·장촌·석우동(石隅洞)·관교동(館橋洞)·남산동(南山洞)·용동(龍洞)·교하동(橋下洞)·적전면 와우동 등 지역을 통합하여 새로운 원산부를 이루었다.
1939년에 덕원군 적전면의 와우리(臥牛里), 송흥리(松興里), 송하리(松下里), 현면의 두방리(豆方里)와 두산리(斗山里)가 편입되었다.
1943년에 덕원군이 폐지되면서 일부 지역이 편입되었다. 1945년에 원산시로 개편되었다.
1946년에 강원도 원산시로 되면서 문천군 적전면과 현면을 흡수하였다. 이때 문천군 적전면의 송상리 일부와 송중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송천동(松川洞)으로, 문천군 적전면의 송상리·용주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장덕리(長德里)로, 문천군 현면의 웅도리와 여도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여도리(麗島里)로, 원산부의 두방리와 두산리·현면 내원산리를 병합하여 원산시 내원산리(內元山里)로, 원산부의 남산동과 용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용교동(龍橋洞)으로, 원산부의 교하동과 용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산시 용하동(龍下洞)으로, 원산부 남촌동과 신흥동을 병합하여 원산시 신흥리(新興里)로 각각 개편하고 명석동을 명석리로, 광석동을 광석리로, 상동을 상동리로, 석우동을 석우리로, 산제동을 산제리로, 해안동을 해안리로 각각 고쳤으며 명사리(明砂里), 철산리(鐵山里), 봉수리(烽燧里), 중앙리(中央里), 평화리(平和里), 남북리(南北里), 상남리(上南里) 등을 신설하였다.
또한 양지리를 복귀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중청리가 중청일리(中淸一里), 중청이리(中淸二里)로 분리되었고, 해안리 일부가 여도리에 편입되었다.
1950년에 성라리 일부를 분리하여 신성리(新城里)를, 내원산리 일부를 분리하여 갈마리(葛麻里)를 각각 신설하고 용교동, 장촌동, 용하동, 송천동, 포하동을 각각 리로 고쳐 갈마리, 두남리(斗南里), 신성리, 용평리(龍坪里), 내원산리, 성북리(城北里), 세동리(細洞里), 장흥리(長興里), 방하산리(訪霞山里), 송천리(松川里), 송하리, 송흥리, 춘성리(春城里), 중앙리, 봉수리, 철산리, 양지리, 신풍리(新豊里), 와우리, 평화리, 석우리, 명석리, 상동리, 장덕리, 용주리(湧珠里), 관풍리(館豊里), 신동리(新洞里), 중평리(仲坪里), 당하리(堂下里), 당중리(堂中里), 용교리(龍橋里), 당상리(堂上里), 낙수리(洛水里), 견산리(見山里), 산제리, 해안리, 남북리, 신흥리, 상남리, 용계리(龍溪里), 중청일리, 중청이리, 중리(中里), 장촌리, 포하리(浦下里), 용하리(龍下里), 명사리, 무라리(武羅里), 여도리, 성라리(星羅里), 춘산리(春山里), 춘악리(春岳里), 현동리(峴洞里), 광석리, 삼태리(三台里) 등 리를 관할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원산시 중평리·용주리·신동리를 병합하여 중평리로, 원산시 현동리·견산리를 병합하여 현동리로, 원산시 낙수리·무라리를 병합하여 낙수리로, 원산시 춘산리·춘악리를 병합하여 춘산리로, 원산시 장흥리·세동리를 병합하여 장흥리로 각각 개편하였고, 원산시 성라리·두남리·용평리를 병합하여 용천리(龍川里)를, 원산시 당상리·당중리·당하리·용계리를 병합하여 적천리(赤川里)를 각각 신설하였으며, 원산시 중청일리·중청이리를 병합하여 중청리(中淸里)를 다시 복귀하였다.
또한 지경리(地境里)가 안변군 배양리(培養里)에, 사둔리(沙屯里), 포평리(浦坪里)가 안변군 사평리(沙坪里)에 각각 편입되었다.
1955년에 중청리가 중청일동과 중청이동으로 분리되고 장덕리, 관풍리, 신풍리, 와우리, 평화리, 양지리, 송흥리, 철산리, 봉수리, 석우리, 명석리, 상동리, 광석리, 산제리, 신홍리, 해안리, 용교리, 장촌리, 방하산리, 용하리, 갈마리, 내원산리, 장흥리, 신성리, 여도리, 남북리, 중앙리, 성북리, 명사리, 포하리, 송하리 등 31개 리를 동으로 고쳤다.
1957년에 신풍동 일부로 고능동(高陵洞)을 신설하였고, 남북동이 해안동에, 중앙동이 봉수동에, 성북동이 용천리에, 상남리가 중리에, 명사동이 내원산동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중청일동을 중청동(中淸洞)으로, 중청이동을 원남동(元南洞)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61년에 문천군의 부운리(浮雲里)·덕원리(德源里)·석현리(石峴里)·장림리(長林里)가 편입되었고, 와우동 일부와 신풍동 일부를 병합하여 율동(栗洞)을, 평화동 일부와 와우동 일부를 병합하여 덕성동(德城洞)을, 철산동 일부를 분리하여 해방동(解放洞)을, 춘성리 일부·봉수동 일부·철산동 일부를 병합하여 봉춘동(烽春洞)을, 석우동 일부·해안동 일부를 병합하여 원석동(元石洞)을, 중청동 일부를 분리하여 삼봉동(三峯洞)을, 용교동 일부를 분리하여 남산동(南山洞)을, 갈마동 일부를 분리하여 복막동(洑幕洞)을 각각 신설하였으며, 송하리가 송흥동에, 중리가 해안동에, 용교동 나머지는 신흥동·장촌동에, 포하동이 장촌동·내원산동에, 중평리 일부와 신풍동 일부가 관풍동에, 신풍동 일부가 와우동에, 와우동 일부가 양지동에, 양지동 일부가 평화동에, 평화동 일부가 철산동·석우동에, 봉수동 일부가 철산동·평화동에, 석우동 일부가 철산동·명석동·상동에, 상동 일부가 명석동에, 송천리 일부가 장덕동에, 용하동 일부가 갈마동에, 명석동 일부가 상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1967년에 해방동이 해방일동(解放一洞)·해방이동(解放二洞)으로, 철산동이 철산일동(鐵山一洞)·철산이동(鐵山二洞)으로 분리되었고, 장덕동이 양지동에, 춘성리가 송흥동에, 부운리가 송천리에, 율동 일부·와우동 일부가 덕성동에, 덕성동 일부가 석우동에, 신풍동 일부가 와우동에, 방하산동 일부가 용하동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2년에 철산이동이 승리동(勝利洞)으로 개칭되었고, 문천군이 폐지되면서 문천군의 문천읍(文川邑), 문평노동자구(文坪勞動者區), 옥평노동자구(玉坪勞動者區), 가은노동자구(佳銀勞動者區), 영삼리(永三里), 신성리(新城里), 죽산리(竹山里), 가평리(柯坪里), 남창리(南昌里), 교성리(橋城里), 부방리(富方里), 용탄리(龍灘里), 고암리(庫巖里), 신안리(新安里), 삼일리(三一里), 답촌리(畓村里), 용정리(龍井里), 삼동리(參洞里)가 원산시에 편입되었다. 이때 문천읍을 문천노동자구(文川勞動者區)와 성문노동자구(城門勞動者區)로, 가평리를 가평노동자구(柯坪勞動者區)로, 고암리를 고암노동자구(庫巖勞動者區)로 각각 개편하였다.
1974년에 천내군의 석전리(石田里), 덕흥리(德興里)가 이관되었고, 문천노동자구, 성문노동자구, 문평노동지구, 가은노동자구, 가평노동자구, 옥평노동자구, 고암노동자구를 각각 문천동, 성문동, 문평동, 가은동, 가평동, 옥평동, 고암동으로 개편하였다.
1976년에 철산일동을 개선동(凱旋洞)으로 개칭하고, 적천리를 적천동으로, 송천리를 송천동으로, 덕원리를 덕원동으로 고쳤으며 문천동, 성문동, 문평동, 가은동, 가평동, 옥평동, 고암동, 남창리, 교성리, 부방리, 용정리, 용탄리, 신안리, 삼동리, 삼일리, 답촌리, 덕흥리, 석전리를 다시 설치되는 문천군에 편입하였다.
1977년에 고능동이 탑동(塔洞)으로, 장흥동이 장산동(長山洞)으로, 덕원동이 세길동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1984년에 안변군의 남천리(南川里)·칠봉리(七峯里)·수상리(水上里)·상자리(上自里)가 편입되었고, 1986년에 덕성동 일부·명석동 일부·석우동 일부로 복망산동(北邙山洞)을 신설하였으며, 양지동 일부로 장덕동을 복귀하였다.
1987년에 복망산동을 동명산동(東明山洞)으로 개칭하였고, 1991년에 산제동을 전진동(前進洞)으로 개칭하여 1992년에 이르러 산하에 개선동, 해방일동, 해방이동, 승리동, 봉춘동, 평화동, 관풍동, 탑동, 신풍동, 율동, 석우동, 와우동, 덕성동, 양지동, 봉수동, 원석동, 명석동, 상동, 광석동, 전진동, 송흥동, 송천동, 중청동, 삼봉동, 원남동, 신흥동, 해안동, 남산동, 장촌동, 용하동, 갈마동, 내원산동, 방하산동, 장산동, 복막동, 신성동, 적천동, 세길동, 동명산동, 장덕동, 여도동, 용천리, 현동리, 춘산리, 낙수리, 삼태리, 중평리, 석현리, 장림리, 영삼리, 신성리, 죽산리, 남천리, 수상리, 상자리, 칠봉리 등 41동 15리를 두고 관할하였다.
1993년에 내원산동 일부를 분리하여 명사십리동(明砂十里洞)을, 원남동을 분리하여 원남일동(元南一洞)과 원남이동(元南二洞)을 각각 신설하였고, 장촌동 일부를 분리하여 포하동을 복귀하였으며, 현동리 일부를 복막동에, 광석동 일부를 전진동에, 장촌동 일부를 내원산동에 각각 편입하였다. 1995년에 석현리가 석현동으로 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45동(갈마동, 개선동, 관풍동, 광석동, 남산동, 내원산동, 덕성동, 동명산동, 여도동, 용하동, 율동, 명사십리동, 명석동, 방하산동, 복막동, 봉수동, 봉춘동, 삼봉동, 상동, 석우동, 석현동, 세길동, 송천동, 송흥동, 승리동, 신성동, 신풍동, 신흥동, 양지동, 와우동, 원남일동, 원남이동, 원석동, 장덕동, 장산동, 장촌동, 적천동, 전진동, 중청동, 탑동, 평화동, 포하동, 해방일동, 해방이동, 해안동), 14리(남천리, 낙수리, 용천리, 삼태리, 상자리, 수상리, 신성리, 영삼리, 장림리, 죽산리, 중평리, 춘산리, 칠봉리, 현동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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