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 후 얼마 안되어 선생님께서 ‘민용이는 할아버지와 같이 사는 구나’ 하시길래 ‘아니요? 우리 할아버지는 이북에 계시는데요’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께서 ‘주민등록상에는 호주와의 관계가 손자로 되어있는데.....?’라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홀로 월남하시어 서울에서 가호적(假戶籍)을 만들 때 나의 조부모, 증조모까지 모두 호적에 올리시며 당신은 조부의 ‘세대주’로 등재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호적이란 것이 의미없는 것일 수 있지만 지금 살아계신다면 100세가 넘으신 할아버지가 우리집안의 호주이기에 나의 주민등록상에는 나는 세대주 일 뿐이며 호주의 손자일 뿐이다.

내 호적에는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함자가 등재되어 있다. 그리곤 그 옆엔 ‘미수복지구 거주’라고 씌여 있다.   4년전 돌아가신 아버님은 호적에서 말소가 되었어도 사망여부를 알 길 없는 증조모, 조부모님은 잠깐 피난갔다가 온다던 아들에 의해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이남 땅의 호적에 등재되었다.

우리집처럼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은 특히 월남당시 미혼이셨던 분들은 이북에 계신 부모님을 호적에 등재하고 이곳에는 가호적으로 만들었다 한다. 그리고 통일이되면 다시 호적을 정리한다며 이북에 계신 분을 등재할 때는 ‘미수복지구 거주’라고 표기했단다.

지금도 이북5도청에 가면 이런 가호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고만으로 간단히 호적을 정리 해 준다.
아버님 살아 생전에 우리도 호적을 정리 할 필요가 있지 않냐고 말씀드렸더니,
‘내 생전에 고향에 가보는 것이 소원인데..., 내가 안되면 너라도 가봐야 하는데...’하시며
‘호적에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를 말소하면 누가 이북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하겠느냐?’
‘세대주로 산다해서 불이익도 없고, 어쩌면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분을 말소한다는 건 더더욱 말도 안된다’며 ‘나 죽거들랑 네가 호적을 정리하던 말던 해라’ 셨다.

나의 호적에는 아직도 원적을 기입하는 란에는 ‘황해도 은률군 장연면 동부리’라 기입되어 있다.
살아 생전에 그토록 고향에 가고파 하시던 아버님은 주검으로라도 고향엘 가고파 고향이 좀 더 가까운 파주에 묻혀 계신다.

유일하게 나의 고향을 알려주는 호적등본!
아버님 돌아가시면 정리하려 했던 호적이었는데 아버님 말씀마따나 요즘은 호적등초본이 그리 필요한 것도 아닌데..., 세대주라 해서 별 아쉬운 것도 없는데....

이남에 친척이라곤 나의 형제들밖에 없는데.....
지금은 분가하여 내 호적에 남아있지 않은 형제들도 고향이 어딘지 모르는데
차라리 나는 호적등본에 남아있는 미수복지구 거주자의 손자로서,
고향땅 한번 밟아보는게 소원이며 평생 세대주로 살다가신 아버님의 아들로서
56년전 모 공무원 모주사님이 써주신 미수복지구 거주자 세대로서
지금의 호적으로 남으련다.

내 고향은 황해도 은률군 장연면 동부리 이다.


                                              (구글어스로 본 장연리 위성사진)